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올라 오는 감정들은 이유가 있다
해피제제
2011. 1. 25. 08:19
1독서
오늘날 여러분이 모두 그렇듯이
나도 하느님을 열성으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복음말씀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단상
필리핀 이주노동자가 이웃살이를 찾아왔다.
이유는 공장을 바꾸고 싶은데 사장님께 전화를 대신 해 달란다.
왜 공장을 바꾸고 싶은지 물어봤다.
또 이유는 자신이 하는 일 때문에 건강에 이상이 생겼단다.
그러면서 의사 선생님의 약처방을 이야기 한다.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이러저러해서 페인트 도색 작업 때문에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공장 바꾸도록 '사업장 변경 신고서'에 서명을 부탁했다.
(참고로 이주노동자는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제'의 정책상
이직을 원할 경우 사업주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자 사장님 왈
지금은 막(금년 1월 5일) 취업한 사람이라 공장에서 이것저것 시켜보는 중이란다.
하지만 페인트 도색 작업이 노동자의 건강에 이상을 야기한다면
드릴공이나 재료 분류 등 다른 작업으로 바꾸어 줄 수 있단다.
노동자에게 사장님과의 대화를 전했더니
슬며시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이제는 공장 다른 동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기 때문에 공장으로 바꾸고 싶단다.
스멀스멀 짜증이 올라왔다.
처음부터 '관계가 힘들어서' 라는 이유를 댓다면
이렇게 빙 돌아 가지 않아도 될텐데
이 노동자는 매번 이런 식으로 줄기를 잡아 당기면
하나씩 하나씩 감자가 캐어지듯 다른 문제들을 들이댄다.
덕분에 생판 모르는 사업주에게 전화하는 나는
늘 말을 만드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될 수 있으면 사업주나 이주노동자나 서로 관계 상하지 않게 맺어 주려는 나는
중간에서 이렇게 틀어지는 관계를 대할 때는 '당신이 알아서 하시오'라고 싶다.
감자를 다 캐내니
문제는 '건강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였다.
그리고 무대뽀로 다른 공장으로 갈 수 있도록
사업주를 설득해 달라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짜증'이라는 사인에 잠시 멈추어 본다.
분명 이러한 불편한 감정은 내 안의 또 무엇인가를 자극해 온 것이다.
아마도 그 노동자의 '염치없음', '무책임함', '억지스러움'을 대하면서
또 이렇게 '판단'하는 내 자신을 보게 된 것이다.
그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의지할 곳 없는 '불안함', '두려움'이 먼저 떠올라
그래도 '우리 편'이라고 이웃살이를 찾아 왔을텐데도 말이다.
어찌어찌 사업주에게 사정 설명을 하고
2주간의 병가 휴가를 얻어냈다.
이웃살이 쉼터에 머물도록 안내하면서
노동자의 부쩍 환해진 얼굴을 보니
미안함이 새록새록 일어난다.
나아갈 길이 멀다.
오늘날 여러분이 모두 그렇듯이
나도 하느님을 열성으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복음말씀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단상
필리핀 이주노동자가 이웃살이를 찾아왔다.
이유는 공장을 바꾸고 싶은데 사장님께 전화를 대신 해 달란다.
왜 공장을 바꾸고 싶은지 물어봤다.
또 이유는 자신이 하는 일 때문에 건강에 이상이 생겼단다.
그러면서 의사 선생님의 약처방을 이야기 한다.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이러저러해서 페인트 도색 작업 때문에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공장 바꾸도록 '사업장 변경 신고서'에 서명을 부탁했다.
(참고로 이주노동자는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제'의 정책상
이직을 원할 경우 사업주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자 사장님 왈
지금은 막(금년 1월 5일) 취업한 사람이라 공장에서 이것저것 시켜보는 중이란다.
하지만 페인트 도색 작업이 노동자의 건강에 이상을 야기한다면
드릴공이나 재료 분류 등 다른 작업으로 바꾸어 줄 수 있단다.
노동자에게 사장님과의 대화를 전했더니
슬며시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이제는 공장 다른 동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기 때문에 공장으로 바꾸고 싶단다.
스멀스멀 짜증이 올라왔다.
처음부터 '관계가 힘들어서' 라는 이유를 댓다면
이렇게 빙 돌아 가지 않아도 될텐데
이 노동자는 매번 이런 식으로 줄기를 잡아 당기면
하나씩 하나씩 감자가 캐어지듯 다른 문제들을 들이댄다.
덕분에 생판 모르는 사업주에게 전화하는 나는
늘 말을 만드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될 수 있으면 사업주나 이주노동자나 서로 관계 상하지 않게 맺어 주려는 나는
중간에서 이렇게 틀어지는 관계를 대할 때는 '당신이 알아서 하시오'라고 싶다.
감자를 다 캐내니
문제는 '건강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였다.
그리고 무대뽀로 다른 공장으로 갈 수 있도록
사업주를 설득해 달라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짜증'이라는 사인에 잠시 멈추어 본다.
분명 이러한 불편한 감정은 내 안의 또 무엇인가를 자극해 온 것이다.
아마도 그 노동자의 '염치없음', '무책임함', '억지스러움'을 대하면서
또 이렇게 '판단'하는 내 자신을 보게 된 것이다.
그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의지할 곳 없는 '불안함', '두려움'이 먼저 떠올라
그래도 '우리 편'이라고 이웃살이를 찾아 왔을텐데도 말이다.
어찌어찌 사업주에게 사정 설명을 하고
2주간의 병가 휴가를 얻어냈다.
이웃살이 쉼터에 머물도록 안내하면서
노동자의 부쩍 환해진 얼굴을 보니
미안함이 새록새록 일어난다.
나아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