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실패
1독서
“주님께서는 짙은 구름 속에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당신을 위하여 웅장한 집을 지었습니다.
당신께서 영원히 머무르실 곳입니다.”
복음말씀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단상
서강대 사제관에서 실습을 마치고 신학을 나가는 형제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동기 수사님 다섯과 아랫반이지만 함께 실습을 했던 수사님까지 일곱이 초대를 받으니
오랜만에 서강공동체에 활기가 돈다.
서강대학교에서 가르치고 계시거나 혹은 학교 운영에 관여하고 계시는 분들이
28명이 살고 있는 공동체이다 보니 평균 연령이 확 높은 것이
예수회 공동체 중에서도 가장 많은 회원이 살고 있고 또 평균연령도 높은 편이다.
식사 전에 간단히 맥주와 포도주로 소셜타임을 갖고서
실습2년은 어떻게 보냈는지 신학은 어디로 떠나게 되었는지
지나온 여정과 앞으로의 포부를 선배 예수회원 앞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면서 되 묻게 된 것은 지난 2년간 내 사도직장이었던 ‘이웃살이’가
내게 들려 준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청했던 은총은 무엇이었고, 내가 직면했던 도전들은 어떤 것들이었으며,
그 도전들 앞에서 나는 어떻게 반응했는가?
그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오가는 것들 사이에서 동시에
‘성공과 실패’라는 언어는 부적절하다는 생각이다.
성공이든 실패든 이 둘 모두가 좋은 가르침이었고 스승이었다.
실패를 통해서 배우지 못했다면 진짜 ‘실패’한 마음에 한없이 우울해졌으리라.
그러나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서 가슴을 치며 무엇인가를 깨닫고 ‘다음’을 기약한다면
그것 또한 성공이라는 생각이다.
그러하기에 여러 올라오는 실패의 체험들을 돌아보며 ‘더 열정적이지 못했던 것,
더 관계를 맺지 못했던 것, 더 사랑하지 못했던 것’들에 미안함이 일면서도
슈퍼맨이 아닌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성실하게 열심했다’는 것에 감사를 드린다.
그래서 2년간의 실습에서 매일같이 찐하게 얻어 들은 것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그러고 보니 저녁 식사 내 주위에 앉았던 신부님들 중에는 일본에서 신학을 하신 분들이 많다.
재단이사장을 맡고 계신 유시찬 신부님, 신학교수인 김산춘 신부님,
학교 관리처장 이인주 신부님 그리고 작년에 서품을 받으신 막내 교목사제 배영길 신부님까지...
앉다보니 또 그렇게 앉게 되었다.
그러면서 듣게 되는 것은 당신들이 신학을 하면서의 어려움들이었으니
‘흠.. 흠.. 나는 3개월만에 그 어렵다는 JPT 1급을 따았노라
다른 나라 예수회원들은 1년 반 혹은 2년이 지나도 못 따는 것을....’,
‘나는 한 학기에 13과목씩 들으면서 죽는 줄 알았다’,
‘대학원 입학시험 치르면서 전공시험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흰 머리가 많이 늘었다’,
‘일본 예수회원 누구누구를 조심해라. 뒤끝 작렬이다.’ 등 등
시작도 하기 전에 후배 기를 잔뜩 죽이는 것은 또 무슨 심뽀들 이신건지
하느님도 참으로 무심하시지...
오늘 복음말씀을 관조묵상하면서 유난히 재미난 이미지 한 컷은 ‘장터’,
병자들과 그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 사이를 지나시는 모습이다.
그 시끌벅적한 수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도
‘저녁 밀밭 사이’를 걸어가시는 평온함의 이미지에 때문에
어제의 걱정스런 말들도 오늘의 공부할 것도
그리고 앞으로의 일본에서의 여정도 다 ‘괜찮다’ 하시니
이글을 쓰는 지금까지 그 여운이 길다.
그냥 어쩔 수 없는 때는 늘 그렇듯이
배 째라 하고 맡겨두고 나아가 볼 일이다.
그래 볼 일이다.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