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급할 때만 찾는 친구들에게
해피제제
2011. 12. 7. 07:26
1독서
야곱아, 네가 어찌 이런 말을 하느냐?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 이렇게 이야기하느냐?
"나의 길은 주님께 숨겨져 있고,
나의 권리는 나의 하느님께서 못 보신 채 없어져 버린다."
너는 알지 않느냐? 너는 듣지 않았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신다.
복음말씀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애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단상
필리핀 이주노동자 한 분이 심장에 이상을 느껴 이웃살이를 방문했다.
간단한 진료들이야 주변 1차 진료기관들에서 처리해 왔으나
정밀 검사를 하고 그 후 일정까지를 논의하다보니
아무래도 통합적인 관리가 필요할 듯싶어 이웃살이와 관계되는 곳을 물색하게 되었다.
신부님도 동기수사님도 나도 각자가 가지고 있는 병원 네트워크를 가동한다.
먼저 이 분의 사정상(미등록 외국인이고, 지난 8월에 이미 척추 수술을 받은 상태다)
치료비를 낼 수가 없고, 건강보험도 가입되어 있지 않다.
해서 무료로 진료를 해 줄 수 있는 곳을 알아보아야 한다.
게다가 가까운 곳으로 계속적으로 통원 치료가 가능한 곳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근처에서는 무료로 검사 및 수술을 해 주는 곳이 없다.
주일에 한 번씩 양곡에서 펼쳐지는 '말구유나눔회'의 진료봉사가 있지만
전문적인 검사를 하기에는 장비가 충분치 않다.
해서 말구유나눔회의 회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웬걸! 진료를 하시다가 전화를 받으셨는지 '잠시만요' 하는 전화기 너머의 사정이 모두 들려온다.
잠시 후 '이웃살이 김형욱 수사'라고 소개를 하고 필리핀 노동자 건을 말씀 드렸다.
이렇게 저렇게 묻기도 하고 대답하기 하면서 원하던 것들에 흡족해 하다가
의사 선생님의 한 말씀에 '아차!' 하는 느낌이 올라왔다.
"수사님, 그런데 제가 전에 수사님 뵌 적이 있던가요?"
그러고보니 주일에 가끔씩 친구들을 말구유나눔회까지 안내하면서
몇 몇 의사 선생님을 뵙기는 했지만 나눔회의 회장인 이분은 처음이다.
심장전문의로 서울 유명 병원에 과장님으로 또 의대교수로 계신다.
그런 이유로 절차 안내 다 무시하고 개인 전화로 막 들이댔으니
경우를 생각하면 살며시 식은땀이 올라온다.
전화를 끊고 왠지 막무가내 무례를 범한 것 같아 부끄러움이 인다.
돌이켜 보니 오늘 하루도 몇 번이나 이런 비슷한 무례를 범한 것 같다.
이주노동자들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대곶중학교 체육관을 빌리면서
병원과 의료비 지원을 받을 목적으로 서울상담소 담당자와 논의를 하면서
얼굴 두껍게 급하고 필요할 때만 전화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그렇다.
중학교 행정실 직원은 이미 교장선생님과 밥도 먹은 상태라 이웃살이의 전화번호가 뜨니
당장 '뭐 필요하신 게 있으신줄 알았습니다.'하고 미안함을 표하는 내 목소리에
오히려 덜 미안하게 기꺼이 응대를 해 주시고,
상담소 담당자 역시 '에구 제가 늘 이렇게 도움을 청할 때만 전화하네요.' 너스레를 떠니
'우리 하는 일이 그렇지요.'하면서 다 떨어진 의료비 지원액 중에서
그래도 도움을 못 줘서 미안하다는 말과 몽골 친구 지원할 금액 중에서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지원해 줄 수 있는 금액이 '20만원'은 되겠다며 귀뜸을 해 준다.
마찬가지로 의사 선생님도 그동안 일면식도 없었지만
이웃살이와 함께 하면서 신부님, 수사님의 2-3년 터울로의 무수한 만남과 이별을 겪으셨는지라
그저 탓하는 말투가 아닌 '뵈지 못한 분'이라 궁금하다는 투다.
그렇지만 괜히 그런 말에 화들짝 놀란 나는
'급하고 필요할 때'만 전화를 넣는 것 같아 마음이 그렇다.
서울상담소 직원 말처럼 '이 일 하면서 우리가 늘 그렇죠' 하는 말에
그러면서도 '매번 그래서 부끄럽고 또 고마운 분들이죠' 하시며 내 미안함에 손 내밀어 주시니
같은 일 하면서 늘 이렇게 부끄러움과 고마움들 간직하면서 이 일 해나갈 수 있는 듯싶다.
이 아침 항상 눈 앞에 급박한(?) 일들로 까맣게 잊고 살다가
'급하고 필요할 때'면 당연히 찾게 되는 벗들에게
또 그것을 알면서도 내색없이 받아주는 그이들에게
부끄럽지만 '고마움과 사랑'을 전한다.
주님, 저이들에게 보내는 제 부끄러움과 고마움을 기억하시고
제가 주지 못하는 사랑을 당신께서 30배 60배 100배로 더해 주시길 청합니다.
