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행복한 모태와 젖가슴
해피제제
2011. 10. 8. 06:52
1독서
유다에는 영원히,
예루살렘에는 대대로 사람들이 살리라.
복음말씀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단상
가끔씩 만나 서로의 삶을 나누는 일흔에 이른 막역지교의 벗이 있다.
동기 수사님의 표현대로'복 자매님'이 그분이신데
어른을 만나면 어른의 지혜를 배울 수 있기에 그분이 한 까칠한 성격이지만
또 더하게 까칠한 나는 그분과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고 삶을 나눈다.
서로에게는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분의 표현을 따르면
사람들은 유전인자에 그 사람의 성격이 새겨진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옛부터 혼인할 경우 신랑각시가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시집 장가를 가던시절
상대방 가문의 배경과 출신 그리고 그 부모를 대하는 것만으로도 혼인이 성사됨을 그 예로 삼는다.
그러면서 가문의 가풍과 교육정도, 그 사람들의 성정들이 대대로 유전자에 새겨진다는 것이다.
그분의 위와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면 일견 타당한 듯 보이면서도
때때로 곤혹스러운 마음이다.
타당함의 이유는 오랜 전통에서 오는 가풍과 교육이
한 사람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침은 사실이겠으나
동의할 수 없는 것은 '개천에서 용난' 경우는 설명할 수 없는 까닭이다.
또 '용'이 되지는 않았더라도 선하고 맑은 성정으로
일상을 사는 이들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 말이기에 그렇다.
그분 말씀의 의도는 '용'이 되든, 되지 않든
대체적으로 가풍이 좋은 집안에서 맑고 선한 이들이 많이 나온다는
경험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리라.
엄격한 분으로 기억되는 올해 세수 94세에 이른 친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당신 홀로 키울 수 없는 이유로 나와 동생을 목사님께 맡겼다.
세상에 나와서 매일 처음 본 것은 분명 어머니, 아버지 얼굴이었을텐데
내 첫 기억은 할머니와 함께 한 아침부터 저녁까지 참으로 엄격한 일상이다.
당신 자신에게 평생을 엄격하게 대하셨기에 이제 막 어린 손주들에게도 그리 대하신 것이리라.
목사님 댁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생활했던 나는
목사님 내외가 실제로 내 아버지, 어머니가 되었다.
실제로 내 성격과 행동 방식은 그분들 성정과 그분들 가르침에 기인한 것이다.
또한 한결같은 신뢰로 하느님을 향한 신앙 역시 두분이 전해주신 유산이다.
할머니의 당신 자신에 대한 엄격함과 성실함이 그렇고
목사님 내외의 맑고 선한 삶의 방식이 내 온전한 텃밭이 된 것이다.
오늘 복음말씀의 한 여인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찬양한다.
'당신을 밴 모태와 당신에게 젖을 먹인 그분은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감탄에는
은근한 부러움과 알듯모를 아련함이 묻어 난다.
아마도 아이를 더 가지지 못한 혹은 당신 자신의 아이를 평생 만나지 못하고 떠나가신
친어머니의 마음이 찾아 들어서일런지도 모른다.
올 해 서로를 마주하지 못하고 떠나버린 친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또 다른 아버지가 보내주신 이메일을 이 아침 읽어 본다.
'형욱수사님!
....
유다에는 영원히,
예루살렘에는 대대로 사람들이 살리라.
복음말씀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단상
가끔씩 만나 서로의 삶을 나누는 일흔에 이른 막역지교의 벗이 있다.
동기 수사님의 표현대로'복 자매님'이 그분이신데
어른을 만나면 어른의 지혜를 배울 수 있기에 그분이 한 까칠한 성격이지만
또 더하게 까칠한 나는 그분과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고 삶을 나눈다.
서로에게는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분의 표현을 따르면
사람들은 유전인자에 그 사람의 성격이 새겨진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옛부터 혼인할 경우 신랑각시가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시집 장가를 가던시절
상대방 가문의 배경과 출신 그리고 그 부모를 대하는 것만으로도 혼인이 성사됨을 그 예로 삼는다.
그러면서 가문의 가풍과 교육정도, 그 사람들의 성정들이 대대로 유전자에 새겨진다는 것이다.
그분의 위와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면 일견 타당한 듯 보이면서도
때때로 곤혹스러운 마음이다.
타당함의 이유는 오랜 전통에서 오는 가풍과 교육이
한 사람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침은 사실이겠으나
동의할 수 없는 것은 '개천에서 용난' 경우는 설명할 수 없는 까닭이다.
또 '용'이 되지는 않았더라도 선하고 맑은 성정으로
일상을 사는 이들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 말이기에 그렇다.
그분 말씀의 의도는 '용'이 되든, 되지 않든
대체적으로 가풍이 좋은 집안에서 맑고 선한 이들이 많이 나온다는
경험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리라.
엄격한 분으로 기억되는 올해 세수 94세에 이른 친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당신 홀로 키울 수 없는 이유로 나와 동생을 목사님께 맡겼다.
세상에 나와서 매일 처음 본 것은 분명 어머니, 아버지 얼굴이었을텐데
내 첫 기억은 할머니와 함께 한 아침부터 저녁까지 참으로 엄격한 일상이다.
당신 자신에게 평생을 엄격하게 대하셨기에 이제 막 어린 손주들에게도 그리 대하신 것이리라.
목사님 댁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생활했던 나는
목사님 내외가 실제로 내 아버지, 어머니가 되었다.
실제로 내 성격과 행동 방식은 그분들 성정과 그분들 가르침에 기인한 것이다.
또한 한결같은 신뢰로 하느님을 향한 신앙 역시 두분이 전해주신 유산이다.
할머니의 당신 자신에 대한 엄격함과 성실함이 그렇고
목사님 내외의 맑고 선한 삶의 방식이 내 온전한 텃밭이 된 것이다.
오늘 복음말씀의 한 여인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찬양한다.
'당신을 밴 모태와 당신에게 젖을 먹인 그분은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감탄에는
은근한 부러움과 알듯모를 아련함이 묻어 난다.
아마도 아이를 더 가지지 못한 혹은 당신 자신의 아이를 평생 만나지 못하고 떠나가신
친어머니의 마음이 찾아 들어서일런지도 모른다.
올 해 서로를 마주하지 못하고 떠나버린 친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또 다른 아버지가 보내주신 이메일을 이 아침 읽어 본다.
'형욱수사님!
뒤늦게 수사님 아버님 부음에 마음으로부터 위로를 전합니다.
원래 마음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져 가신 분이라, 떠난다는 게 그리 낫설지는 않겠지만,
하여튼 인생의 한장을 닫게 되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지요... 수사님 입장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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