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수도, 성직자가 굶어 죽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해피제제
2011. 1. 8. 08:51
1독서
우리가 그분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복음말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단상
온 국민의 교복(?)으로 유명한 North face 점퍼를 걸치고
평일 미사에 나섰다.
그런데 미사 내내 점퍼 앞, 뒤로 보란듯이 찍혀있는 상표에 온통 신경이 쓰였다.
이유인 즉슨, 도시에서 흔히 보던 온 국민의 교복이
이곳 시골 성당에서는 아무도 입고 있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작년 신학대학원 졸업 선물로
평소 어머니 역할을 자처하시던 분이 선물해 주셨다.
듣기에 몇 십만원은 된다한다.
그래도 '옷 색깔이 마음에 드는지, 크기는 불편한 데는 없는지, 잘 입고 다니는지'
부지런히 챙겨주는 마음에 고마움으로 입고 다니던 옷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입고 있던 옷이 미사 드리는 내내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선물을 받을 때 느꼈던 '받아도 되나?'하는 당혹감이기도 했지만
그때는 누구나 입고 다니던 옷이기에 신경이 덜 쓰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무도 내가 수도자인줄 알아채는 이가 없지만
그런데 내 자신은 알고 있다. 내가 수도자임을....
'수도, 성직자가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수도자가 '가난하게 산다'하지만 밥을 굶지는 않는다.
아프면 당장에 병원에 갈 수 있고,
비록 한, 두 평 남짓 작은 방이지만 몸 뉘일 곳이 있다.
이사짐이 트렁크 하나 옷 가방이라지만 늘 입을 옷은 준비되어 있다.
물질적으로 보면 수도자의 살림살이가 부족함이 없다.
내가 먹고, 입고,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이 부끄럽기를 청한다.
더불어 이 '부끄러운 마음'이 내 이웃을 섬길 수 있는 마음이기를 청한다.
그리고 이 '부끄러움' 때문에 당당하게 하느님께 자비를 구할 수 있기를 청한다.
주님, 오늘의 '부끄러움'을 잊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그분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복음말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단상
온 국민의 교복(?)으로 유명한 North face 점퍼를 걸치고
평일 미사에 나섰다.
그런데 미사 내내 점퍼 앞, 뒤로 보란듯이 찍혀있는 상표에 온통 신경이 쓰였다.
이유인 즉슨, 도시에서 흔히 보던 온 국민의 교복이
이곳 시골 성당에서는 아무도 입고 있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작년 신학대학원 졸업 선물로
평소 어머니 역할을 자처하시던 분이 선물해 주셨다.
듣기에 몇 십만원은 된다한다.
그래도 '옷 색깔이 마음에 드는지, 크기는 불편한 데는 없는지, 잘 입고 다니는지'
부지런히 챙겨주는 마음에 고마움으로 입고 다니던 옷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입고 있던 옷이 미사 드리는 내내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선물을 받을 때 느꼈던 '받아도 되나?'하는 당혹감이기도 했지만
그때는 누구나 입고 다니던 옷이기에 신경이 덜 쓰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무도 내가 수도자인줄 알아채는 이가 없지만
그런데 내 자신은 알고 있다. 내가 수도자임을....
'수도, 성직자가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수도자가 '가난하게 산다'하지만 밥을 굶지는 않는다.
아프면 당장에 병원에 갈 수 있고,
비록 한, 두 평 남짓 작은 방이지만 몸 뉘일 곳이 있다.
이사짐이 트렁크 하나 옷 가방이라지만 늘 입을 옷은 준비되어 있다.
물질적으로 보면 수도자의 살림살이가 부족함이 없다.
내가 먹고, 입고,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이 부끄럽기를 청한다.
더불어 이 '부끄러운 마음'이 내 이웃을 섬길 수 있는 마음이기를 청한다.
그리고 이 '부끄러움' 때문에 당당하게 하느님께 자비를 구할 수 있기를 청한다.
주님, 오늘의 '부끄러움'을 잊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