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사랑에 빠지는 '이유'

해피제제 2011. 1. 27. 08:10
1독서

우리가 고백하는 희망을 굳게 간직합시다.
약속해 주신 분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복음말씀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단상

'그 사람이 너를 떠난 이유'

그 사람이 너를 떠난 건,
네가 충분히 갖지 못한 '그 무엇' 때문이야.
그가 내심 기대했지만 너는 충분히 줄 수 없었던 '그 무엇'
그러면서 실은 한 번도 네게 정확히 말하지는 않았던 '그 무엇'
바로 그것 때문에 그는 떠났어.

이렇게 네가 무너진다고 해서 그 사람,
다시 돌아오지 않아,
혹시 기회가 오더라도 그와는 다시 만나지 마.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언젠가는 똑같은 일을 다시 겪게 될 거야.
아까 이야기한 '그 무엇'을 네가 갖추기 전까지는.

'그 무엇'이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갖출 수 없는 것일지라도,
너무 좌절하지는 말아.
'그 무엇'이란 무척 상대적인 것이거든.
네가 언젠가 만날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지금 네가 가진 그것이 너의 가장 큰 매력이 될 수도 있어.

그는 너를 사랑하기에 떠난 것이 아니야.
너보다는 자신을 더 사랑하기에 떠났어.
이기적인 사람이지.
하지만 너무 원망하거나 욕하지는 마.
우리 모두 이기적이잖아.
하지만 누군가,
서로에게 이기적이고 싶지 않게 되는 사람이
저 거리 어딘가에 분명히 있어.
우리는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야,
다만 이번에는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던 것뿐...

-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그냥', '그 이유 잘 모르겠다'가 사랑에 빠지는 '이유'다.
'어떤 것', '그 무엇'이 '좋아서'라면 언젠가 이 이유들 때문에 이별을 하게 된다.

하느님이 '그냥' 좋아서 하는 기도는 '기대'가 없다.
아침마다 그분 앞에 멈춰서는 열심과 성실함은 '그 무엇' 때문이 아니다.

'사랑' 없는 '헌신'은 쓰디 쓰다.
언젠가는 '본전' 생각이 난다.

어머니가, 아버지가 가정을 지키며 '희생'과 '책임'을 다하는 것은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기에 '헌신'으로 드러난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한다.

누군가, 무엇을 위해서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희생', '노력' 그리고 '책임'과 '성실함'이라는 말을 쓰기에 적합치 않다.
'사랑'이란 그래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