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양식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고...
해피제제
2011. 11. 24. 06:58
1독서
"살아 계신 하느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성실히 섬기는 너의 하느님께서 너를 사자들에게서 구해 내실 수 있었느냐?"
복음말씀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단상
전날 속을 달래기 위해 모지게 쉬면서
깔깔깔 기획단에서 엮은 희망BUS 라는 책을 읽었고,
아는 얼굴도 있고, 사연도 있고, 그에 따라 감정들도 서린다.
하고 많은 사연들에 눈물을 찔끔 흘려 보기도 하고
아픔도, 분노도, 다시 사람에게서 희망도 찾는다.
함께 하지 못해 괜히 미안하고, 부끄럽고, 그이들이 자랑스럽고
다음에는 꼭 함께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해낸 것들에 기도를 더한다.
외부세력도, 정치꾼들도, 시위꾼들이 아닌, 평범한 남녀노소 희망지킴이들이 그곳에 있었다.
믿는 이들도 있고, 믿지 않는 이들이 더 많은 그곳에서 또 다른 구원의 희망을 본다.
하느님이 있고 없건, 종교를 가지든 안 가지든, 거기에 사랑이 있고 희망이 있다.
게다가 실천하는 행동까지....
이것저것 재고 살핀다면 운동하기는 좀처럼 힘겹다.
단순하고 맹해 보이는 사람들이 온 몸을 싣는다.
그런 면에서 사도직도 생각해야 하고, 참가해야 할 모임도 있어서
나는 끝내 떠나지 못했다.
예전에는 잘도 이것저것 재지 않고 그렇게 떠다녔는데
어디에 속하고 해야할 일들이 많아지면서 좀처럼 몸을 빼기가 쉽지 않다.
아니다. 이것도 핑계다.
아무도 가지 말라 붙잡은 사람이 없는데 이것저것 살핀 내 탓이다.
그냥 한 마디 던지고 떠나면 그만일텐데....
살면서 자꾸만 느는 것이 이런저런 이유다.
아마도 이런저런 것들에 붙잡혀 사는 내 몸이다.
한 여인이 309일을 한 평 공중에서 위태위태 흔들리며 살았다.
모두의 기도를 받았다 하지만 309일 외롭지 않을 순간이 어디 있을까
하고 많은 이유를 갖다 붙이기도 하지만 내가 붙인 건 '사랑'이다.
먼저 떠나간 이들에 대한 빚갚음과 남은 가족들에 대한 연민과 자기 삶에 대한 반성이다.
그리고 차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여 자기 한 목숨 담보로 벼랑끝 선택을 통한 시위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고, 그렇게 속절 없이 떠나보낸 벗들을 대신해
가진 것 마지막 남은 생명뿐, 그이가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곤 그것뿐이다.
309일 제 발로 걸어 내려올 때 그녀 뒤에 서 있던 다른 이들은 모르겠다.
대신 일면식도 없던 만삭의 김여진이 그녀를 안고 펑펑 눈물을 흘리던 모습에
같은 마음으로 눈물을 펑펑 쏟는다. 저렇게 함께 눈물 흘려 주는 이가 있구나...
살면서 자꾸만 무뎌지는게 이 마음이다.
너무 많은 고통에 아픔에 사연들에 다 감당할 수 없으니
이렇게 무뎌지기를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진짜 앞에서는 늘 이렇게 미안하고 고맙고 눈물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무뎌지게 하겠다고 그게 또 무뎌지는 것이 아니다.
저마다 똑같이 심어주신 것들이 있어 살면서 상처 받지 않으려고 무디게도 하지만
어느 때인가 툭 하고 터지는 때가 있으니 그때는 또 그렇게 눈물 흘리면 될 일이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고'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고 하늘을 보고
그리고 희망을 본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성실히 섬기는 너의 하느님께서 너를 사자들에게서 구해 내실 수 있었느냐?"
복음말씀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단상
전날 속을 달래기 위해 모지게 쉬면서
깔깔깔 기획단에서 엮은 희망BUS 라는 책을 읽었고,
아는 얼굴도 있고, 사연도 있고, 그에 따라 감정들도 서린다.
하고 많은 사연들에 눈물을 찔끔 흘려 보기도 하고
아픔도, 분노도, 다시 사람에게서 희망도 찾는다.
함께 하지 못해 괜히 미안하고, 부끄럽고, 그이들이 자랑스럽고
다음에는 꼭 함께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해낸 것들에 기도를 더한다.
외부세력도, 정치꾼들도, 시위꾼들이 아닌, 평범한 남녀노소 희망지킴이들이 그곳에 있었다.
믿는 이들도 있고, 믿지 않는 이들이 더 많은 그곳에서 또 다른 구원의 희망을 본다.
하느님이 있고 없건, 종교를 가지든 안 가지든, 거기에 사랑이 있고 희망이 있다.
게다가 실천하는 행동까지....
이것저것 재고 살핀다면 운동하기는 좀처럼 힘겹다.
단순하고 맹해 보이는 사람들이 온 몸을 싣는다.
그런 면에서 사도직도 생각해야 하고, 참가해야 할 모임도 있어서
나는 끝내 떠나지 못했다.
예전에는 잘도 이것저것 재지 않고 그렇게 떠다녔는데
어디에 속하고 해야할 일들이 많아지면서 좀처럼 몸을 빼기가 쉽지 않다.
아니다. 이것도 핑계다.
아무도 가지 말라 붙잡은 사람이 없는데 이것저것 살핀 내 탓이다.
그냥 한 마디 던지고 떠나면 그만일텐데....
살면서 자꾸만 느는 것이 이런저런 이유다.
아마도 이런저런 것들에 붙잡혀 사는 내 몸이다.
한 여인이 309일을 한 평 공중에서 위태위태 흔들리며 살았다.
모두의 기도를 받았다 하지만 309일 외롭지 않을 순간이 어디 있을까
하고 많은 이유를 갖다 붙이기도 하지만 내가 붙인 건 '사랑'이다.
먼저 떠나간 이들에 대한 빚갚음과 남은 가족들에 대한 연민과 자기 삶에 대한 반성이다.
그리고 차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여 자기 한 목숨 담보로 벼랑끝 선택을 통한 시위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고, 그렇게 속절 없이 떠나보낸 벗들을 대신해
가진 것 마지막 남은 생명뿐, 그이가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곤 그것뿐이다.
309일 제 발로 걸어 내려올 때 그녀 뒤에 서 있던 다른 이들은 모르겠다.
대신 일면식도 없던 만삭의 김여진이 그녀를 안고 펑펑 눈물을 흘리던 모습에
같은 마음으로 눈물을 펑펑 쏟는다. 저렇게 함께 눈물 흘려 주는 이가 있구나...
살면서 자꾸만 무뎌지는게 이 마음이다.
너무 많은 고통에 아픔에 사연들에 다 감당할 수 없으니
이렇게 무뎌지기를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진짜 앞에서는 늘 이렇게 미안하고 고맙고 눈물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무뎌지게 하겠다고 그게 또 무뎌지는 것이 아니다.
저마다 똑같이 심어주신 것들이 있어 살면서 상처 받지 않으려고 무디게도 하지만
어느 때인가 툭 하고 터지는 때가 있으니 그때는 또 그렇게 눈물 흘리면 될 일이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고'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고 하늘을 보고
그리고 희망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