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기도를 하면 예뻐진다.
해피제제
2011. 8. 23. 07:42
1독서
우리는 이처럼 여러분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하여 우리 자신까지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토록 우리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복음말씀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단상
아버지께서 하늘 나라로 떠나시고 할머니께서 전주 큰고모님 곁으로 이사를 하셨다.
하나 남은 아들 때문에 그래도 큰 소리치며 사셨는데 이제는 목소리가 더 힘이 없으시다.
딸 아들 넷을 출가시킨 큰고모님은 고모부와 단 둘이 아파트에 사신다.
그렇다고 바람 잘날 없는 큰고모님과 할머니 사이인지라 한 집에서는 살 수 없다.
할머니 본인이 평생 홀로 살아오셨기에 이것저것 까다롭기 그지없다.
언젠가 몸이 편찮으셔서 서울 둘째 고모님댁에 머무르셨다가
맘이 상한 일이 있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그 아픈 몸을 본가로 되돌아 오셨다.
자식들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도 이유가 있겠다.
이사간 곳이 큰고모님댁 옆동에 위치한 아파트라 아침저녁으로 다니시기에 편하시단다.
큰고모님도 일흔이 넘으셨는지라 그동안 익산과 전주를 오다니기가 불편했는데
이제는 바로 옆동이라 반찬이며 건강 챙기기가 한결 수월해 졌다나...
이사를 하면서 고모부가 작은 상자 하나를 마련해 두었다.
거기에는 버리지 못하고 간직해 둔 내 삶의 흔적들이 담겨있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까지의 졸업앨범들과 한 묶음 사진들,
학위증과 취업합격증 그리고 국가고시(?)자격증들,
가장 자랑스러운 중학교 3년 개근상 등 추억이 가득한 상장들
또 몇 개의 비디오 테이프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의 '학생증'이다.
수도 삶을 살면서 정리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버리지 못했던 흔적들이다 싶다.
어렸을 때부터의 사진들을 넘겨보면서 과거의 흐름들을 쫓다가
얇게 코팅된 여러 개의 '학생증'에 손이 닿았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학생증에는 사진과 학생번호와 이름이 적혀 있다.
그러고보니 어린시절의 나는 무척이나 작았나 보다.
중학교부터 학번은 키순서로 정해졌는데 단 한 번 빼고는 10번을 넘긴게 없다.
7번, 3번, 9번, 13번, 또 3번과 10번
'내가 이렇게 작았나'
그런데 키 작은 것은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으니 그렇다고 치고,
학생증에 있는 사진들은 또 왜 이렇게 얼굴 표정이 어두운지,
'내가 이렇게 무표정한 얼굴이었나' 싶었다.
뭐가 그렇게 불만 투성인지 꽉 다문 입술에 냉막한(?) 표정에 '저게 나인가' 의문이 들 정도다.
언젠가 예수회 선배인 송봉모 신부님의 특강에서 재미난 것을 들었다.
'기도를 하면 예뻐집니다' 라는 표현에 서강대 소강당을 가득 채운 청중들이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2002년 송 신부님과 희랍어강독 스터디를 함께 하면서 당신의 인품에 한껏 콩깎지가 눈에 낀 터에
'기도를 하면 예뻐진다'는 그 막연한 희망으로 수도회 입회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지금의 헤픈 웃음과 학창시절의 '무표정'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아무래도 오늘의 1독서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게 그 이유가 아닐까.
전에는 누구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지금에서는 사랑하는 이들이 많아져 누구의 아픔을 대신해 주고 싶고,
그이를 위해 밥을 굶을 수도 있고, 그이의 슬픔에 나도 어쩔줄 모르게 되고,
떠나간 이들을 위해 엉 엉 울기도 한다. 아픈 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저이들이 사랑을 알고, 사랑을 받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렇게 사랑을 표현하고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사는 지금의 모습이
아마도 나를 자꾸자꾸 이뻐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 계속 이뻐지고 싶다면 '사랑을 하면 된다'
그리고 '기도를 하면 된다'와 다른 말이 아니다.
사랑의 힘은 기도에서 나오기에...
