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발에 먼지를 털고...

해피제제 2011. 5. 21. 11:33
1독서

그들은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이코니온으로 갔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복음말씀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단상

수련원 2년차가 되면 서원을 앞두고 '순례'를 떠난다.
12월 중순쯤 떠나서 크리스마스 전날 돌아오게 되는 여정이다.

중요한 것은 음식은 물론 돈 한 푼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신의 뜻'에 모든 것을 맡겨 두고 나 자신과 하느님을 찾는 여정이다.

한 겨울에 밥을 얻어 먹기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멀쩡하게 생긴 젊은이(?)들이 밥 얻어 먹는데에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아직은 밥 인심은 후한 편이라 오히려 매끼 더 잘 대접받기도 한다.
차 편을 얻어 타는 것도 그만하면 괜찮다.

그런데 잠자리를 구하는데에 이르면 모두들 난색을 표한다.
그러기도 한 것이, 몰골은 추레하여 생판 낯선 사람을 집에 들이기가 쉽겠는가

어쨋튼 우리는 그동안 순례를 떠났던 선배들의 족보에 따라 개신교 '교회'를 찾는다.
많은 경우 교회에서는 잠자리를 얻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다는 평들이다.
반면에 '성당'에서는 좀처럼 잠자리를 얻을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편견이 '정말인지' 궁금해서 오히려 더 '성당'들을 찾았던 내 경우만 보더라도
성당의 어느 곳에서도 잠자리를 청할 수 없었기에 '맞는 것'으로 확인됐다.

오늘 독서를 읽다가 한 선배의 '순례 일화'가 떠올랐다.
그 겨울 수사님이 모 성당에서 몇 번이나 잠자리 사정을 넣다가

퉁명스럽게 거의 내쫓기다시피 내몰린 사제관 문 틈에 오늘 사도행전의 말씀을
떠억하니 꽂아 두고 나왔단다.

'그들은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좀 짓궃다'했는데
아마도 그 수사님이 느꼈을 '한 겨울'의 추위가 
이렇게 매섭게 본당신부님께 향했는지도 모른다.

그 메모를 펼쳤을 때의 신부님의 표정과 마음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뭐 이런 사람이 다있나?'며 기분 나빠했을까
아니면 '마음이 괴로워' 한 동안 산란했을까 생각해 본다.

여하튼 매년 이렇게 '무전 순례'를 통해 2년간의 수련기를 정리하고
하느님께 온전히 내맡기는 체험(먹고, 자고, 걷고, 청하고, 모욕과 업신여김을 당하며)
은혜를 청할 수 있는 용기, 또 겸손히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등 등
매 걸음 걸음마다 나 자신이 아닌 하느님의 손길에 불확실한 앞 날을 봉헌하며
나아갈 수 있는 체험을 비로소 몸으로 익히게 된다.
그리고 오늘 나는 또 그렇게 새겨진 체험들을 꺼내 놓고
그분께 맡겨진 삶을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