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내가 선택한 죽음과 생명
해피제제
2011. 3. 2. 09:48
1독서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보답을 주시고,
당신의 예언자들이 옳다는 것을 드러내 주소서.
복음말씀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이나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정해진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단상
어제 팔당댐 근처의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생명평화미사'가 봉헌되었다.
누구보다도 환경과 생명을 살리는 일에 열심인 공동체 신부님 한 분은
어김없이 생명평화미사에 참석해서 분향을 올리신다.
급한 일로 예수회신학원 수사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두물머리로 '생명평화미사'에 참석차 떠났단다.
그러고보니 분명 생명평화미사에 많이들 참석했으리라.
모두들 바쁜 일정 중에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는
그 바쁜 일들도 잠시 밀쳐두고 다리품을 팔고 있으리라.
나는 심정적으로 벌써 그 장소에서 함께하고 있지만
이미 거기에 다다른 형제들의 발걸음과 그이들의 기도에
내 지향을 더해 볼 뿐이다.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함께 하고 싶다.
오늘은 그저 마음으로 지향을 대신하지만
내일은 몸도 그곳에 가 있으리라.
예수님 말씀이 맞다.
하느님 나라의 오른편과 왼편은 그분이 정할 일이 아니다.
바로 '내가',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펼친 '내 행동'으로 정해질 것이다.
예수님이 가신 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베푼 세례와 주신 잔은,
필연적으로 세상에서의 '죽음'을 약속한다.
세례를 받고, 그분이 주신 잔을 받아 마시는 이들은
반드시 이 세상에서 '죽을' 운명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이 물음에 '할 수 있습니다.'라고 응답한 것이다.
만약 내가 마시겠다는 잔이 어떤 잔인지 알았더라면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응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보답을 주시고,
당신의 예언자들이 옳다는 것을 드러내 주소서.
복음말씀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이나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정해진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단상
어제 팔당댐 근처의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생명평화미사'가 봉헌되었다.
누구보다도 환경과 생명을 살리는 일에 열심인 공동체 신부님 한 분은
어김없이 생명평화미사에 참석해서 분향을 올리신다.
급한 일로 예수회신학원 수사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두물머리로 '생명평화미사'에 참석차 떠났단다.
그러고보니 분명 생명평화미사에 많이들 참석했으리라.
모두들 바쁜 일정 중에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는
그 바쁜 일들도 잠시 밀쳐두고 다리품을 팔고 있으리라.
나는 심정적으로 벌써 그 장소에서 함께하고 있지만
이미 거기에 다다른 형제들의 발걸음과 그이들의 기도에
내 지향을 더해 볼 뿐이다.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함께 하고 싶다.
오늘은 그저 마음으로 지향을 대신하지만
내일은 몸도 그곳에 가 있으리라.
예수님 말씀이 맞다.
하느님 나라의 오른편과 왼편은 그분이 정할 일이 아니다.
바로 '내가',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펼친 '내 행동'으로 정해질 것이다.
예수님이 가신 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베푼 세례와 주신 잔은,
필연적으로 세상에서의 '죽음'을 약속한다.
세례를 받고, 그분이 주신 잔을 받아 마시는 이들은
반드시 이 세상에서 '죽을' 운명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이 물음에 '할 수 있습니다.'라고 응답한 것이다.
만약 내가 마시겠다는 잔이 어떤 잔인지 알았더라면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응답하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