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놈의 입이 방정...
우에노성당에서 미사 후 사진 촬영
우에노성당으로 미사를 다녀왔습니다. 예수회 일본 관구 수사님들은 사제품을 앞두고 있는 신학 공부 중인 수사님들을 본당으로 실습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야 아직은 말도 못해, 글도 못 읽어, 완전 눈뜬 봉사라 말을 배우는 동안에는 본당에서의 주중사도직은 힘들듯 싶고, 그래서 요즘은 탱자탱자 어제는 고엔지성당, 오늘은 우에노성당, 내일은 이냐시오성당으로 실습중인 수사님들을 부지런히 따라 다니고 있답니다.
다행히 구정모 신부님이 한 달에 한 번 하고 계시는 한국어 미사에서 한국인 신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조만간 동경대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하고 있는 청년기도모임에도 초대를 받아서 기쁘게 나가볼 요량입니다. 무언가 도움이 되면 좋겠고 제게도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에-- 또 ‘한국말’을 할 수 있는 더 없는 기회이다 싶습니다.
벗꽃이 화사하게 핀 우에노공원
우에노공원 호수 전경
벗꽃 아래서 리 수사님과 웨이씨
우에노성당 근처의 우에노공원의 벗꽃은 아주 장관입니다. 중국인 리 수사님과 함께 그리고 일본에 살고 있는 웨이와 밍 부부가 이곳에서 작은 식당을 하는지라 우리를 앞세우고 이리저리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은가 봅니다.
남편 웨이씨는 암을 앓고 있다고 하는데 그 멋진 미소만큼이나 씩씩한 모습입니다.
부인인 밍씨 역시 마음의 그늘이 느껴지지 않을만큼 카메라를 들이댈 때면 부끄러운 듯 수줍게 웃습니다. 벗꽃 아래서 많이도 사진을 찍어 댔지만 어느 화사한 빛깔의 꽃도 그이들이 서로에게 시선을 두고 팔짱을 꼭 낀 모습에 비하면 부족해 보일 정도랍니다. 사람이, 사랑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 오늘 또 배우게 됩니다.
바람이 부는지...
우에노공원 호수에서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밍씨와 웨이씨 부부 그리고 리 수사님
이러저리 걷다가 그이들에게 일본에 산지 얼마나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웨이씨는 9년 8개월, 밍씨는 6년째 랍니다. “엑? 무척 오래되었네요.”라는 내 반응에, 밍씨가 부끄럽다는 듯이 “제가 일본어를 잘 못해요” 합니다.
‘아뿔사!’ 앞의 대화가 ‘한달 밖에 안됐는데 수사님 일본어 잘해요’라는 그이들의 칭찬에 나는 ‘두 분 얼마나 일본에 사셨나요?’라는 물음이 그만 ‘그렇게 오래 사셨는데 일본어가 서툴러요’라고 전해졌는가 봅니다. 그러면서 밍씨는 “일본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어요. 그냥 웬만큼 듣고 말하기는 하는데 읽거나 쓰지는 못해요”한다.
예수회 일본관구의 배려로 학원비가 가장 비싼(그리고 잘 가르치기로 정평이 나있는…) 학원에서 훌륭한 지도를 받으면서 한달만에 문자들을 곧잘 읽고 떠듬떠듬이라도 말할 수 있게 되면서 그이들의 칭찬에 나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되려 그이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으니 요놈의 입이 방정이다. 그이들은 1/4분기 21만엔(한국돈으로 약 300만원) 학원비를 내가며 맘 편하게 앉아서 언어를 익힌 게 아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를 해서 조그만 식당을 겨우겨우 꾸려가며 이 물가 비싼 일본의 도쿄에서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이 익히 언어라는 것은 꼭 필요한 것들만 두서없이 익힌 채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루를 쉬 쉬어본 적이 없어서 그 세월 동안 마음도 다치고 몸도 상해서 웨이씨 처럼 암으로 고생으로 하고 있는 게 이들의 현실인 것이다.
낮의 그 일이 또 이렇게 마음에 남아서 부끄러움으로 괜히 속이 상하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그이들의 고군분투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짠하고, 그리고 뭣도 모르면서 그 착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든 내 요놈의 방정맞은 입이 괜히 때리면 내 입만 아프니 때려줄 수도 없이 밉기도 해서 그렇다. 그 착한 사람들을 한 순간이라도 부끄럽게 만들었으니 더한 부끄러움을 안고 사는 내 모습에 ‘방정, 방정, 오도 방정….’ 중얼거리며 웨이씨의 암 치료를 위해 그리고 그 맑은 부부의 행복을 위해 하느님께 자비를 청한다.
정말 이곳을 지나면서 '떠밀려' 다녔다. 이리저리....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