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호수공원 나들이
금요일 격주로 이웃살이 교대 근무가 없는 날, 아침을 부산스럽게 챙겨 먹고, 책 한 권 챙겨 들고서 오랜만에 산책을 나선다. 김포 고등학교 앞에서 일산 마두역으로 향하는 96번 버스를 타고 마두역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면 일산호수 공원이 지척이다. 다들 출근 시간이 지난터에 한가로이 도시길을 걷는다.
멀리 단풍나무 아래 두 모녀가 오붓이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정겹다
가볍게 산책을 나선 길이라, 생수 한 병 찾을 요량으로 중앙 광장 쪽으로 나섰다가 단풍나무가 길게 펼쳐진 길을 따라 걷게 된다. 게다가 단풍이 아직 덜 든 파랗고 울긋불긋 나무들 밑에는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정겹다. 저마다 살아가는 모습에서 한 발 뒤로 하고 편안히 나 앉은 모습에서 그이들의 작은 여유를 엿보게 된다. 다들 나와 같은 희망들을 품고 이 길 나섰으리라.
흙길도 짙은 녹음도 게다가 시원하게 뻗어 있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까지...
결국 물은 찾지 못하고 이왕 나선 걸음걸이 발 길 닿는 대로 행한다. 평일 오전이라 사람들도 많지 않고 부산스러움 없이 오랜 만에 조용한 산책을 즐긴다. 의정부 어느 성당에서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단체로 가을 소풍을 이곳으로 오셨나 보다. 반가움을 표했다가 한 곳에서는 성경을 읽고 호수를 바라보며 기도를 올리는 신자들이 있어 발걸음도 죽이며 지나쳐 본다.
한 참을 걷다 보니 흙길이 나온다. 잘 정돈된 푹신푹신한 길을 따라 걷다가 갑작스런 흙길이 무척이나 반갑다. 나보다 먼저 선객이 있어 그 쭉 뻗은 길을 그이들의 뒷태만 바라보며 걸어야 했다. 휙 휙 빨리 가는 사람 느릿느릿 모든 것에 눈길을 주는 사람, 앞에서 달려 오는 사람, 왁자지껄 코스모스 군락에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는 사람들.... 같은 길을 가지만 가는 방법도 속도도 심지어 함께라도 제 각각 이다.
다리 밑 화~악 밝아진 볕에 알록달록 나뭇잎들이 더욱 곱다
장항(흥??) IC 다리 밑 정경이다. 밑에 있을 때는 어두움이 깊어 빨리 벗어나고 싶었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니 곳곳의 벽화들이 알록달록 앞 방향의 단풍을 닮았다. 어두움을 지나면 다시금 볕이 찬란한 하늘 아래 내 몸이 놓여 보일 테지....
서서히 내리는 어둠에 평일 호수가 잔잔하다.
나무 다리로 향하는 곳에 '출입금지' 빨간 팻말이 거북하게 버티고 서 있어 걷지도, 발을 담그지도 못했다. 그저 멀거니 저녁 어스름 호수 위를 바라볼 뿐....한가로이 떠나온 터에 같이 걷는 이도, 이야기 나눌 수도 없지만 그래도 올라오는 생각들에 말을 더하고 의미를 찾아 본다. 지루할 길 없는 산책이다.
단풍나무 아래 사람들은 서로에게 무슨 말들을 건네고 있을까
여기도 빨갛게 단풍이 가득하다. 꽃 전시를 했는지 국화가 잔뜩 피어 있다. 삼삼오오 학생들은 무엇이 그리 신이 나는지 재잘재잘 쉴 새가 없다. 곁에서 걷다가 살짝 속도를 늦추어 간다. 그랬더니 자신들도 사진을 찍느라 가던 길을 멈춘다. 에이, 또 속도를 내 본다.
하루 종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10시쯤 버스를 타고 저녁 5시 30분이 넘었으니 이제 그만 되었다고 선명한 빛깔의 저녁 노을이 갈 시간을 재촉한다. 그 빛깔이 하도 고와 핸드폰에 담았는데 영 시원치 않아 찍었다가 지웠다가 다시 찍었다가....그냥 포기하고 첫 번째 것을 올려 둔다.
산책을 나섰다가 너무 길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기껏 충전한 에너지 다 날려 먹었다. 오늘 하루 휴식이 말짱 도루묵이 되어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한다. 에고 좀 대강대강 다닐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