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더 나은 나'

해피제제 2011. 11. 12. 07:07
1독서

그들은 풀을 뜯는 말들 같았습니다.
또 어린 양들처럼 이리저리 뛰면서 주님, 자기들을 구해 내신 당신을 찬양하였습니다.


복음말씀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단상

친구와 산책을 나섰다가 자연스레 이야기가 길어지는데
"수녀님이 해 주시는 이야기가 왜 꼭 제 얘기 같죠?" 하길래
"그러게요. 주일날 신부님이 들려주시는 강론도 꼭 제 얘기 같던데,
아마 그런 것과 같은 이치 아닐까요?" 한다.

사람들이 보통으로 '힘 있는 말씀 앞에서는' 자신을 돌아보게끔 만들어져서
거울에 비추어 자신을 살피는 것은 자연스런 이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하느님을 닮도록 자신을 '더 나은 나'로 성장하게끔 창조되어서
다른 사람과 사물에 비교하고, 좋은 책 내용에 끌리고, 위인들을 본 받고 싶고,
예수님, 부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렇게 살아간 김수한추기경님이나 법정스님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을 마음 속에 품고 살게 한다.

좋은 것에는 자연스럽게 마음이 향하게 하는 힘이 있어
혹여 성장에 방해가 되는 것들에 내가 이미 마음을 두고 있다면 그것 역시 자극 받게 된다. 
그러니 신부님, 수녀님들 혹은 아침마다 읽고 묵상하게 되는 복음구절이 나를 멈추게 했다면
그 안에서 나를 '더 나은 나'로 이끄는 구절을 입술에 올려두고 나 자신을 돌아보면 될 일이다.

공교롭게도 오늘 독서와 복음말씀에 또 누군가는 걸려 넘어질지도 모른다.
'헉 이거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 아냐? 진짜 얄궃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까 내가 체험하지 않은 하느님은 내 눈이 이 말씀에 닿지 않게 하신다.
무언가 나를 당신의 말씀에 꽂히게 하는 것은 내 하느님 체험이 그 내용과 공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의 이 말들에 걸려 넘어지는 일은 없기를
이것은 내 체험이지 그대의 체험이 아니기에...

모든 것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기를, 그러면서 또 너무 희화화시키지도 말기를
'심각하게도', '희화화시키지도' 말라는 이 두 말에도 얽매이지 않기를....

아, 너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