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나의 기도

해피제제 2011. 10. 22. 06:26
1독서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복음말씀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단상

우연히 버스 안에서 이웃살이 봉사자 자매님을 만났다.
이런저런 서로의 근황을 묻다가 그이의 요즈음 고민들을 나누어 받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며 자신의 꿈을 쫓다가
현재에는 선배들과 공동으로 작은 디자인 회사를 차린 상태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출근을 하면서 '내가 이 일을 정말로 좋아하는가?'라는 의문이 들더란다.
그러면서 누군가 조언해 주기를 '만약 내일 죽게 된다면 과연 그 일을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그날에 '아니다'라는 대답이 올라오면서 한없이 공허감이 밀려 들었다.
그래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음을 한숨과 함께 토해 낸다.

그러면서 신앙생활 역시 이런저런 바쁜 일로 잘 못하고 있는 것 같고
그리고 하느님과 약속한 '최소한의 기도생활', 성경읽기와 묵주기도를 빼 먹기가 일쑤!
그래서 자신이 해야할 의무를 다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죄인처럼' 느껴진단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내게 방법을 물어 온다.

그이의 고민을 전해 받으면서 내 안에 올라오는 것은
1) '성장통'을 앓고 있구나
2) '최소한의 기도생활'이 문제구나

'왜?'라는 질문 자체가 그이에게는 이미 성장을 위한 화살이 당겨진 상태다.
내가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그것은 내 체험과 내 경험의 한계 안에서의 대답이다.
그이의 것이 될 수는 없다. 해서 그이만의 답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더 치열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 그리고 행복한 것들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면서
이제 시작된 고민들에게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빈다.

예수회의 설립자 중 한 사람인 이냐시오 성인은 후배 수도자들에게 당부하였다.
그분은 인간이 얼마나 약한지, 그리고 또 얼마나 예수회원들이 그 약함을 가졌는지 잘 알고 계셨다.
해서 그분은 예수회원들에게 하루 한 시간 기도(미사 포함)와 두 번의 양심성찰을 요구하신다.
하루에 한 시간 삼십분만을 오로지 하느님을 위해 내어 놓기를 청했다.
그러면서도 또 양보하시길 한 시간 기도 마저 이런저런 하느님의 일로 눈코뜰 새가 없다면
하루에 두 번, 양심성찰만은 잊지 말도록 당부에 당부 하신다.
성인이 교회의 일을 하다 보니 예수회원들이 얼마나 바쁠지를
그리고 또 얼마나 약한지를 간파하신 것이다.

예수회원들은 이냐시오 성인의 가르침 중에 '활동 중에 관상'을 몸에 배이도록 애쓴다.
잠에서 깰 때나, 세수를 할 때,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나, 계단을 오르내릴 때,
그리고 버스 안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차장 밖의 풍경에,
이웃살이를 찾는 이주민들 속에서, 그이들의 억울한 하소연으로,
공장을 방문해 고용주의 모습에서, 그이들이 내뱉는 욕설을 온 몸으로 들으며,
올라오는 수많은 모욕과 억울함을 통해, 이주민노동자들의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표정과 웃음에서,
한결 가벼워진 마음에 대고, 공동체에 돌아와 귀 기울여 주는 형제들과 감정들을 나누며,
함께 나누는 식사를 통해, 설거지를 하면서, 잠들기 전에 양심성찰을 하며,
그 안에서 하느님께 뿌듯함과 감사와 하루를 봉헌하면서 매 순간 당신을 기억할 수 있음에 또 감사!
내가 활동 중에 순간순간 당신을 기억하며 잊지 않음을 표하는 것, 이것이 내 기도다.

그이가 정해 놓은 '최소한의 기도생활'은 기준이 너무 높다.
현대를 사는 몸이 바쁜 그이는 잠들기 전에 '성경을 읽고, 묵주기도를 하기'에는 너무 힘겹다.
하루의 고된 일과로 온 몸이 녹초가 된 그이는 성경을 펴기도 전에 피곤한 몸이 먼저 나고
묵주기도는 어느 순간 다음날로 연기된다. 그리고 또 다음 날로 다음 날로....

그이가 약속했던 최소한의 기도생활은 자꾸 나를 하느님께 미안하고 죄스럽게 만들 뿐이다.
죄가 쌓이고 쌓여 결국은 비참한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뿐이다.
다행히 그 '비참함'을 알아보고 '아, 인간이 이렇게 약하구나' 하고 고백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직 그 수준이 아니라면 나는 죄투성이 인간으로 더 작아진 내 모습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이란 이렇게 약하다.

하루 한 시간 하느님 앞에 고요하게 머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도록,
그리고 먹고살기 바쁜 나라면 또 그렇게 매일의 활동 중에 하느님을 기억하며 그분을 갈망할 것,
이것이 나의 기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