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잠복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미사

해피제제 2022. 4. 15. 15:14

 

 

제가 지금 사도직을 하고 있는 일본 나가사키 ‘26성인기념관’은 1549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께서 일본에 가톨릭 신앙을 전파한 이후, 그분의 친필 편지를 비롯한 교회역사문화유산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처음 하비에르 성인과 예수회원들에 의해서 찬란하게 시작되었던 일본 그리스도교 선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막부를 무너트린 도쿠가와 이에야쓰 막부가 1614년 ‘천주교 금지령’과 함께 전 일본에서 사제들을 추방하게 됩니다. 목자 없는 양떼처럼  남겨진 신자들은 막부의 강요에 의해 신앙을 버려야 했고, 배교를 거부한 이들은 죽음으로써 자신들의 신앙을 지켜나갔습니다.

 

이러한 박해 상황을 묘사한 엔도슈샤크의 ‘침묵’이라는 소설과 해당 소설을 영화화한 마틴스콜세지 감독의 ‘사일런스’는 당시의 시대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결국 1644년, 막부의 박해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신자들을 돌보았던 코니시 만쇼 신부님이 지금의 도쿄에서 순교함으로써 일본의 역사 전면에서 한동안 그리스도교는 사라지게 됩니다. 그 후 1865년, 제국 열강들에 의해 일본의 문이 다시 열리게 되고,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님들에 의해, 이곳 나가사키에 오우라 성당이 세워지게 되는데, 성전 봉헌식이 있은 며칠 후, 십여명의 일본인들이 ‘우리도 당신과 같은 신앙을 간직하고 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파란 눈의 신부님들 앞에서 자신들이 그리스도교 신자임을 밝히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센뿌쿠키리스탄’, 즉 ‘잠복 혹은 숨은 그리스도교인’들이 ‘천주교 금지령’ 이후 250여년 만에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곳 ‘기념관’ 한 켠에는 ‘잠복 그리스도교인’들이 어떻게, 교회도, 사제도 없이 신앙생활을 해 올 수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막부의 박해를 피해, 깊은 산 속이나 외딴 섬으로 숨어든 신자들은 신부님들의 역할을 나누어 맡아 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미즈카타’라고 불리는 신자는, 공동체에서 ‘세례를 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쵸카타’라고 불리는 신자는 ‘교회전례력’에 따라 축일기념일 등을 책임지며, ‘키키야쿠’는 공동체 곳곳에 소식을 전합니다. 이렇게 공동체의 책임자들, 그 후손과 후손들은 250년을 이어가면서 빵과 포도주 대신 ‘밥과 술’로 ‘감사성제’, 즉 ‘미사’를 드려왔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한국에서 조상님들께 드리는 ‘제사’와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신부님들이 읊었던 라틴어 기도문들, 즉 ‘오랴쇼’라고 불리는 기도문들이 신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이어지면서, 발음도 형태도 많이 변형되었지만 제사상 앞에서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밥과 쌀을 봉헌하며 기도를 바치는 영상은, ‘숨은 그리스도교인’들이 박해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신앙, 자신의 후손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전하고자 했던 끈질긴 노력들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이미’ 만찬을 준비해 두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의 주인에게’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큰 이층 방’에서 파스카 음식을 제자들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요청해 두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들이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잊지 말도록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써 당신과 함께 했던 순간들을 기억하라고 일러 주십니다. 그렇게 우리가 당신을 잊지 않고 매일 같이 기념한다면, 그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 당신의 ‘몸과 피’가 되어 우리를 영적으로 육적으로 살게 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을 희망하며, 250여년간의 엄혹한 박해의 상황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온  일본의 ‘센뿌쿠 키리시탄’들의 꿈 처럼, 우리들도 예수님과 얼굴을 마주하며 기쁘게 만찬을 즐길 수 있을 것을 믿습니다. 그럴 수 있기를 희망하며 오늘도 미사 안에서 그분의 살과 피를 정성껏 받아 모십시다.

 

주님, 저희가 당신 만찬의 자리에서, 아버지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