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2코린 5,14a
이번 학기에는 '교부학' 수업을 수강하고 있습니다.
나지아누스의 그레고리우스라는 4세기 인물의 저서를 강독하는 시간입니다.
즉, 그이의 작품에 쓰인 '희랍어(그리스어)' 문헌을 분석하는 수업입니다.
10년도 훨씬 전에 배워 두었던 언어입니다.
그런데 수업 준비로 다시 펼쳐 보니 이건 뭐랄까 처음보는 언어쯤 되어 보입니다.
매주 무슨 내용을 분석하고 있는지 전혀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암호처럼 쓰여진 희랍어 문헌을 또 다른 나라 언어로 전해 듣자니
강의가 끝날 쯤이면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지경입니다.
여튼 그렇게 고군분투 중에 다음 주에는 저의 발표 차례입니다.
처음에는 일본어 해석본을 열심히 사전 찾아가며 뜻을 익혀 두었습니다.
다음에는 희랍어 본문을 역시나 희랍어 사전을 손에 들고 뜻을 달아 두려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곧 단념하고 말았습니다.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기에 말입니다.
해서 희랍어 문법책을 찾아 다시금 기억을 더듬어 보기로 했습니다.
헐! 역시나 곧 단념하고 말았습니다.
생판 모르겠는 것을 더듬어 알아 가고 있는 일본어로 된 문법책으로 보자니
그럴 만도 해 보입니다.
방법을 바꾸어 더 쉽게 읽을 수 있을까싶어
인터넷을 뒤져 겨우겨우 희랍어 문법책을 찾아 냈습니다. 에헤라디야!!
어제까지 이틀을 꼬박 문법책에 매달려 보았습니다.
대학 내 중앙도서관 넓다란 책상 위에 온갖 자료들을 펼쳐두고
희랍어, 꼬부랑 글씨를 써내려가며 무언가 야단스레 판을 벌려 두었습니다.
역시나 눈에 보인다면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을 것입니다.
한참을 그렇게....
그리고 도서관 폐관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들려왔을 때쯤에는
그저 겸손히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해야 할 것에는 '아니오' 해야 할 것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문장은 고사하고 단 한 구절을 붙잡고 몇 시간째 씨름하면서 그랬습니다.
문법책을 읽고 또 읽어 보지만 이게 정말 한국말로 쓰여진 문법책인지가 그랬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급해져만 가는 마음을 보면서 그랬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것 앞에서는
또 그렇게 겸손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어야 함을 알아 들은 것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무리인 것도 있어 보입니다.
이틀간 어찌어찌 해 보아야겠다고그 난리를 친 뒤에야
이 아침의 고요함에 떠다니는 생각들 붙잡지 않고 겨우 머물 수 있게 됩니다.
그래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