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이것이 내가 사는 법
해피제제
2011. 10. 24. 06:43
1독서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복음말씀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분개하여 군중에게 말하였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됩니다."
단상
'수사님 수도원에 들어가신 이유가 뭡니까?'
하도 많이 받은 질문이라 이제는 선뜻 답이 나오기도 하련만
시간이 지날수록 답 내기가 쉽지 않다.
그냥저냥 준비해 둔 모범 답안을 내뱉을 수도 있겠지만 진심이 아닌 건 힘이 없다.
'글쎄요. 무슨 옷을 입었느냐는 이제 중요한 것 같지는 않네요.
또 어디서 사는가도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닌듯 합니다.
"수도자"라는 옷을 입든, 예수회라는 수도원 안에서 살아가든
이제 더는 중요한 이유가 아닙니다.
입회 전 어느날, 제게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사는 게 맞나?"
그래서 돈 잘 버는 직장을 그만두고 지식에서 그 대답을 찾고자 대학원에 진학했고,
철학을 공부하면서 '생각하는 힘'을 길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충분히 답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환경과 생명을 살리는 시민단체"에 몸을 담고 환경운동을 해 보았습니다.
물론 좋은 친구와 멋진 선배 그리고 인생의 훌륭한 스승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그이들의 꿈과 이상 그리고 정의로운 삶까지 옆에서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무엇인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수도원이라는 데를 찾아 들었습니다.
"신이라면 그 대답을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매일같이 물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지금의 앎으로 이어지게 된 겁니다.
"옷"이, "사는 곳"이 문제가 아니구나!
어느날 습관적으로 기도를 하러 나 앉았다가
알듯모를듯 하느님을 엿보았다가 또 살다가 잊었다가 또 다시 알아챘다가
그렇게 그렇게 몸에 새겨진 하느님을 내 안에 모시기를 반복하다가 지금껏,
그러면서 "옷"이 아니라 "사는 곳"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문제였구나!" 하는 깨달음,
"하느님"이라는 대지를 밟고 그 대지에서 흡수하는 사랑, 자비, 온유, 평화, 희망 등 등
그 덕분에 어디를 가서 살든, 무엇이 되어 살아 가든 이제는 "옷과 사는 곳"이 문제가 안 되는 앎,
그래서 중간실습을 다른 곳에서 할 수 있도록 청을 드렸지만 지금의 "이웃살이"
그럼에도 좋아하는 것이 따로 있지만 평생을 이주사도직을 하고 살래도 거리낌이 없는 마음,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든 이제는 더 고민할 것이 없는 삶,
그래서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수도 장상의 명령에 순명할 수 있는 자유로운 마음,
그것이 내가 수도원에서 깨닫고 하느님께 늘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이유,
더는 "무엇이 될까, 어디서 살까,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지 않고
그저 내가 발 디디고 있는 대지에 감사하며 살 수 있다면,
욕심을 낸다면 그것뿐!
여전히 나 자신에 세상 때문에 아프고, 속상하고, 분노하게 되고, 서운하기도 할 일 투성이지만
그래도 예전과 다른 것은 하느님이라는 대지에 발을 굳게 디디고 서 있으니...
이것이 바로 수도원에서 사는 이유.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복음말씀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분개하여 군중에게 말하였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됩니다."
단상
'수사님 수도원에 들어가신 이유가 뭡니까?'
하도 많이 받은 질문이라 이제는 선뜻 답이 나오기도 하련만
시간이 지날수록 답 내기가 쉽지 않다.
그냥저냥 준비해 둔 모범 답안을 내뱉을 수도 있겠지만 진심이 아닌 건 힘이 없다.
'글쎄요. 무슨 옷을 입었느냐는 이제 중요한 것 같지는 않네요.
또 어디서 사는가도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닌듯 합니다.
"수도자"라는 옷을 입든, 예수회라는 수도원 안에서 살아가든
이제 더는 중요한 이유가 아닙니다.
입회 전 어느날, 제게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사는 게 맞나?"
그래서 돈 잘 버는 직장을 그만두고 지식에서 그 대답을 찾고자 대학원에 진학했고,
철학을 공부하면서 '생각하는 힘'을 길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충분히 답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환경과 생명을 살리는 시민단체"에 몸을 담고 환경운동을 해 보았습니다.
물론 좋은 친구와 멋진 선배 그리고 인생의 훌륭한 스승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그이들의 꿈과 이상 그리고 정의로운 삶까지 옆에서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무엇인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수도원이라는 데를 찾아 들었습니다.
"신이라면 그 대답을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매일같이 물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지금의 앎으로 이어지게 된 겁니다.
"옷"이, "사는 곳"이 문제가 아니구나!
어느날 습관적으로 기도를 하러 나 앉았다가
알듯모를듯 하느님을 엿보았다가 또 살다가 잊었다가 또 다시 알아챘다가
그렇게 그렇게 몸에 새겨진 하느님을 내 안에 모시기를 반복하다가 지금껏,
그러면서 "옷"이 아니라 "사는 곳"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문제였구나!" 하는 깨달음,
"하느님"이라는 대지를 밟고 그 대지에서 흡수하는 사랑, 자비, 온유, 평화, 희망 등 등
그 덕분에 어디를 가서 살든, 무엇이 되어 살아 가든 이제는 "옷과 사는 곳"이 문제가 안 되는 앎,
그래서 중간실습을 다른 곳에서 할 수 있도록 청을 드렸지만 지금의 "이웃살이"
그럼에도 좋아하는 것이 따로 있지만 평생을 이주사도직을 하고 살래도 거리낌이 없는 마음,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든 이제는 더 고민할 것이 없는 삶,
그래서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수도 장상의 명령에 순명할 수 있는 자유로운 마음,
그것이 내가 수도원에서 깨닫고 하느님께 늘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이유,
더는 "무엇이 될까, 어디서 살까,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지 않고
그저 내가 발 디디고 있는 대지에 감사하며 살 수 있다면,
욕심을 낸다면 그것뿐!
여전히 나 자신에 세상 때문에 아프고, 속상하고, 분노하게 되고, 서운하기도 할 일 투성이지만
그래도 예전과 다른 것은 하느님이라는 대지에 발을 굳게 디디고 서 있으니...
이것이 바로 수도원에서 사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