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속에서도 혼자서만 세상 태연한 예수님
작년 10월 초쯤, 고토 라는 섬으로 순례를 다녀 왔습니다. 천주교 박해시대 나가사키를 비롯해 큐슈에 살던 신자들이 산속이나 외딴 섬으로 숨어 들게 되는데, 그 숨은 그리스도교인들의 후손들이 1873년, 종교 자유의 시대가 왔을 때 손수 나무와 돌을 쌓아 지은 성당이 50여곳이 넘게 남아 있습니다. 그 중 에가미, 코린 , 카시라가시마 성당 등은 서울의 명동성당과 전주의 전동성당 처럼 100년 이상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나가사키 항구에서 배로 3시간 정도면 갈 수 있으니, 코로나가 끝나면 여러분들도 언제든 고토로 순례를 떠나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그날 순례는 지난 10여년간 이곳 나가사키에서 한국인 신자분들의 순례 안내를 도우며 사도직을 해왔던 수녀님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순례객들이 없어서 한국으로 철수한 상태이지만, 그동안 수녀님들의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 이제 갓 나가사키로 부임해 온 저에게, 이런저런 순례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해 주시곤 하셨습니다. 고토 순례는 우리의 마지막 노하우 전수 수업이었지요.
주말에 태풍이 올라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는지라 평일 1박2일 일정으로 순례를 나섰습니다. 출발 첫날은 조금은 태풍을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지만, 파도도 잔잔하고 맑은 하늘이었기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카시라가시마 성당을 비롯해, 목재와 벽돌로 지어진 여러 소박하고 아름다운 성당들, 순교자들의 선혈처럼 빨간 이끼들로 가득한 그리스도교인들의 바닷가 묘지, 방 한 칸 면적에 수십명을 가두고 누울 수도 앉을 수도 없게 만든 빽빽한 감옥소 등 신앙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첫날의 순례를 마쳤습니다.
문제는 둘째날이었습니다. 아침부터 바람이 심상치 않더니, 해변으로 밀려오는 파도의 높이가 3-4미터를 넘고 있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예약해 두었던 여객선에 전화를 했더니, 높은 파도로 배의 운행 중단 가능성도 알려 왔습니다. 해서 우리 일행은 남은 일정을 취소하기로 하고, 오전 임시로 마련된 고속선에 탑승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고속선 60석 좌석 중 제 좌석이 54번이었으니 만석이 되기 전, 겨우 표를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고속선이 출발 후 곧 닥쳤습니다. 스피드를 낼 수 있는 작은 고속선인지라 여객선으로 3시간을 넘게 걸려 온 바다길을 겨우 1시간 40여분으로 단축할 수 있었으나, 창밖으로 넘실대는 파도의 높이로 마치 배가 반쯤은 가라 앉은 상태로 달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고속선이 높은 파도 위를 퉁 퉁 튕겨지듯이 내달리기에, 그 충격이 온 몸에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함께 타고 있던 옆자리 큰 수녀님은 의자의 팔걸이를 얼마나 세게 부여잡았는지 얼굴이 파랗다못해 새하얗게 변해 있었고, 애기 수녀님은 아에 앞좌석에 머리를 파묻고 죽은 듯이 움직임이 없어 보였습니다. 배를 타고 오는 내내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배에서 내렸을 때 수녀님들의 잿빛 수녀복 등쪽은 온통 축축히 변해 있었습니다. 애기 수녀님의, 다리가 풀려 곧 죽을 것 같은 표정은 덤이었지요.
물론 저야 평소에도 ‘만약 하느님께서 지금 나를 부르신다면 언제든지 “예”라고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라며 자신하는 사람인지라, 옆에 탔던 형제님이 ‘신부님은 무섭지 않았습니까? 그런 와중에도 스마트폰을 보시다니 존경스럽습니다’ 라고 하십니다. 실제로 배가 퉁 퉁 튕기며 나아가는 와중에도 유유자적 스마트폰을 보는가 하면, 멀미로 힘들어 하는 수녀님들을 놀려대며, 전혀 안 그런 척 했으니 형제님이 놀란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하지만 퉁 퉁 튀기며 나아가는 와중에 파도가 배의 옆구리를 강타 하여, 일순 배가 멈춰지며 옆으로 쭈욱 밀려났을 때는, 저 역시 가슴이 철렁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배가 뒤집혀서 그대로 가라 앉아 숨을 쉴 수 없으면 어쩌지’ 라는 생각과 함께, 세월호 아이들이 겪었을 고통스러웠던 순간들도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동시에 ‘하느님, 저를 구해 주소서. 제가 죽게 되었습니다’ 라며 지금까지의 허세를 버리고 다급히 하느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라는 인간은 그냥, 남들보다 조금 더 죽음의 공포에 무감했던 것이지, 전적으로 그분 손에 제 생명을 내맡겼던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순간 떠올랐던 장면이 오늘 복음말씀의 제자들의 허둥대던 모습이었습니다. “스승님, 저희가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라는 아우성에, 역시나 우리의 예수님은 혼자서만, 세상 태연한 모습을 보이십니다.
솔직히 고백합니다. 주님. 저희는 아직 겁이 많고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 보시기에 한참이나 부족한 저희들이지만, 그럼에도 죽음의 순간이 닥칠 때, 다른 어떤 누구도 아닌, 아버지 당신께 매달릴 수 있는 작은 믿음 한 조각 허락해 주소서. 비바람 중에도 주무시는, 세상 편안한 당신의 모습을 닮을 수 있기를,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청해 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