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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피정(일상에서 벗어난 종교적 수련), 외딴 수도원 나와 홍대 거리로 본문

세상에게 말걸기

피정(일상에서 벗어난 종교적 수련), 외딴 수도원 나와 홍대 거리로

해피제제 2011. 9. 15. 16:30

피정(일상에서 벗어난 종교적 수련), 외딴 수도원 나와 홍대 거리로

입력 : 2011.09.14 03:07

조인영 알베르토 신부

[조인영 신부의 길거리 피정] 한 주에 한 번 '일상 속 멈춤'
트위터·블로그로 내용 공유… 도심서 오프라인 모임 하기도

주점과 클럽 간판 여기저기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토요일 아침. 나이도 사는 곳도 제각각인 10여명이 서울 홍대 앞의 카페거리에 모였다.

젊은 사제가 사람들에게 곱게 접은 쪽지 한 장과 모난 돌 하나씩을 쥐여줬다. 쪽지에는 율법학자들이 간음한 여자를 예수에게 끌고 와 '돌로 쳐 죽일까요' 하고 묻는 요한복음서 구절이 적혔다. "내 손에 돌이 놓여 있습니다. 이 돌은 내가 다른 이에게 던지려 했던 돌일 수 있습니다. 나를 단죄하려고 던져진 돌일 수도 있습니다. 이 돌을 쥐고 있는 내게 예수님은 뭐라 하실까요?" 사람들은 돌과 쪽지를 손에 쥐고 거리로 흩어졌고, 한 시간 뒤에 각자 가슴속에 이야기를 담아 다시 모였다.

수도원이나 '피정의 집' 담장 안에 머무르던 '피정(避靜)'이 세상 속으로 들어왔다. 예수회 조인영(39) 알베르토 신부와 가톨릭 신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길거리 피정', 줄여서 '길피'다.

알베르토 신부는 트위터(@arrupe)와 페이스북 그룹(gilpi), 예수회 홈페이지(www.jesuits.kr/gilpi) 등을 통해 매주 한 번 피정 자료를 올린다. 참여하는 사람들은 한 주에 한 시간 정도 짬을 내서 각자 성경 구절을 묵상하고, 트위터 그룹이나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그 내용을 공유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서울의 골목길이나 번화가, 고궁 등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만나는 '함께하는, 길피' 시간도 갖는다. 알베르토 신부는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말씀을 통해 주님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 한 시간의 '멈춤'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저녁 귀가 전 버스를 몇 정류장 앞에서 내려 걸어가며 묵상하고, 약속 장소에 한 시간 먼저 나가 찻집에 혼자 앉아 묵상하는 등 시간 활용이 자유로운 것이 '길거리 피정'의 최대 강점이다. 일상의 매 순간과 장소 즉 '지금, 여기'를 '피정의 집'으로 만들어가는 영성운동이다.

 

참여하는 이들의 묵상은 자유롭고, 깊게 뻗어나간다. '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신뢰하라'는 잠언 구절을 묵상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생각이 너무 많아 어려웠지만 피정하는 동안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도, 꽃향기도, 밤하늘도 좋았다"는 사람(senoah.tistory.com)이 있는가 하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요한복음서 구절에서 "하느님을 증거하며 살아간다는 건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믿는다고 외치는 '신앙의 증거'가 아니라 삶 안에 녹아 있는 내 예수님의 흔적을 사람들에게 나누는 '증거의 삶'"임을 깨닫는 사람(haplotes.egloos.com)도 있다.

묵상하면서 사진을 찍도록 하는 것도 '길피'만의 특징이다. 알베르토 신부는 "가톨릭에는 성화(聖畵)를 보며 기도하는 오랜 관상기도의 전통이 있다. 사진을 찍어두면 피정자가 묵상을 한 번 하고 나서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경험할 수 있는 매개체를 갖게 된다"고 했다. '함께하는 길피'에서 돌을 나눠준 것 역시 관상기도에 오감(五感)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가르치는 예수회 전통에 따른 것이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가장 전통적인 기도법과 가장 현대적인 기술이 만나는 통로가 열린 셈이다.

길피 소식을 전하는 알베르토 신부의 트위터 팔로어는 400여명 가까이 된다. 2007년 신부가 유학을 떠나기 전에는 가톨릭 신자만 참여할 수 있었지만 작년 11월 트위터 중심의 현재 포맷이 정착된 이후에는 개신교나 정교회 등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이달 초부터는 교계 언론인 '가톨릭 신문'도 매주 '함께하는 길거리 피정' 코너를 마련해 피정 자료를 싣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다.

알베르토 신부는 "예수회 한국관구장을 지낸 채준호 마티아 신부님은 '멈출 수 있는 것이 은총'이라고 하셨다"며 "길피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 '일상속에서의 멈춤'을 통해 내적인 차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도 함께 바라보는 감각을 키워, 세상과 세상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더 깊이 만날 수 있게 되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