내가 매일 하느님 앞에 나 앉는 이유(?)다. ㅋㅋㅋ
우리는 이처럼 여러분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하여 우리 자신까지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토록 우리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복음말씀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단상
아버지께서 하늘 나라로 떠나시고 할머니께서 전주 큰고모님 곁으로 이사를 하셨다.
하나 남은 아들 때문에 그래도 큰 소리치며 사셨는데 이제는 목소리가 더 힘이 없으시다.
딸 아들 넷을 출가시킨 큰고모님은 고모부와 단 둘이 아파트에 사신다.
그렇다고 바람 잘날 없는 큰고모님과 할머니 사이인지라 한 집에서는 살 수 없다.
할머니 본인이 평생 홀로 살아오셨기에 이것저것 까다롭기 그지없다.
언젠가 몸이 편찮으셔서 서울 둘째 고모님댁에 머무르셨다가
맘이 상한 일이 있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그 아픈 몸을 본가로 되돌아 오셨다.
자식들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도 이유가 있겠다.
이사간 곳이 큰고모님댁 옆동에 위치한 아파트라 아침저녁으로 다니시기에 편하시단다.
큰고모님도 일흔이 넘으셨는지라 그동안 익산과 전주를 오다니기가 불편했는데
이제는 바로 옆동이라 반찬이며 건강 챙기기가 한결 수월해 졌다나...
이사를 하면서 고모부가 작은 상자 하나를 마련해 두었다.
거기에는 버리지 못하고 간직해 둔 내 삶의 흔적들이 담겨있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까지의 졸업앨범들과 한 묶음 사진들,
학위증과 취업합격증 그리고 국가고시(?)자격증들,
가장 자랑스러운 중학교 3년 개근상 등 추억이 가득한 상장들
또 몇 개의 비디오 테이프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의 '학생증'이다.
수도 삶을 살면서 정리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버리지 못했던 흔적들이다 싶다.
어렸을 때부터의 사진들을 넘겨보면서 과거의 흐름들을 쫓다가
얇게 코팅된 여러 개의 '학생증'에 손이 닿았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학생증에는 사진과 학생번호와 이름이 적혀 있다.
그러고보니 어린시절의 나는 무척이나 작았나 보다.
중학교부터 학번은 키순서로 정해졌는데 단 한 번 빼고는 10번을 넘긴게 없다.
7번, 3번, 9번, 13번, 또 3번과 10번
'내가 이렇게 작았나'
그런데 키 작은 것은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으니 그렇다고 치고,
학생증에 있는 사진들은 또 왜 이렇게 얼굴 표정이 어두운지,
'내가 이렇게 무표정한 얼굴이었나' 싶었다.
뭐가 그렇게 불만 투성인지 꽉 다문 입술에 냉막한(?) 표정에 '저게 나인가' 의문이 들 정도다.
언젠가 예수회 선배인 송봉모 신부님의 특강에서 재미난 것을 들었다.
'기도를 하면 예뻐집니다' 라는 표현에 서강대 소강당을 가득 채운 청중들이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2002년 송 신부님과 희랍어강독 스터디를 함께 하면서 당신의 인품에 한껏 콩깎지가 눈에 낀 터에
'기도를 하면 예뻐진다'는 그 막연한 희망으로 수도회 입회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지금의 헤픈 웃음과 학창시절의 '무표정'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아무래도 오늘의 1독서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게 그 이유가 아닐까.
전에는 누구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지금에서는 사랑하는 이들이 많아져 누구의 아픔을 대신해 주고 싶고,
그이를 위해 밥을 굶을 수도 있고, 그이의 슬픔에 나도 어쩔줄 모르게 되고,
떠나간 이들을 위해 엉 엉 울기도 한다. 아픈 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저이들이 사랑을 알고, 사랑을 받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렇게 사랑을 표현하고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사는 지금의 모습이
아마도 나를 자꾸자꾸 이뻐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 계속 이뻐지고 싶다면 '사랑을 하면 된다'
그리고 '기도를 하면 된다'와 다른 말이 아니다.
사랑의 힘은 기도에서 나오기에...
내가 매일 하느님 앞에 나 앉는 이유(?)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