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성인' 혹은 '폭탄'?
해피제제
2011. 8. 5. 07:28
1독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복음말씀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단상
아주 열심인 예수회원이 있다.
사도직 일이면 일, 공부면 공부, 기도면 기도, 사회 참여면 사회 참여...
모든 일에 열정을 가지고 주위에서 보기에도 참으로 열심히 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열심인(?) 예수회원들에게 두 가지 상반된 표현이 적용된다.
'성인' 혹은 '폭탄'
한 열심인 예수회원이 다른 사도직장과 다른 공동체로 이동을 하게 될 때,
아주 열렬히 환영을 받으며 '그이라면 약함이 있더라도 평생을 같이 살겠어'한다.
반면에 '폭탄'이 뜬다는 소문이면
'아니 우리가 무슨 폭탄 제거반이야? 왜 하필 우리 공동체야! 해도해도 너무하네....' 한다.
심지어 '우리 공동체는 제발....' 공동체 원장신부님들이 나서서 손을 내젓는다.
'우리 사도직장은 그냥 놔두시고 다른 곳으로...' 라며 사도직장에서도 그렇다.
여기저기서 '열심히 사는 것은 알겠는데... 여기는 말고' 한다.
그이가 성실함과 빼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함께 일하거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힘들어 한다면,
그이와는 일을 하지 못하겠다며 모두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면,
그 '좋은 것'들이 주신 좋은 선물에 걸맞게 쓰여 지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나는 열심히 수도삶을 사는데, 성실히 사도직을 수행하는데,
누구보다 치열하게 헌신하는데..' 라며 한탄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면,
그래서 너무 억울하고 서운하다면,
그렇다면 좀 더 자신을 집중해서 보아야 할 일이다.
남들은 다 '알아'(?) 주는데, 나만 그것을 모르고 있다면
내가 함께 살아갔으면 좋을 '성인'인지 아니면 '폭탄'인지 모르겠다면
내 주위를 한 번 둘러 보면 될 일이다.
그리고 '밥 한 번 먹자?'라고 초대해 볼 일이다.
내 돈 들여 '밥 사겠다는 데' 계속 미루는 그 사람들을 원망할 게 아니다.
내가 바로 '밥 한 번 같이 먹기가 그렇게 힘든 사람'이다.
밥이라도 편하게 먹어야 할 게 아닌가!
내가 그만큼 불편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냐시오 성인에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그래 보인다.
열심이긴 한데 피가 흐르고 있는 건지 모를 찬 바람이 쌩쌩 불어오는사람...
영신수련을 위해 무려 4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하비에르 성인을 준비시켰다.
그리고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라는 말씀에
파리대학에서의 수학도, 세상에서 이름을 날리겠다는 명예도, 귀족에 걸맞는 풍요로운 삶도,
이 모든 것들을 내려 놓고 이냐시오 성인의 초기 동료가 되었다.
그리고 함께 'AMDG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예수회를 창설하였으며
이 땅에서 사랑하는 동료들을 다시 보지 못하고 동쪽 끝 선교사로서 중국을 눈 앞에 두고 선종하였다.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복음말씀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단상
아주 열심인 예수회원이 있다.
사도직 일이면 일, 공부면 공부, 기도면 기도, 사회 참여면 사회 참여...
모든 일에 열정을 가지고 주위에서 보기에도 참으로 열심히 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열심인(?) 예수회원들에게 두 가지 상반된 표현이 적용된다.
'성인' 혹은 '폭탄'
한 열심인 예수회원이 다른 사도직장과 다른 공동체로 이동을 하게 될 때,
아주 열렬히 환영을 받으며 '그이라면 약함이 있더라도 평생을 같이 살겠어'한다.
반면에 '폭탄'이 뜬다는 소문이면
'아니 우리가 무슨 폭탄 제거반이야? 왜 하필 우리 공동체야! 해도해도 너무하네....' 한다.
심지어 '우리 공동체는 제발....' 공동체 원장신부님들이 나서서 손을 내젓는다.
'우리 사도직장은 그냥 놔두시고 다른 곳으로...' 라며 사도직장에서도 그렇다.
여기저기서 '열심히 사는 것은 알겠는데... 여기는 말고' 한다.
그이가 성실함과 빼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함께 일하거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힘들어 한다면,
그이와는 일을 하지 못하겠다며 모두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면,
그 '좋은 것'들이 주신 좋은 선물에 걸맞게 쓰여 지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나는 열심히 수도삶을 사는데, 성실히 사도직을 수행하는데,
누구보다 치열하게 헌신하는데..' 라며 한탄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면,
그래서 너무 억울하고 서운하다면,
그렇다면 좀 더 자신을 집중해서 보아야 할 일이다.
남들은 다 '알아'(?) 주는데, 나만 그것을 모르고 있다면
내가 함께 살아갔으면 좋을 '성인'인지 아니면 '폭탄'인지 모르겠다면
내 주위를 한 번 둘러 보면 될 일이다.
그리고 '밥 한 번 먹자?'라고 초대해 볼 일이다.
내 돈 들여 '밥 사겠다는 데' 계속 미루는 그 사람들을 원망할 게 아니다.
내가 바로 '밥 한 번 같이 먹기가 그렇게 힘든 사람'이다.
밥이라도 편하게 먹어야 할 게 아닌가!
내가 그만큼 불편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냐시오 성인에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그래 보인다.
열심이긴 한데 피가 흐르고 있는 건지 모를 찬 바람이 쌩쌩 불어오는사람...
영신수련을 위해 무려 4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하비에르 성인을 준비시켰다.
그리고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라는 말씀에
파리대학에서의 수학도, 세상에서 이름을 날리겠다는 명예도, 귀족에 걸맞는 풍요로운 삶도,
이 모든 것들을 내려 놓고 이냐시오 성인의 초기 동료가 되었다.
그리고 함께 'AMDG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예수회를 창설하였으며
이 땅에서 사랑하는 동료들을 다시 보지 못하고 동쪽 끝 선교사로서 중국을 눈 앞에 두고 선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