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수도원을 떠나라면....

해피제제 2011. 6. 30. 07:04
1독서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복음말씀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단상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떠오른 건 '비에 떨고 있을' 이웃살이 강아지다.
엇그제 마당정리를 하면서 개집을 풀밭이 울창한 곳으로 옮겨두었다.
하루종일 볕이 들었던터라 코세만 옮겨두고 개집은 옮길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어제 그리고 오늘 이 아침 비가 무섭게 내리고 있다.

쉼터에 머물고 있는 이주노동자 친구들이 개를 개집으로 옮겨 주든지
아니면 개집을 코세가 있는 곳으로 옮겨 두면 좋으련만....
그 걱정 때문인지 간 밤 잠을 설쳤다.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듣게 된다
아브라함에게 '이사악'이 어떤 의미인가!

이사악은 늘그막 86세에 얻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이다.
하가르에서 얻은 '이스마엘'이 있었지만 그이는 서자다. 본처 소생이 아니다.
유다 전통에서 장자의 의미는 남다르다.
조선시대의 장자의 의미에 더해 신의 섭리와 축복까지 이어진다. 
그런 이사악을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신다.
'너의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쳐라'

그런데 또 그것을 허락한 아브라함의 속내란....

다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신뢰'다.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아브라함의 하느님을 향한 '믿음'은
그냥 저절로 형성되고 쌓아진 것이 아니다.

그가 집과 가족을 비롯해 어릴 적부터 살아온 삶터를 떠나 
불확실하게 펼쳐진 곳으로 묵묵히 떠날 수 있었던 것은,
'가장 포기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것마저도 놓을 수 있게 만드는'
그것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의 생명일지라도
그이에게 감히 놓게 하는 하느님과 그와의 어떤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아브라함의 하느님에 대한 체험'이
그 둘 사이에 뗄레야 뗄 수 없는 '신뢰'의 관계로
그리고 삶 속 깊이 새겨진 '믿음'으로 열매 맺었다 말한다.

내게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버리라고 요구하시는 하느님,
만약 그것이 언뜻 올라오는 지금의 '수도삶'이라면
나는 아브라함처럼 내 삶의 터전을, 이사악을 떠나버릴 수 있을까!
내게는 아브라함의 이사악이 내 '수도삶'의 의미만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