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열정하되, 삼켜지지 않기를...

해피제제 2011. 11. 9. 06:42
1독서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복음말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


단상

한 때는 지금 사도직을 하고 있는 이웃살이가 '무덤'으로 불리던 때가 있었다.
열정을 가지고 시작했던 사도직이라 몸을 돌보지 않고 사도직에 투신했던 회원들과 스텝들이
결국 그 열정이 과해 몸을 헤치거나 걸려 넘어지는 경우가 생기게 된 것이다.

밤낮을 잊은 사도직 투신으로 3년 만에 온 몸이 망신창이(?)가 된 처음 이 사도직을 시작하신
이시도르 신부님은 억지로 이웃살이를 떠나도록 명령을 받고서야 정상을 되찾게 되셨고,
그리고 그 후임 마태오 신부님 역시 3년 동안 에너지를 온통 쏟은 터에
결국은 안식년을 보내시며 몸을 돌아보아야 했다.

중간실습기를 이웃살이에서 보낸 수사님들 사정 역시 그렇다.
이 모 수사님을 비롯해 이웃살이에서 실습을 했던 베트남 수사님 한 분은
자국으로 돌아가서 결국 수도회를 떠났다.
작년 겨우겨우 몸을 추수려 신학기로 들어선 요셉 수사님은 동기들보다 한 해가 늦어졌다.
그 전 안드레아 수사님 역시 한 해 동안 안식년을 하고서야 신학지로 떠날 수 있었다.

예수회원이 이 정도 였다면 같이 일하던 스텝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사정이다.
내가 이웃살이에 파견 받을 무렵부터 그 6개월 기간에 무려 3명이 바뀌었으니
이웃살이 사도직장이 '무덤'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분명히 있어 보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관구장 신부님은 '앞으로는' 이웃살이에 실습 수사들을 보내지 않겠노라고 천명했다.
양성을 받는 수사님들이 계속해서 도중 하차 하거나 다음 단계 진입에 실패하고
기쁘고 즐거웁게 일해야 할 평신도 협력자들이 계속해서 떨어져 나가니
아주 작정을 하시고 이웃살이 대표 신부님에게 책임을 물은 것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단호한 입장을 취하셨지만 예수회 사도직장에 손을 뗄 수 없는 형편이라
전에 NGO단체에서 실무했던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무거운 십자가를 지우시더니
6개월 후 이웃살이 대표 신부님께는 안식년을 그리고 올 5월까지는 대표 신부님을 임명하지 않은 채
평신도 상담실장님을(대단한 것은 이 분은 이런 상황에서도 6년째 일하고 계신다) 소장으로 승진
새로이 특수연학(박사과정 공부) 중이던 지금의 동기수사님을 합류시키는 팀을 구성케 하셨다.

그리고 올 해 5월 합류한 프란치스코 대표 신부님과 인권연대 연구센터의 진단으로 
수많은 행사 위주의 사업들을 정리하고 이웃살이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면서
지금은 실습을 준비하는 연학수사님들의 분위기를 전하는 동기 수사님 표현으로는
가장 일하고픈 사도직장으로 선정되었다나 어쩐다나...  

지금은 미래의 나아갈 바를 진단하고 자리를 잡기 위해 고민하는 중이라
여러가지 변수들이 많다. 그래서 그 많던 행사들을 정리하니 여기저기 이해가 얽힌 사람들에게서는
불만의 목소리도 들린다. 그리고 질서를 세우다 보니 이전보다 팍팍해 보이기도 하는가 보다.
소장님도 걱정을 해 오기는 하지만 지금 안식월을 맞아 태국으로 가장 기뻐하며 떠나지 않았던가,
마찬가지로 이 모든 속도 조절이 이주노동자들에게 더 유익이 될 수 있는 몸짓이라 여긴다.


쉽게 잊고 사는 것이 있으니 '행복'을 살겠다는 사람들이 '지금'은 행복하지 않은 채
모든 행복을 미래에만 담보 잡혀 살고 있다는 것이다. '행복'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오늘 하루하루가 힘에 겨웁고 내일이 또 무거운 하룬데 먼 미래의 행복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는 예수회원들도
가끔은 뭘 위해 사도직을 하는지 잊고 사는 때가 많다. 
예수회원들과 함께하는 이들이 탁월한 행정가, 복지전문가, 펀드매니저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비록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에 수도성직자들 역시 그 능력들이 요구될 수도 있지만
결국 돌아보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며 살고 있는가
예수님을 닮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분의 정의와 평화와 온유함을 간직하고 있는가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하며 살았는가에 대한 수줍은 마음이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지나친 열정에 무심코 걸려 넘어지는 일이 없기를
나중에 '나 너에게 그렇게 하라고 한 적 없는데'라는 목소리에 뒤통수 맞지 않기를
오늘 '나'를 살피며 매순간 그리스도를 거울 삼기를
그리고 이것마저 놓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