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줄 때 받아라
해피제제
2011. 10. 5. 07:37
1독서
요나는 기절할 지경이 되어 죽기를 자청하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요나에게 물으셨다.
"아주까리 때문에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그가 "옳다 뿐입니까? 화가 나서 죽을 지경입니다." 하고 대답하니,
"너는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았으며,
하룻밤 사이에 자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그런데 하물며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복음말씀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단상
같이 살고 있는 동기 수사님이 사도직장과 공동체에서
힘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 올라오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일까 그 '약함을 고백' 받은 이후로 동기 수사님께 힘을 주려고 노력한다.
괜히 함께 놀아주지도 않으면서 구박만 하던 야옹이에게 애써 틈틈이 놀아 주고,
녀석이 환장하는 멸치를 손에 들고 나섰다가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손등을 할퀴어 오는 녀석에
'은혜도 모르는 놈' 하고 툴툴 거리기도 한다.
동기 수사님이 추진하는 일들에 딴지를 걸기 보다는 맞장구를 쳐주고
혹여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직접적인 반대 보다는 문제점들에 의견을 더하기도 한다.
동기 수사님이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사도직을 수행해야 할 동료이기에 마음을 더 쓰게 된다.
공동체에서도 가끔 타박 혹은 비난이 섞인 눈초리라도 보일라치면
얼른 눈을 밑으로 향하고 그 감정들을 살피며 혹여 마음이라도 다치지 않기를 청한다.
그러면서 무심코 내 비치는 시선들에 어느덧 무언가 달라져 보이는 것들이 있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그전에 허락 되지 않는 것들이 하나 둘 별 일이 아닌 게 되고
오히려 그이의 약함을 은혜로운 시선으로 대하니 이런 느낌은 참으로 새롭다.
'나는 가끔 너의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시선에 질려' 라는 말에
솔직한 동기 수사님의 나를 향한 긴장을 들은 후에 비로서 내 약함을 알아 듣게 되고
그래서 무언가 가슴 속에서 뭉클함이 자라더니 또 무언가 툭 하고 터지는 듯한 느낌에
동기 수사님을 향한 시선은 어제와 다르게 되었다.
그것은 또 다른 단계를 향한 자라남, 성장의 사인이다.
예전에도 비슷하게 겪어 본 체험이고 그럴 때면 세상이 새롭게 다가오곤 했다.
그리고 요즘 역시 함께 밥을 먹고, 미사를 하고, 차를 타고 출근 하며, 일을 하고,
여러 의견들을 나누면서 웃고 떠들면서 그 멋진 체험을 만끽하는 중이다.
하느님의 선물로 주신 이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부단히 몸에 새겨넣는 중이다.
이런 깨달음은 놓치고 싶지 않다. 물론 또 필요할 때 주실 것을 알지만 살짝 욕심을 내 본다.
좋은 것을 한꺼번에 주시지 않기에 은총이 부어질 때는 부지런히 새겨 넣어야 한다.
하느님이 심어 주신 씨앗, 조금은 더 나은 내게 될 수 있도록 껍질을 벗겨 주시는 이 때,
나는 그것에 감사하고, 즐기고, 부지런히 새긴다.
오랜만에 찾아 든 성장의 은총에 함뿍 잠겨 본다.
요나는 기절할 지경이 되어 죽기를 자청하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요나에게 물으셨다.
"아주까리 때문에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그가 "옳다 뿐입니까? 화가 나서 죽을 지경입니다." 하고 대답하니,
"너는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았으며,
하룻밤 사이에 자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그런데 하물며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복음말씀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단상
같이 살고 있는 동기 수사님이 사도직장과 공동체에서
힘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 올라오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일까 그 '약함을 고백' 받은 이후로 동기 수사님께 힘을 주려고 노력한다.
괜히 함께 놀아주지도 않으면서 구박만 하던 야옹이에게 애써 틈틈이 놀아 주고,
녀석이 환장하는 멸치를 손에 들고 나섰다가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손등을 할퀴어 오는 녀석에
'은혜도 모르는 놈' 하고 툴툴 거리기도 한다.
동기 수사님이 추진하는 일들에 딴지를 걸기 보다는 맞장구를 쳐주고
혹여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직접적인 반대 보다는 문제점들에 의견을 더하기도 한다.
동기 수사님이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사도직을 수행해야 할 동료이기에 마음을 더 쓰게 된다.
공동체에서도 가끔 타박 혹은 비난이 섞인 눈초리라도 보일라치면
얼른 눈을 밑으로 향하고 그 감정들을 살피며 혹여 마음이라도 다치지 않기를 청한다.
그러면서 무심코 내 비치는 시선들에 어느덧 무언가 달라져 보이는 것들이 있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그전에 허락 되지 않는 것들이 하나 둘 별 일이 아닌 게 되고
오히려 그이의 약함을 은혜로운 시선으로 대하니 이런 느낌은 참으로 새롭다.
'나는 가끔 너의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시선에 질려' 라는 말에
솔직한 동기 수사님의 나를 향한 긴장을 들은 후에 비로서 내 약함을 알아 듣게 되고
그래서 무언가 가슴 속에서 뭉클함이 자라더니 또 무언가 툭 하고 터지는 듯한 느낌에
동기 수사님을 향한 시선은 어제와 다르게 되었다.
그것은 또 다른 단계를 향한 자라남, 성장의 사인이다.
예전에도 비슷하게 겪어 본 체험이고 그럴 때면 세상이 새롭게 다가오곤 했다.
그리고 요즘 역시 함께 밥을 먹고, 미사를 하고, 차를 타고 출근 하며, 일을 하고,
여러 의견들을 나누면서 웃고 떠들면서 그 멋진 체험을 만끽하는 중이다.
하느님의 선물로 주신 이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부단히 몸에 새겨넣는 중이다.
이런 깨달음은 놓치고 싶지 않다. 물론 또 필요할 때 주실 것을 알지만 살짝 욕심을 내 본다.
좋은 것을 한꺼번에 주시지 않기에 은총이 부어질 때는 부지런히 새겨 넣어야 한다.
하느님이 심어 주신 씨앗, 조금은 더 나은 내게 될 수 있도록 껍질을 벗겨 주시는 이 때,
나는 그것에 감사하고, 즐기고, 부지런히 새긴다.
오랜만에 찾아 든 성장의 은총에 함뿍 잠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