야곱아, 네가 어찌 이런 말을 하느냐?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 이렇게 이야기하느냐?
"나의 길은 주님께 숨겨져 있고,
나의 권리는 나의 하느님께서 못 보신 채 없어져 버린다."
너는 알지 않느냐? 너는 듣지 않았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신다.
복음말씀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애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단상
필리핀 이주노동자 한 분이 심장에 이상을 느껴 이웃살이를 방문했다.
간단한 진료들이야 주변 1차 진료기관들에서 처리해 왔으나
정밀 검사를 하고 그 후 일정까지를 논의하다보니
아무래도 통합적인 관리가 필요할 듯싶어 이웃살이와 관계되는 곳을 물색하게 되었다.
신부님도 동기수사님도 나도 각자가 가지고 있는 병원 네트워크를 가동한다.
먼저 이 분의 사정상(미등록 외국인이고, 지난 8월에 이미 척추 수술을 받은 상태다)
치료비를 낼 수가 없고, 건강보험도 가입되어 있지 않다.
해서 무료로 진료를 해 줄 수 있는 곳을 알아보아야 한다.
게다가 가까운 곳으로 계속적으로 통원 치료가 가능한 곳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근처에서는 무료로 검사 및 수술을 해 주는 곳이 없다.
주일에 한 번씩 양곡에서 펼쳐지는 '말구유나눔회'의 진료봉사가 있지만
전문적인 검사를 하기에는 장비가 충분치 않다.
해서 말구유나눔회의 회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웬걸! 진료를 하시다가 전화를 받으셨는지 '잠시만요' 하는 전화기 너머의 사정이 모두 들려온다.
잠시 후 '이웃살이 김형욱 수사'라고 소개를 하고 필리핀 노동자 건을 말씀 드렸다.
이렇게 저렇게 묻기도 하고 대답하기 하면서 원하던 것들에 흡족해 하다가
의사 선생님의 한 말씀에 '아차!' 하는 느낌이 올라왔다.
"수사님, 그런데 제가 전에 수사님 뵌 적이 있던가요?"
그러고보니 주일에 가끔씩 친구들을 말구유나눔회까지 안내하면서
몇 몇 의사 선생님을 뵙기는 했지만 나눔회의 회장인 이분은 처음이다.
심장전문의로 서울 유명 병원에 과장님으로 또 의대교수로 계신다.
그런 이유로 절차 안내 다 무시하고 개인 전화로 막 들이댔으니
경우를 생각하면 살며시 식은땀이 올라온다.
전화를 끊고 왠지 막무가내 무례를 범한 것 같아 부끄러움이 인다.
돌이켜 보니 오늘 하루도 몇 번이나 이런 비슷한 무례를 범한 것 같다.
이주노동자들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대곶중학교 체육관을 빌리면서
병원과 의료비 지원을 받을 목적으로 서울상담소 담당자와 논의를 하면서
얼굴 두껍게 급하고 필요할 때만 전화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그렇다.
중학교 행정실 직원은 이미 교장선생님과 밥도 먹은 상태라 이웃살이의 전화번호가 뜨니
당장 '뭐 필요하신 게 있으신줄 알았습니다.'하고 미안함을 표하는 내 목소리에
오히려 덜 미안하게 기꺼이 응대를 해 주시고,
상담소 담당자 역시 '에구 제가 늘 이렇게 도움을 청할 때만 전화하네요.' 너스레를 떠니
'우리 하는 일이 그렇지요.'하면서 다 떨어진 의료비 지원액 중에서
그래도 도움을 못 줘서 미안하다는 말과 몽골 친구 지원할 금액 중에서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지원해 줄 수 있는 금액이 '20만원'은 되겠다며 귀뜸을 해 준다.
마찬가지로 의사 선생님도 그동안 일면식도 없었지만
이웃살이와 함께 하면서 신부님, 수사님의 2-3년 터울로의 무수한 만남과 이별을 겪으셨는지라
그저 탓하는 말투가 아닌 '뵈지 못한 분'이라 궁금하다는 투다.
그렇지만 괜히 그런 말에 화들짝 놀란 나는
'급하고 필요할 때'만 전화를 넣는 것 같아 마음이 그렇다.
서울상담소 직원 말처럼 '이 일 하면서 우리가 늘 그렇죠' 하는 말에
그러면서도 '매번 그래서 부끄럽고 또 고마운 분들이죠' 하시며 내 미안함에 손 내밀어 주시니
같은 일 하면서 늘 이렇게 부끄러움과 고마움들 간직하면서 이 일 해나갈 수 있는 듯싶다.
이 아침 항상 눈 앞에 급박한(?) 일들로 까맣게 잊고 살다가
'급하고 필요할 때'면 당연히 찾게 되는 벗들에게
또 그것을 알면서도 내색없이 받아주는 그이들에게
부끄럽지만 '고마움과 사랑'을 전한다.
주님, 저이들에게 보내는 제 부끄러움과 고마움을 기억하시고
제가 주지 못하는 사랑을 당신께서 30배 60배 100배로 더해 주시길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