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한계 없는 것 앞에서

해피제제 2011. 12. 3. 07:08
1독서

주님께서 친히 그들의 상속 재산이 되신다.


2독서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복음말씀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단상

복음을 문자적 으로'만' 읽는다면 큰 코 다칠 일이다.
성경은 성경 저자들의 개인적 신앙 체험이고 해석이다.
예수님과 함께 공생활을 보내며 같은 것을 듣고 보았지만
제자들은 한 사건을 각기 다른 체험으로 3개의 공관복음서를 적었다.

마찬가지로 이방인들의 사도 바오로 역시 그러하다.
한 번도 실물로 예수님을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마스커스 도상에서의 환시를 통해 그리고 평생의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며
개인적 체험들을 그 체험의 한계 속에서 성령의 조명을 통해 7개의 서간문을 비롯해
교회의 복음과 전통으로 전해 주고 있다.

첫 일대 제자들이 그 사명을 다하고 2,3대 제자들 그리고 제자공동체들 역시 같은 처지다.
요한 사도의 체험들을 정리한 요한공동체의 복음서는 좀더 신학적이 되었다.
자신이 체험한 것들에 공동체의 지혜들이 더해져 예수님을 신학적으로 정리해 낸 것이다.
말씀, '로고스가 사람이 되시어'로 시작하는 요한복음서는 그리스 철학을 교육받은 흔적들이다.

초대 교부들은 또 어떤가
로마의 클레멘스, 유스티노스, 히에리니무스, 히뽈리투스,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오 주교, 체사레아의 대 바실리오, 나지안과 니사의 그레고리오,
예비신자 교육의 대가인 예루살렘의 치릴로,
금구(金口)라는 별명을 받은 위대한 설교가 요한 크리소스토모,
레오 대 교황, 히포의 아우구스티노 등은 자신들의 성경 주석서를 내놓았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그 밝혀진 지혜들을 각자의 체험 안에서 신자들과 세상에 더한 것이다.

교회의 이러한 전통은 현재에도 많은 신부,수녀님들이 주석서와 체험집을 내는 것이다.
거기에 교회의 가르침에 뿌리를 내리고 몸에 새겨진 것들이 기반이 되어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고 해석하고, 삶의 체험이 더해지고, 조명 받은 지혜로 밝혀져
예수님이 늘 하시던 수사법인 '비유'로 혹은 알레고리적인 해석이 쓰이고 등 등 등...

단 한 가지 방법만으로 성경을 해석하거나 '이것은 이것이다'로 확정짓지 않는다.
인간 이성의 한계가 얼마마하게 유한한지 우리의 역사가 알려 주고 있다.
18세기 이후 합리적인 이성이 세상을 지배하는 인간 계몽시대에
신비, 감성, 영혼, 조명, 이미지, 상상이 힘을 잃게 되면서
성경도 인간의 이성에 의해 그 한계가 그어졌다.

성경이 주는 다양한 힘들이 한 가지만으로 가로 막힌다면
'문자주의적, 근본주의적, 결정론적, 포괄주의적, 배타주의적, 호교론적,..' 등 등
어느 한 방법을 강요하는 시대를 살게된다. 다른 것에 자리를 내어 주지 않는다.
다행히 이렇게 많은 '주의'가 있는 것들은 그만큼 다양함이 존재한다는 의미일테니
그리고 각각의 성경을 해석하는 방식들이 서로를 강제하거나 고집하지 않고
그 좋은 것들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면 복음을 이해하는데에 더한 풍성함이 드러나리라. 

복음을 읽고 묵상하다보면 가끔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그 문맥을 이해할 때가 있고,
유대사회의 문화 양식을 통해서 고개를 끄덕일 때도 있고,
하느님 혹은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어떻게 저런 비유를 할 수 있을까 감탄할 때도 있고,
또 가끔은 도저히 현실적이어 보이지 않는 것들에서는 그 이상을 바라보게 되고,
그리고 아직은 내게 주어진 이성, 감정, 이미지, 상상력 등 그 한계를 넘는 것 앞에는
고용히 침묵하며 당신의 빛으로 그것들을 밝혀 주시기를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