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꼭 돌아와라"

해피제제 2011. 12. 11. 07:20
1독서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독서

형제여러분,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복음말씀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단상

장례식장에서 관구장 신부님과 둘 만이 남게 되었다.
여하튼 기회가 있으면 다들 자리를 피한다(?).
어쩔 수 없이 혼자 뻘쭘하게 남아 있게 될 관구장 신부님을 위해(또 나를 위해)
연신 앞에 놓인 음식들을 집어 먹으며 이어지지 않는 대화를 나눈다.
서로 공통된 무엇인가가 없으면 늘 이렇게 끊기듯 대화가 이어질 수밖에...

그러다가 궁금하다는 듯이 관구장 신부님께 묻는다.
"신부님 왜 저 일본에 보내신대요? 그전에 안 보내시겠다면서요.
그래서 안 보내 주실 것 알고 그냥 미친척 써 보았는데,
처음 일본으로 가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당황스럽기도 했다니까요."

관구장 신부님 거의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답해온다.
"그러길래 왜 자꾸 일본에 가겠다고 그러냐? 다른 양성위원들이 한 번 보내 보잖다.
니가 하도 보내달라고하니 그 소원 들어달라고 그러잖다."

'허걱' 역시나 내 탓이다.
수련원 마치면서 일본 미션에 대해서 떠~억 하나 써 두었고,
신학원 떠나게될 때 또 역시나 일본으로 실습을 공공연히 양성위원들에게 밝혀 왔다.
또 그것이 무산되자 이번에는 실습을 마치면서 '다른 곳으로' 신학을 보내시겠지만
그래도 '제가 일본 미션 마음에 두고 있으니 잊지 마세요.' 하는 뜻에서
또 떠~억 하니 보란 듯이 신학 공부할 곳으로 일본을 써 둔 것이다.

양성위원들(관구장, 부관구장, 신학원장, 수련장, 지원장, 양성장, 신학대학원 교수 신부)이
실습 수사들이 실습을 끝마칠 즈음에 한 명씩 올려 두고 어디로 신학을 보낼지 갑론을박하다가
내 일관된 '일본행'에 대해 역시 갑론을박 하더니 
'이렇게 본인이 일관되게 청하고 또 무엇인가 하느님의 뜻이 있겠으니 한 번 보내 봅시다.' 했단다.
그러다 보니 각 단계를 넘어오면서 또 일관되게 반대를 표명하시던 관구장 신부님도 
모든 양성위원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러시는데 더는 반대할 명분이 없으셨단다.
그래서 장례식장에서 나를 향한 시선이 곱지 않을 수 밖에,
그렇게까지 알아듣게 이야기 했건만....


관구장 신부님은 당신이 생각하시는 곳에 또 그렇게 쓰시겠다는 데 이노무 연학수사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양성위원들에게 '일본미션'에 대한 꿈을 이야기하고 다녔으니
모든 양성위원들이 나에 대한 의견들을 묻다보니 오랜기간 한결같이 모아지는 게 있으니
'이건 또 하느님의 하시는 일이다' 라는 생각에 관구장 신부님도 더는 반대할 수가 없었단다.

정작 이제부터는 진짜 내 문제가 된 것이다.
그전까지는 '믿는구석'(?)이 있어서 괜히 튕기기도 하면서 '일본미션'을 이야기 했는데
이제 진짜로 '니 좋아하는 곳으로 보내 주었으니 이제부터는 니 책임이다'라는 말씀처럼
빼도박도 못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온전히 내 책임이 되어 버렸달까!
아마도 처음 소식을 접하고 약간은 '당황스러움'이 찾아 든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다행히 요즈음은 '지금껏 맡겨 두며 살아왔는데 또 안달할 일이 무얼까!' 하며
처음 당황스러움도 사리지고 다시금 여유롭기까지 하면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더 난리다.
'준비는 잘 되어가냐?', '일본어는 어떻게 배운 적이 있어?', '떠나기 전에 꼭 들렸다 가라'는 등 등

죽은(?) 사람 소원 들어 주셨으니 이제는 또 고맙게 떠나 볼 일이다.
이제 핑계댈 일도 없으니 묵묵히 살아볼 일이다.

이런저런 이야기 속에 관구장 신부님은 그래도 끝까지
"공부 끝나고 그냥 돌아와라"고 당신 마음을 전해 주신다.
아무래도 한 번 길을 정하면 쭉 가는 고집센  연학 수사의 기세를 아시는지라
그냥 일본 예수회에 눌러 앉을 것 같은 분위기에
괜한 인절미만 꾹 꾹 눌러대시며 더 한 번 말을 건네오신다.
"꼭 돌아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