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해피제제
2011. 5. 2. 06:28
1독서
이제, 주님! 저들의 위협을 보시고,
주님의 종들이 주님의 말씀을 아주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복음말씀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단상
이 아침 눈을 뜨자 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어제 이웃살이를 찾아 든 베트남 여성과 그 아기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전화벨이다.
그러나 그 안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다급함이 묻어 있는 것다.
강화도의 한 여성쉼터에서 여성이 머물 '쉼터'를 찾는다.
그곳 시설이 노출되어 더 이상 이 여인을 머물게 할 수 없단다.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쳐나온 결혼이민 여성이다.
한국에서 1년4개월째, 많이도 맞고 살았단다.
아니, 평소 남편은 아주 착하다.
단, 술만 먹었다하면 무지막지하게 아내를 때린다.
그게 이제는 갓 태어난 2개월 된 아기에게도 위협적이다.
아직도 앳된 모습의 수심가득한 얼굴에는
가끔씩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가면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이 여인이 원하는 것은 남편과의 이혼 그리고 아기를 키울 수 있기를...
한 아기 엄마의 지극히 평범한 바램이지만 그러나 그 과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
여러 쉼터를 전전하다.
집요한 남편의 손길을 피해 이웃살이까지 찾아왔다.
벌써 네 번째 쉼터다.
이전 세 곳 쉼터의 전화번호를 귀신같이 찾아내서 남편이 행패를 부리고
또 협박전화를 일삼는다. 다른 쉼터들의 실무자들까지 위협을 느낀단다.
첫번째 쉼터의 담당 수녀님과의 통화에서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음을 전해 듣게 된다.
아주 쌩 난리를 쳤나보다. 그 남편과 남편이 속한 폭력배들이 들이닥쳐....
얼마나 집요했는지 쉼터에서 아내를 데려간 남편은 아내에게 폭력과 협박을 해서
수녀님이 운영하는 쉼터의 부당함을 거짓 진술케 하여 여성가족부와 신문고에 진정을 내는 등
쉼터에게 여간 애를 먹인 게 아니었나보다.
결국 시끌벅끌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수녀님도 손을 떼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통화 중에는 '제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꼭 도와주기를 부탁'해 온다.
이웃살이의 바쁜 일정에 모두가 외근 중이었고
강화 여성쉼터의 실무자 그리고 엄마와 아기를 맞이한 것은 나 혼자다.
우선은 사정이 딱하기에 방을 내어주고 돌아가는 것을 보기로 했다.
하지만 일을 마치고 돌아온 소장님은 이 모든 사정을 듣고 반색을 표한다.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상황이 단순히 쉼터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시며
본질적으로 이 여성이 폭력남편과의 이혼과 아기를 키울 수 있도록 양육권을 획득하도록
그래서 본국으로 혹은 한국 국적을 취득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이웃살이는 결혼이주여성보다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에
전문적인 여성쉼터에 연결해서 이 여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다른 쉼터를 알아 보는 게 좋겠다 한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그 여인과 아기가 떠오른 것은
아마도 '또 다른 쉼터'를 찾아 나서야 하는 그이들의 처지가 생각나서일 것이다.
그리고 오래 이 일을 해 온 소장님의 구구절절 '옳은 해결책'에
그래도 내 마음은 동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마음만 아픈 나는 '그냥 편히 쉬었다 갔으면'하는 바램이다.
그래서 마음이 안정되고 여유을 찾게 될 때
다음 단계, 즉 이혼이든 양육권 소송이든 시작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현실적인 소장님의 해결방안에 나는 선뜻 반대를 못한다.
구구절절 그분의 해결책이 옳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은 왜 이럴까...
성령이, 하느님의 뜻이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는데...
이제, 주님! 저들의 위협을 보시고,
주님의 종들이 주님의 말씀을 아주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복음말씀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단상
이 아침 눈을 뜨자 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어제 이웃살이를 찾아 든 베트남 여성과 그 아기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전화벨이다.
그러나 그 안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다급함이 묻어 있는 것다.
강화도의 한 여성쉼터에서 여성이 머물 '쉼터'를 찾는다.
그곳 시설이 노출되어 더 이상 이 여인을 머물게 할 수 없단다.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쳐나온 결혼이민 여성이다.
한국에서 1년4개월째, 많이도 맞고 살았단다.
아니, 평소 남편은 아주 착하다.
단, 술만 먹었다하면 무지막지하게 아내를 때린다.
그게 이제는 갓 태어난 2개월 된 아기에게도 위협적이다.
아직도 앳된 모습의 수심가득한 얼굴에는
가끔씩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가면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이 여인이 원하는 것은 남편과의 이혼 그리고 아기를 키울 수 있기를...
한 아기 엄마의 지극히 평범한 바램이지만 그러나 그 과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
여러 쉼터를 전전하다.
집요한 남편의 손길을 피해 이웃살이까지 찾아왔다.
벌써 네 번째 쉼터다.
이전 세 곳 쉼터의 전화번호를 귀신같이 찾아내서 남편이 행패를 부리고
또 협박전화를 일삼는다. 다른 쉼터들의 실무자들까지 위협을 느낀단다.
첫번째 쉼터의 담당 수녀님과의 통화에서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음을 전해 듣게 된다.
아주 쌩 난리를 쳤나보다. 그 남편과 남편이 속한 폭력배들이 들이닥쳐....
얼마나 집요했는지 쉼터에서 아내를 데려간 남편은 아내에게 폭력과 협박을 해서
수녀님이 운영하는 쉼터의 부당함을 거짓 진술케 하여 여성가족부와 신문고에 진정을 내는 등
쉼터에게 여간 애를 먹인 게 아니었나보다.
결국 시끌벅끌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수녀님도 손을 떼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통화 중에는 '제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꼭 도와주기를 부탁'해 온다.
이웃살이의 바쁜 일정에 모두가 외근 중이었고
강화 여성쉼터의 실무자 그리고 엄마와 아기를 맞이한 것은 나 혼자다.
우선은 사정이 딱하기에 방을 내어주고 돌아가는 것을 보기로 했다.
하지만 일을 마치고 돌아온 소장님은 이 모든 사정을 듣고 반색을 표한다.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상황이 단순히 쉼터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시며
본질적으로 이 여성이 폭력남편과의 이혼과 아기를 키울 수 있도록 양육권을 획득하도록
그래서 본국으로 혹은 한국 국적을 취득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이웃살이는 결혼이주여성보다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에
전문적인 여성쉼터에 연결해서 이 여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다른 쉼터를 알아 보는 게 좋겠다 한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그 여인과 아기가 떠오른 것은
아마도 '또 다른 쉼터'를 찾아 나서야 하는 그이들의 처지가 생각나서일 것이다.
그리고 오래 이 일을 해 온 소장님의 구구절절 '옳은 해결책'에
그래도 내 마음은 동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마음만 아픈 나는 '그냥 편히 쉬었다 갔으면'하는 바램이다.
그래서 마음이 안정되고 여유을 찾게 될 때
다음 단계, 즉 이혼이든 양육권 소송이든 시작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현실적인 소장님의 해결방안에 나는 선뜻 반대를 못한다.
구구절절 그분의 해결책이 옳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은 왜 이럴까...
성령이, 하느님의 뜻이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