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향한 발돋움!
수술 검사를 받기 전 환하게 웃고 있는 필리핀 이주노동자 준타갈로스씨
국제공동체 미사에서 성가 반주 봉사를 하고 있는 준타갈로스씨(필리핀, 36세)가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며 병원 동행을 조심스럽게 청해 왔다.
병명은 ‘진주종성중이염’, 듣도 보도 못하던 요상스런 병명이지만
의사선생님의 설명으로는 큰 병원에서야 수술이 가능하다며
‘진료의뢰서’를 작성해 주신다.
해서 여의도 성모병원에 귀 수술로 유명한 선생님이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봉사자를 통해 부랴부랴 예약 진료를 한 후 수술 날짜까지 받았다.
수술 당일, 8시까지 병원에 입원해 달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에,
새벽 5시 떠지지 않는 눈을 간신히 부여잡고
머리도 감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준씨가 근무하는 공장으로 향했다.
시골 촌구석 교통편이 시원치 않은 곳이라,
게다가 사장님과 여사무원 그리고 이주노동자 둘이 기거하는
열악하기 짝이 없는 공장인지라 직접 다리품을 팔기로 약속을 해 두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수술을 해야 하고 거기에 2-3일 입원까지라면
여느 공장에서처럼 싫은 내색을 할만도 할 텐데
마음씨 좋아 보이는 사장님은 당신이 직접 챙기지 못해 미안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여 온다.
수술하기 전, 무슨 놈의 검사는 이렇게나 많은 것인지
환자복을 입은 준씨를 안고서(?) 이리저리 리스트에 적혀 있는 대로
사람들 사이를 뚫고, 먼저 온 환자 뒤에 줄을 서고 그렇게 실갱이를 벌여 가며
드디어 반나절을 만에 한 숨을 몰아 쉴 수 있었다.
다 필요해서 하는 검사이겠지만 귀 수술 하나(?) 하는데
심전도 검사며 소변체크에 이름도 모를 검사까지
게다가 직계 가족 하나 없는 준씨의 사정에
나는 팔자에도 없는 보호자 노릇으로 각종 서류에 ‘책임지겠다!’는 서류를 하고나니
조금은 각박스럽게도 보이고 수술 받기가 이렇게 힘든가 싶었다.
그래도 어린아이 같은 준씨는 그 큰 눈을 꿈뻑이며 모든 게 신기한 것 투성인양
수술을 앞둔 나는 마음이 삐죽대며 바쁜데 그이는 천진하게 웃어 보이는 것이
또 그것이 천하에 낙천적인 그이들 나라의 국민성인 것 같아
그게 또 고맙고 다행이다 싶다.
환하게 웃는 준씨를 수술실로 들여보내고
병원 5층 옥외 휴게실에 커피 한 잔 빼들고 무거워진 몸을 짐짝처럼 내던져 두었다.
병원이라는 곳이 사람을 살리기도 혹은 죽이기도(?) 하거니와
몸이 정상인 사람들도 그 무시무시한 생명과 죽음의 기운들에
이렇게 넋 빠지기가 십상이라더니 겨우 반나절 보냈다고 이 저질스런 체력은
며칠 서류속에 파묻혀 보낸 것 보다 더하다.
그래도 성모상이 자리하고 있는 이 동산은
부산스러운 병실과는 달리 고요함이 깃들어 있어
나 같은 저주스런 몸을 가진 이들에게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같은 과정을 겪었는지 곳곳에 널브러진 인간들이 눈에 띄는 것이 참으로 고마운 장소다.
원래 착 착 계획에 따라 시간을 쓰는 사람인지라
허툰 시간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고,
게다가 남 얘기 듣다가도 2시간 혹은 3시간이 지나면 얼굴이 허옇게 변하면서
병색이(?) 완연해지는 것이 내가 먼저 쓰러질 태세라
수도생활도 꼭 꼭 숨어서 사는 사람이다.
세상의 창조물들이 왜 이다지도 내 에너지를 쫙 쫙 빨아 가는지 도통 모를 일이지만
그 덕에 어느 연예인처럼 ‘신비주의 마케팅’도 아니고
괜히 ‘비싸게군다’는 소리도 얻어 듣게 되면서 억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이유로 병원 같은 곳은 사람도 많을뿐더러 기운까지 빼앗아 가니
그닥 사람 살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아예 신경을 끊고 사는 게 내 살 길이다.
5시간의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에서 깨어날 때까지 1시간을 더 기다리면서
어제부터 굶었을 테니 배도 고플거라
소화하기 쉬운 달달한 카스테라 빵과 콩 베지밀 한 박스 입원실에 넣어두고,
또 귀 때문에 끈적함에도 불구하고 세수하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에
뽑아 쓰기 간편한 물티슈를 사두고,
혹시 모를 출출함을 달랠 겸 준씨가 가장 좋아하는 매운 맛 컵라면도 장만해 두었다.
회복실에서 나와서 여전히 남아 있는 통증에
부자연스러운 몸임에도 애써 웃음지어 주는 그이에게 고생했다고 말을 건네고
내일 다시 오겠다며 편안한 밤 보내라며 다독여 준다.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으니 참으로 오래간만에 남을 위해 옴팡 시간을 내봤다.
준씨를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서 하루 종일 그이를 안내해서 검사를 받게 하고,
수술을 하고 회복실에 있는 동안 여기저기 다니며
그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하나 둘 장만해 두고,
한껏 부어버린 그이의 손을 맞잡고 평온한 밤을 기도하면서
그리고 늦은 밤 운전을 해오며 이른 아침의 어둑함부터 이만큼까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내 시간을 허락했던 때가 언제였던가를 회상해 본다.
비록 얼굴은 에너지가 고갈되어 허옇게 뜨고,
손발이 땡 땡 뿔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무엇인가 가득 찬 것이
괜히 흥얼흥얼 콧노래도 나오고 발걸음은 통 통 가볍기까지 하다.
오늘따라 하늘에 뜬 별님도 참으로 고와 보이는 것이
남을 위해 무언가를 내 준다면
30배 60배 100배로 채워주겠다는 그 약속이 새삼 떠올라
‘그러게요!’하며 탄성을 터뜨리게 된다.
이 맛에 이 짓(?) 계속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