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는 삶
1독서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복음말씀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단상
다행히 인터넷이 잘 잡히는 곳이다.
눈이 온통 하얗게 깔린 수안보의 한 작은 마을, 청주가 아닌 충주란다.
한참을 돌고 돌아 적막한 곳으로 찾아 드니
연수원 직원 분이 마당 눈을 치우시면서 마을을 돌 돌 헤매던 차량을 멀찍부터 보셨는지
손을 흔들며 환영한다.
수도회의 은인분이 당신 회사의 연수원을 빌려 주신 터에
아침에 창문을 열면 산이 이만큼 다가와 있고,
시골 마을이 지척으로 번화한 상점하나 없는 완죤 깡촌,
내게는 조용하고 고즈넉한 게 워크샵을 빙자한 휴가를 보내기에는 딱이다.
간만에 모인 형제들끼리 큰 상점이 없어서 시내까지 차를 몰아 다녀와
늦은 저녁을 후다닥 준비한다.
밥 당번인 나는 밥 해 먹었던 품으로 쌀을 씻어 15인분을 앉혔더니
잠깐 밥솥을 열어보던 또 다른 동기수사가
“어, 물 조금 적은데? 이만큼이면 밥이 꼬들해져” 한다.
그러면서 몇 컵을 더 넣는다.
헐~ 그동안 바우네 살면서 서넛이 먹을 분량만 지었다가
갑자기 15인분이어서 대~충 물을 조금 더 넣는다고 넣는데
주방 사도직에 일가견이 있는 수사님에게는 대번에 가늠이 되나 보다.
결과적으로 그이 덕분에 모두가 까끌까끌한 밥은 먹지 않게 되었다.
아, 내가 모르는 것에는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도 필요하다는 ‘오늘의 가르침’.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언제 잠들었는지 깨어보니 7시 40분,
간 밤 내가 확인한 시간이 12시 48분으로 평소 노인네(?) 처럼 이른 잠이 많은 내가
아마도 그 후 룸메이트 수사님과 족히 1시간은 잠자리 토크를 한 것 같으니
2시는 되어서야 잠이 들었던 것 같으니 얼추 평소 때 만큼 잔 것 같다.
빵빵한 오디오 시스템 덕분에 빔프로젝트를 쏘고 스크린을 내려서
‘피아니스트’라는 음악 영화를 형제들과 함께 관람했고,
그 사이 한 쪽에서는 술 한 잔도 운치를 내며 마시는 ‘분위기파’들이
촛불과 잔잔한 음악을 켜두고 아일랜드식 칵테일 바에 둘러 앉아 그동안의 수도삶을 나눈다.
깔끔이들은 비닐, 병, 플라스틱, 음식물 쓰레기, 태울 것 등 등 벌써부터 분리수거에 여념이 없고,
영화관(?)과 별도로 저쪽에서는 ‘1박2일’ 애청자들이 간간이 대박 웃음을 터뜨리며
혼자 볼 때의 웃음소리보다 더 유쾌하다.
그리고 이른 잠이 많은 형제 몇몇이 보이지 않는 것이
역시나 어느 조용한 곳에 둥지를 틀었나 싶다.
내일은 캄보디아에서 귀국하는 동기 수사님이 합류하기로 했으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이고
(내 맘이 그렇다하니 어느 후배 수사님은 ‘그런가?’ 한다,
아마도 함께 살았던 추억이 짙으니 까칠하기로 소문난 이 내가
그이와 전화하면서 ‘울먹이던’ 사연을 후배 수사님은 알턱이 없겠지)
오늘까지는 머리 아픈 프로그램은 생략했으니 딩굴댕굴 아무 것도 안 해 볼 요량이다.
늘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하는 내게는 역시나 무리겠지만
그럼에도 벗들과 이 유유자적한 시간들 즐겨볼 생각이다.
장 보느라 늦은 저녁이 될 듯 싶었으나
30분도 안 되어 15인분 식탁이 차려진 것을 보고
워크샵 여정을 함께 하시는 ‘실습기 수사’ 담당 부관구장 신부님께서는
“전부터 이렇게 다녀 본 적이 있습니까?”하고 신기하듯이 묻는다.
그러고보니 우리끼리 다닐 때는 늘 조를 나누고,
식사조들이 있고 그래서 당연히 그렇듯 익숙한 광경이니 뚝딱뚝딱 해내는데
당신에게는 이런 체험 역시나 생소했나 보다.
이전의 선배님들도 그랬겠지만 20년 수도삶이 더해지면서
‘함께’ 떠나 본 적이 별로 없는 그분에게
후배들의 이런 모습이 낯설면서도 고맙고 기쁜 모습이라나!
오늘 복음말씀을 듣고 있으니 ‘주님봉헌축일’이다.
내 기도 체험 중 몇 안 되는 ‘찐한 체험’이 있었던 것으로
시메온과 한나를 통해 어머니 마리아를 기도 안에서 짠하게 만났던 적이 있었으니
새삼 남다르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이 이 나와 이 땅의 모든 이들을 위해 여리디 여린 아기 예수로 봉헌되셨으니
각자의 사도직에서 오랜만의 해후에 이 아침 늦은 일과를 시작하는 여기 수도 형제들에게도
주님 봉헌 축일의 기쁨과 고마움을 함께 청원드린다.
주님 저희 삶에 자비를 베루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