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게 말걸기

일산 호수공원 나들이

해피제제 2011. 10. 28. 17:09


금요일 격주로 이웃살이 교대 근무가 없는 날, 아침을 부산스럽게 챙겨 먹고, 책 한 권 챙겨 들고서 오랜만에 산책을 나선다. 김포 고등학교 앞에서 일산 마두역으로 향하는 96번 버스를 타고 마두역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면 일산호수 공원이 지척이다. 다들 출근 시간이 지난터에 한가로이 도시길을 걷는다.


멀리 단풍나무 아래 두 모녀가 오붓이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정겹다



가볍게 산책을 나선 길이라, 생수 한 병 찾을 요량으로 중앙 광장 쪽으로 나섰다가 단풍나무가 길게 펼쳐진 길을 따라 걷게 된다. 게다가 단풍이 아직 덜 든 파랗고 울긋불긋 나무들 밑에는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정겹다. 저마다 살아가는 모습에서 한 발 뒤로 하고 편안히 나 앉은 모습에서 그이들의 작은 여유를 엿보게 된다. 다들 나와 같은 희망들을 품고 이 길 나섰으리라.




흙길도 짙은 녹음도 게다가 시원하게 뻗어 있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까지...



결국 물은 찾지 못하고 이왕 나선 걸음걸이 발 길 닿는 대로 행한다. 평일 오전이라 사람들도 많지 않고 부산스러움 없이 오랜 만에 조용한 산책을 즐긴다. 의정부 어느 성당에서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단체로 가을 소풍을 이곳으로 오셨나 보다. 반가움을 표했다가 한 곳에서는 성경을 읽고 호수를 바라보며 기도를 올리는 신자들이 있어 발걸음도 죽이며 지나쳐 본다.
 
한 참을 걷다 보니 흙길이 나온다. 잘 정돈된 푹신푹신한 길을 따라 걷다가 갑작스런 흙길이 무척이나 반갑다. 나보다 먼저 선객이 있어 그 쭉 뻗은 길을 그이들의 뒷태만 바라보며 걸어야 했다. 휙 휙 빨리 가는 사람 느릿느릿 모든 것에 눈길을 주는 사람, 앞에서 달려 오는 사람, 왁자지껄 코스모스 군락에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는 사람들.... 같은 길을 가지만 가는 방법도 속도도 심지어 함께라도 제 각각 이다.




다리 밑 화~악 밝아진 볕에 알록달록 나뭇잎들이 더욱 곱다



장항(흥??) IC 다리 밑 정경이다. 밑에 있을 때는 어두움이 깊어 빨리 벗어나고 싶었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니 곳곳의 벽화들이 알록달록 앞 방향의 단풍을 닮았다. 어두움을 지나면 다시금 볕이 찬란한 하늘 아래 내 몸이 놓여 보일 테지....




서서히 내리는 어둠에 평일 호수가 잔잔하다.


나무 다리로 향하는 곳에 '출입금지' 빨간 팻말이 거북하게 버티고 서 있어 걷지도, 발을 담그지도 못했다. 그저 멀거니 저녁 어스름 호수 위를 바라볼 뿐....한가로이 떠나온 터에 같이 걷는 이도, 이야기 나눌 수도 없지만 그래도 올라오는 생각들에 말을 더하고 의미를 찾아 본다. 지루할 길 없는 산책이다.




단풍나무 아래 사람들은 서로에게 무슨 말들을 건네고 있을까


여기도 빨갛게 단풍이 가득하다. 꽃 전시를 했는지 국화가 잔뜩 피어 있다. 삼삼오오 학생들은 무엇이 그리 신이 나는지 재잘재잘 쉴 새가 없다. 곁에서 걷다가 살짝 속도를 늦추어 간다. 그랬더니 자신들도 사진을 찍느라 가던 길을 멈춘다. 에이, 또 속도를 내 본다.



신비감 넘치는 노을빛을 미처 어쩌지 못하고 애꿎은 핸드폰 카메라로 이리저리 눌러 본다


하루 종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10시쯤 버스를 타고 저녁 5시 30분이 넘었으니 이제 그만 되었다고 선명한 빛깔의 저녁 노을이 갈 시간을 재촉한다. 그 빛깔이 하도 고와 핸드폰에 담았는데 영 시원치 않아 찍었다가 지웠다가 다시 찍었다가....그냥 포기하고 첫 번째 것을 올려 둔다.

산책을 나섰다가 너무 길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기껏 충전한 에너지 다 날려 먹었다. 오늘 하루 휴식이 말짱 도루묵이 되어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한다. 에고 좀 대강대강 다닐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