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분별있는 사랑

해피제제 2011. 10. 4. 07:31
1독서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복음말씀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단상

수련원 시절에 처음 개량한복을 입기 시작했다.
기도시간 뿐만 아니라 평상시 활동을 하기에 생활한복만큼 편한 복장이 없었다.
또 다른 여러 옷들과 씨름할 필요없기에 수련원 자매님이 손수 지어 주신 단순한 생활한복이
이제 막 수도생활을 시작하는 수련자들에게는 단연 인기였다.

그렇게 몸에 맞쳐진 생활한복은 서원을 한 후에도 신학원까지 따라 들었다.
먹고, 자고, 입고(?)하는 모든 생활에서 역시나 그 간편함과 단순함 때문에
내 복식 선택에 있어 제 일 순위는 생활한복이 되곤 하였다.
달라진 게 있다면 조금은 세련되어졌달까
별 이유없이 생활한복을 고집(?)하는 모습에 신부님들이 받아 온 생활한복들이
하나 둘 내 차지가 된 것이다.

옷에 자꾸 몸이 맞춰지면서 이제는 단추를 채우거나 허리띠를 둘러야 하는 정장을 입을 때면
혹은 캐주얼식의 옷차림을 할 때 조차도 몸이 꽉 끼는 것이 어지간히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나를 만나는 벗은 이런 내 모습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물하고 싶었는지
어느날 개량한복을 정성스레 포장해서 이웃살이를 찾아 왔다.
 
그동안 신부님들을 통해 받아든 옷이라 조금은 작거나 헐렁한 개량한복이 전부였는데
눈썰미 좋은 친구 덕분에 처음으로 내 몸에 꼭 맞는 넉넉한 옷으로 입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단순하고 간편한 이유로 그 옷을 가장 즐겨 입곤 하였다.

그런데 친구가 한 번씩 이웃살이를 찾아들 때면 언제나 입고 있는 그런 내 모습 때문인지
이 친구는 다음에 또 개량한복을 우편으로 부쳐 왔다.
'뭐 이런 걸 다'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역시나 즐겨 입으면 될 텐데
상자를 뜯고 나서 망연자실!
올라오는 첫 느낌은 '허걱! 이런 걸 어떻게 입고 다니나' 하는 복잡한 마음이었다.
그래도 친구의 정성을 생각하는 마음에 용기를 내어 옷을 곱게(?) 차려입고 사도직장을 향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내 복식을 본 동기 수사님과 소장님 찾아든 사람들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동기 수사님 왈 '여기가 궁궐이냐 이건 숫제 왕자님 옷이네' 하며 짖궃게 놀린다.
센터 소장님 왈 '어디 파티가세요? 맞네 내일모레 태국대사관 초대에 그 옷 입고 가시면 되겠네'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 왈, 아니 그이들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내 위 아래를 바라본다.
순식간에 얼굴이 뜨거워진다.

결국 귀티 나는 왕자님이 파티에나 가서 입을 생활한복은 고이 옷장에 모셔두게 되었다.
일년에 한 두번 명절에나 입을 팔자가 된 것이다.
벗의 정성과는 달리 일상에서 입기에는 무리가 있는 옷이다.
설운도의 '번쩍번쩍 의상'을 생각해 보면 내가 받은 생활한복이 이해가 간다.
어찌 평범한 내가 설운도씨의 빤짝이 무대복을 매일 얼굴 두껍게 입고 다닐 수 있겠는가


오늘 마르타와 마리아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 친구의 '옷 선물'에 생각이 닿는다.
오늘 이 가정을 찾기 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당신이 죽게 될 수난을 두 번이나 연설하셨다.
그런데 마르타는 예수님을 반갑게 맞아들여 그녀의 집으로 초대한 것까지는 좋은데
예수님의 두렵고 어지러운 마음은 아랑곳 없이 음식 준비에만 여념이 없다.
반면에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눈에 자신의 눈을 맞추며 
그 연민과 안타까움 그리고 사랑이 가득한 시선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다. 
 
마르타가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하는 이같은 분주한 음식준비도 순수한 호의와 사랑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좀 더 분별있는 사랑이란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그이가 원하는 것을 해 줄 수 있을 때이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길이 있다.
마르타와 마리아가 예수님의 길을 함께 간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저 함께 가줄 수는 있겠으나 그 길이 예수님의 그것과는 같지 않다.
그리고 그 둘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예수님의 길을 따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랑도 분별있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 반드시 그이에게도 같은 크기의 사랑일 수가 없다.
그이의 마음을 살피고, 그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알아내기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또 때론 아프기까지 하다.
사랑은 그래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