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야옹아 미안해!

해피제제 2011. 9. 28. 07:56
1독서

임금님께서 나에게,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기에,
나는 하늘의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고, 임금님께 아뢰었다.


복음말씀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 조차 없다."


단상

사무실에 들어서자 동기 수사님이 허둥지둥 야옹이를 잡느라 난리다.
순간 내 입에서는 날카롭게 추궁하는 말이 나간다.

"수사님! 야옹이 왜 사무실에 들여놨어? 자꾸 이런 식으로 할래요?"


추석 명절 동안의 야옹이 난동사건이 있고 도저히 실내에서 키울 수 없다는
전체(민 수사님을 제외하고) 직원들의 역성에 야옹이를 2층 사무실앞 발코니에서 키우기로 했다.
야옹이를 좋아하는 수사님도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모두의 불만에서 밖에서 키우는 것으로 근심을 더는 듯했다.
그러매도 실내에서 키우던 녀석이라 2층 발코니와 사무실을 수시로 드나들며
우리에게는 각종 비명과 내쫓김을, 동기 수사님에게는 손에 질질 끌려 나가는 수난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요즘은 사무실에 발을 붙일 엄두도 못 낸다.

그런데 모두가 외출을 하고 돌아 오던 때에 공교롭게도
동기 수사님과 야옹이가 사무실에 떡 하고 있는 장면이 목격된 것이다.
당연 '약속을 위반했다'는 생각에 또 나쁜 시어머니 기질이 나온 것이다.

게다가 금요일 격주로 돌아가며 쉬는 날, 유독 동기 수사님이 근무 하는 다음날이면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봉사자가 계속해서 재채기로 심하게 코앓이를 하곤 했다.
이런 정황에 그동안 심증만 갖고 있던 차에 완벽한 현장을 잡았으니 더 싸납게 쏘아 댄다.

"야옹이가 그냥 들어 왔거든, 내가 일부러 들여 놓은 거 아니거든"
계속되는 내 추궁에 이 말만 반복하더니
'네가 믿든 안 믿든 I don't care, 나는 안 들여 놨고, 나머진 네 문제야, 난 상관 않겠어' 한다.
그리고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는 투로 말문을 닫아 버린다.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항상 이런 식으로 달아나곤 하는 수사님께 오늘은 아주 단단히 마음을 잡았다.

"수사님, 우리 아직 남아 있는 게 있거든요.
내가 왜 수사님을 의심했는지 궁금하지도 않아요?

그렇다면 그 불쾌한 '의심'을 해소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상관 없다'고 말하는데, 지금 수사님 마음도 불쾌하잖아요.
무엇인가 맺혀 있으면 서로 풀어야 하지 않을까요."


다시 대화의 자리로 돌아온 수사님과 그 뒤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눈다.
격양된 감정들 깊은 숨으로 한 숨 넘기고, 주고 받는 말 들 속에 비난과 판단 없이
그리고 무엇 보다도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고 그것이 다 끝났을 때
다시금 이쪽 입장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수련원에서 배운대로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간다.


그러면서 이렇게 매일 공동체와 사도직에서 붙어 다니며 함께 산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마음과 마음은 알 수 없는 때가 더 많으니 세상 삶에서야 오죽하겠냐는 올라옴이다.
수도회 내에서 들려 오는 '소통의 어려움'이야 당연한 현상이라는 생각이다.
7년을 하루 같이 같은 공동체에서 살면서도 이러할 진대 다른 곳에서야 오죽할까!


동기 수사님께 '나쁜 시어머니' 같다는 소리도 들었고,
사람을 '질리게' 할 때가 있다고도 한다.
한 번씩 내게서 수사님이 무시 받고 있다는 느낌도 갖게 만든단다.
온 사무실 스텝들에게서 지지 받지 못한다며 요즘은 하는 일 마다 힘이 든단다.
그래서 사도직 실습이 끝날 날짜만 꼽고 있다며 
또한 긴장이 감도는 공동체를 벗어나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이렇게 쌓아져 가는 스트레스에 대화도 일도 공동체도 모두가 귀찮기도 하단다.

동기 수사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또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내가 괜찮으니 남의 고통은 그이 만큼으로 다가오지 않고

한번쯤 겪어내야 할 홍역쯤으로 당연하게 생각하고 거리를 두고 있다.
그이가 겪어야 할 그것으로 이겨내리라 생각했고
세 명이 사는 작은 공동체이기에 매일같이 함께 미사하고 밥 먹고 같이 출근하고 일하고
또 한 차로 퇴근하고 밥먹고 그 사이 수많은 오가는 대화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붙어 사는데 따로 둘이서만 시간을 낼 필요에 대해서는 생각도 못했다.

수사님의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내 모습이 담겨 있다.
'나쁜 시어머니 기질'은 여전히 남아 있고, 정체 모를 우월감은 곳곳에 암초와 같다.
가끔씩 싸늘함에 다가갈 엄두도 못 내고, 기다림이 없는 채근은 사람을 질리게도 한다.
은연 중에 경쟁은 무시와 I don't care 방관함으로 대한다.

과거의 모습에서 역시나 많은 부분 별로 변한게 없다.
그리고 앞으로 모습 역시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는 것은 이렇듯 좋은 벗들이 곁에 있음이다.
수사님께 요청했다.
'수사님 앞으로 제가 또 무시하는 듯한, 나쁜 시어머니처럼 군다면
'김!형!욱!' 하고 외쳐 주세요. 그러면 제가 아차! 할테고
은연 중에, 정말로 모른 채 몸에 배인 나쁜 습들을 바로 돌아볼 수 있을테니까요.'    


심하게 마음앓이를 하고 있는 동기 수사님을 위해 기도 한다.
그리고 이 불쌍한 녀석을 위해서도 하느님의 자비를 청해 본다.  


난리를 치르고 또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동기 수사님이 전해 준 기도다.

17세기 어느 수녀의 기도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 정말로 늙어버릴 것을 저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들의 삶을 바로 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제가 가진 크나큰 지혜의 창고를 다 이용하지 못하는 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저도 결국엔 친구가 몇 명 남아 있어야겠지요.
끝없이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으로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제 팔다리, 머리,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주소서.
제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나고
그것들에 대해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줄 은혜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만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아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제 기억력을 좋게 해주십사고 감히 청할 순 없사오나
제게 겸손된 마음을 주시어 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적당히 착하게 해주소서.
저는 성인까지 되고 싶진 않습니다만
어떤 성인들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그렇더라도 심술궂은 늙은이는
그저 마귀의 자랑거리가 될 뿐입니다.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