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솔직하면 '까칠하다'는 말을 듣는다
해피제제
2012. 1. 12. 07:13
1독서
"그 진영에 신이 도착했다."
복음말씀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단상
타인을 대할 때의 내 행동의 동인은 그이에게 솔직하고픈 마음이다.
'공감'하고픈 바램으로 그이를 살피고 내 맘이 그이에게 닿기를 소망한다.
공항에 이스라엘에서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신부님을 마중 나가면서
몇 번이고 되묻는다. '왜 그분은 마중나올 수 있느지'를 또 그렇게 짓궃게 묻고,
나는 또 왜 이렇게 복잡한 마음으로 '그러겠습니다.'했던가!
그동안 수도 삶에서 이렇게 자연스럽게(?) 청을 해 오는 분은 처음이다.
공항으로 마중 나와 달라는 부탁에 한 동안 고민스럽기도 했다.
떠날 때도 그랬거니와 오랜기간 헤어짐이 길어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배웅이 아닌
단기간의 짧은 여행이나 세미나에 그럴 때면 공항으로 데려다 줄 수 있는지,
아니면 또 데리러 와 달라는 부탁이 전혀 '예수회원스럽지 않은' 모습으로 생소하기까지 했다.
그런 터에 잦은 출장으로 한 번이라도 공항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해 올 때는
처음부터 아예 거절의 말을 하면서 괜히 미안해지게 만드는,
그래서 무언가 나를 복작스럽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게 된다.
아마도 '내 마음'에 정직 하고픈 마음이었으리라.
새벽같이 일어나 내 일과를 물리고 그이의 청을 들어 주었다가
그러한 까닭에 내가 하고픈 일과 내게 맡겨진 사도직에 차질이 생길거라면
그리고 '기꺼운 마음'으로 배웅하고나 환대하지 못할 거라면
또 처음은 어찌어찌 했으나 매번 그렇게 하지 못할 거라면
처음부터 솔직하게 고백하는 게 낫다 싶었다.
게다가 이건 순전히 '내 생각' 이지만
내 사정이 그렇다면 당연히 다른 사람의 사정도 생각하게 되거니와
새벽같이 일어나야 하는 그이의 힘겨움이나
차를 몰고 공항까지 배웅하고 또 돌아가서 하루종일 사도직을 나서야 하는 저질체력의 고통,
그래서 내가 조금 불편하면(?) 다른 형제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들로
감히 배웅을, 혹은 마중을 청하지 않는다.
수도회 내에서 아마도 불문율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다.
그런데 이 전통(?)을 깨는 수도 형제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으니
위와 같은 이유들을 안다면 그렇게 자연스럽게 청해 오지 않을텐데 하는 마음에
괜히 그 규칙을 깨는 그이가 어이가 없고, 또 내 복잡스러운 마음에 퉁명스럽게 거절을 해준다.
그이는 배웅을 해 주었을 때도, 또 이렇게 마중을 나와 주었다고 한껏 고마운 마음을 표하지만
내 솔직한 마음은 여전히 복잡스러움을 간직하고 있기에 역시나 또 그 고마움에 미안함이 남는다.
내가 내 마음 같지 않게 타인을 대할 때면 진심이 아니기에 내게도 그이에게도 미안한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다하지 못할 거라면, 이런 불편함을 간직할 것을 안다면 처음부터 거절 해야 한다.
누군가는 이런 모습들에 '까칠하다'라고도 하고, 또 쿨하다고도 하고, 재수 없다고도 하겠지....
그이도 당장에 섭섭한 마음이 올라올지도 모르겠지만
진심을 감추고 대하는 마음이라면 차라리 그이 앞에서 지금 거절해 주는 것이 옳다.
물론 각오는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동기수사님 말처럼 '피도 눈물도 없는 형우기 같으니라고'라는 말이
수도회 내에서 공공연히 회자될 수 있으니까.
"그 진영에 신이 도착했다."
복음말씀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단상
타인을 대할 때의 내 행동의 동인은 그이에게 솔직하고픈 마음이다.
'공감'하고픈 바램으로 그이를 살피고 내 맘이 그이에게 닿기를 소망한다.
공항에 이스라엘에서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신부님을 마중 나가면서
몇 번이고 되묻는다. '왜 그분은 마중나올 수 있느지'를 또 그렇게 짓궃게 묻고,
나는 또 왜 이렇게 복잡한 마음으로 '그러겠습니다.'했던가!
그동안 수도 삶에서 이렇게 자연스럽게(?) 청을 해 오는 분은 처음이다.
공항으로 마중 나와 달라는 부탁에 한 동안 고민스럽기도 했다.
떠날 때도 그랬거니와 오랜기간 헤어짐이 길어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배웅이 아닌
단기간의 짧은 여행이나 세미나에 그럴 때면 공항으로 데려다 줄 수 있는지,
아니면 또 데리러 와 달라는 부탁이 전혀 '예수회원스럽지 않은' 모습으로 생소하기까지 했다.
그런 터에 잦은 출장으로 한 번이라도 공항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해 올 때는
처음부터 아예 거절의 말을 하면서 괜히 미안해지게 만드는,
그래서 무언가 나를 복작스럽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게 된다.
아마도 '내 마음'에 정직 하고픈 마음이었으리라.
새벽같이 일어나 내 일과를 물리고 그이의 청을 들어 주었다가
그러한 까닭에 내가 하고픈 일과 내게 맡겨진 사도직에 차질이 생길거라면
그리고 '기꺼운 마음'으로 배웅하고나 환대하지 못할 거라면
또 처음은 어찌어찌 했으나 매번 그렇게 하지 못할 거라면
처음부터 솔직하게 고백하는 게 낫다 싶었다.
게다가 이건 순전히 '내 생각' 이지만
내 사정이 그렇다면 당연히 다른 사람의 사정도 생각하게 되거니와
새벽같이 일어나야 하는 그이의 힘겨움이나
차를 몰고 공항까지 배웅하고 또 돌아가서 하루종일 사도직을 나서야 하는 저질체력의 고통,
그래서 내가 조금 불편하면(?) 다른 형제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들로
감히 배웅을, 혹은 마중을 청하지 않는다.
수도회 내에서 아마도 불문율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다.
그런데 이 전통(?)을 깨는 수도 형제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으니
위와 같은 이유들을 안다면 그렇게 자연스럽게 청해 오지 않을텐데 하는 마음에
괜히 그 규칙을 깨는 그이가 어이가 없고, 또 내 복잡스러운 마음에 퉁명스럽게 거절을 해준다.
그이는 배웅을 해 주었을 때도, 또 이렇게 마중을 나와 주었다고 한껏 고마운 마음을 표하지만
내 솔직한 마음은 여전히 복잡스러움을 간직하고 있기에 역시나 또 그 고마움에 미안함이 남는다.
내가 내 마음 같지 않게 타인을 대할 때면 진심이 아니기에 내게도 그이에게도 미안한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다하지 못할 거라면, 이런 불편함을 간직할 것을 안다면 처음부터 거절 해야 한다.
누군가는 이런 모습들에 '까칠하다'라고도 하고, 또 쿨하다고도 하고, 재수 없다고도 하겠지....
그이도 당장에 섭섭한 마음이 올라올지도 모르겠지만
진심을 감추고 대하는 마음이라면 차라리 그이 앞에서 지금 거절해 주는 것이 옳다.
물론 각오는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동기수사님 말처럼 '피도 눈물도 없는 형우기 같으니라고'라는 말이
수도회 내에서 공공연히 회자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