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네! 여기있습니다."

해피제제 2011. 6. 29. 08:14
1독서

천사는 베드로의 옆구리를 두드려 깨우면서,
"빨리 일어나라." 하고 말하였다.


2독서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복음말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단상

어제 저녁 무렵부커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밤새 비가 그치지 않는다.
내가 서품을 받는 것도 아닌데 몇 번이나 잠을 깼다.
빗 소리 때문에....

오늘 명동성당에서 서품식이 있는 날이다.
심유환 수사님의 교회 안에서 치뤄지는 하느님과의 공식적인 결혼(?)이다.
그 쪽 동기들 역시 처음 시작은 꽤 많았다.
그런데 수련원에서 여덟 중 반이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났다.
첫 서원을 하고 신학원 3년 과정 중에 하나(?)가 떠났고,
해외 신학 과정 중에 또 한 명이 사랑을 찾아 떠나 갔다.
이제는 단 둘이 남았다.

매년 4-5명의 동기들이 함께 서품을 받던 광경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외로운 모습이다.
수도회 역시 갈수록 줄어드는 성소에도 불구하고
매해 그와 같은 풍성한 결실에 은근 '자랑스럽다' 싶었다.
그런데 근래에 보기 드물게 홀로 서품을 받게 된 것이다.
(남은 한 명은 필리핀 로욜라신학대학에서 신학 공부 중이다.
늦은 신학으로 내 후년에나 서품을 받을 예정이다.)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신부(신랑신부할 때의 신부)'로 산다는 것 
간밤 수사님은 잠이라도 제대로 청했을지 모르겠다.
내가 그 밤을 설친 것을 보면 그이도 그러지 않았을까...
그래도 신경 굵은 심 수사님이야 그런 걱정은 말도 안된다.
사막에 내 놔도 살아날 사람으로 누구나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대학 때는 아프리카에서 봉사를 했고, 신학공부는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했다.
한국 예수회원으서는 처음으로 아프리카에서 신학을 하고 오셨다)


심 수사님과는 나름 인연이 깊다.
작년부터 서품을 받는 신부님들은 모두가 신학대학원 후배들이다.
수련을 마치고 서강대 신학대학원 철학과로 입학을 하는 수사님들이라
천주교 신자도 아닌 사람이 '철학' 공부를 하러 왔다가
졸지에 재작년 대학원 동기 김상용 신부님을 비롯해서
그 밑으로는 쭉 내가 한번쯤은 갈궜던(?) 후배들이다.

수도회에 입회하기 전까지는 세상 모르고 수사님들을 못살게 굴었다.
그래서 한 번은 수도회 선배 노릇하려는 수사님을 만나서 '앗! 뜨거' 깊게 데인 적도 있다.
이래저래 나도 그이들도 사연이 많다. 

심 수사님과는 친구처럼 잘도 지냈다.
성격이 쿨한 게 주위 모두를 친구로 만드는 사람이다.
그이 곁에 있다보면 세상이 참으로 유쾌해 보인다.
그에게 뿜어 나오는 세상을 향한 긍정의 에너지가 주위를 온통 그렇게 만든다.
아마도 사제가 되어서도 변함없이 그렇게 살아갈 이다.

다시금 아프리카로 떠나갈 마음에 한국 예수회에서는 아쉬운 일이기는 하지만
베스트 오브 베스트, 해외 미션은 관구에서 가장 보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보내는 것이
예수회의 전통이듯이 또 그렇게 그분의 부름을 받아 아프리카로 미션을 떠날 것이다.

교회의 두 기둥 베드로, 바오로 사도가 오늘 로마에서 네로 황제의 박해로 순교를 했듯이,
그리고 순교자들의 피로 교회가 세상에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전하고 있듯이, 
오늘 2독서의 말씀처럼 심 수사님이 오늘 주님 대전에서 서약할 때에
당신의 삶 동안 '달릴 길을 다 달려' 그분 앞에 '정의의 화관'을 받아들 수 있기를 기도한다.


"네! 여기 있습니다."
성당에 울려 퍼질 수사님의 응답이 벌써부터 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