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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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인근에 있는 절 경내
주일 미사는 고엔지 성당이다. 3월에 부제품을 받은 고구레 수사님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다음날 함께 가도 괜찮겠냐는 청에 오히려 더 환하게 반기며 응해 준다. 당신이 주말 사도직을 하고 있는 곳이다. 지난 주에는 우에노성당에서 ‘리’수사와 함께 중국어 미사를 참례했으니 일본 성당에서는 처음 드리는 미사다.
이른 아침 자전거를 타고 20여분을 달렸다. 주일날 아침이라 아직 거리가 한적한 것이 여기가 말로만 듣던 ‘도쿄’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아마도 주택가라서 그러하리라. 사람이 없는 거리를 정말이지 신나게 내달렸다. 장바구니가 달린 기어도 없는 자전거를 한가로이 타고 가는 내 모습이, 그리고 그렇게 낯설지 않은 이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다. 꿈에 그리던, 주일 날 아침 미사를 향하는 청량감 넘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고엔지 성당
주님 수난 성지주일이라 입당 전 올리브 가지(?)를 들고서 환호성도 올리고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할머니의 가방을 가볍게 들어도 드린다. 약 300여명이 가득찬 조그만 성당은 참으로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가득하다. 낡은 나무 의자며, 바람 솔솔 나무 창틀 그리고 온통 손 때가 묻은 성가책까지…
입당 전부터 일본인이 아닌 것을 알아채고 한국말을 배우는 신자 몇 분이 일본 사람 답지 않게 먼저 말을 건넨다. 용감한 자매님들…. 내 보기에는 입만 열지 않으면 그이들이나 내 모습이 별 분간이 안가는데 신기하게도 금방 알아채고 만다. 모를 일이다. 모를 일….
간신히 공동체에서 매일 미사로 익힌 일본어 경문을 떠듬떠듬 따라하며 애써 아닌 척 하지만 금새 탄로나는 어눌한 일본어 발음이며 엉거주춤 허둥대는 모습이 딱 ‘나 외국인임’ 그렇게 티를 낸다. 당연히 주례 신부님의 강론은 한 마디도 알아 듣지 못한다. 그래도 두 눈 똑바로 뜨고 끝까지 신부님을 노려(?) 본다. 덕분에 내 눈만 아프다.
미사 후, 한국말 클라스의 자매님들이 홀로 방황하는 나를 붙잡더니 휴게실 커피를 한 잔 건넨다. ‘으.. 무지 쓰다’ 내가 그 동안 이 쓴 커피를 물 마시듯이 마셨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사순시기가 끝나더라도 이 참에 봉헌한 이 몸은 비록 부끄럽게 살아가지만 대신에 커피라도 봉헌하는 삶을(?) 살아볼란다. 그래도 이렇게 사정 모르시고 대접해 주시는 분들에게는 또 그냥 고맙게 마셔 드리야 하겠지…아, 이 사도적 삶에 투철한 모습이란…
마음씨 좋은 분들에게서 점심 빵을 받아 들고 이왕 나온 김에 인근 주변을 탐방해 보기로 했다. 일본에서는 처음 타보는 자전거에다가 간만에 혼자만의 외출이다. 늘 조심조심 아기 다루듯 취급 받다가 고구레 수사님이 오후 늦게까지 성당에서 교리수업 등 사도직이 있다며 혼자 돌아갈 수 있겠냐는 조심스런 물음에 ‘와타시와 리얼 제수잇’ 영어와 일본어를 섞은 이상한 답변으로 걱정하지 말라고 한 후 재빨리 자전거를 타고 내뺀다. 드디어 혼자만의 탐험 시간이다.
평화의 숲 공원(헤이와노모리코우엔)
고엔지성당에서 고엔지 역까지, 고엔지 역에서 접때 ‘리’ 수사님과 한 번 와 본 헤이와노모리코우엔(평화의 숲 공원)까지 정말이지 내비게이션도 없이 잘도 찾아 왔다. 역시 길 감각은 타고났나 싶다.
코엔지 역 근처의 공연장
한낮의 햇볕을 쬐며 그리고 아까 선물로 받은 빵을 점심 삼아 참으로 넉살 좋게 앉아 있었다. 혼자 즐기는 문화가 존중되는 곳이라 누구 하나 낯선 눈낄 건네오는 이가 없다. 외롭지도 거북스럽지도 않게 자유로운…. 게다가 가족끼리 혹은 공동체끼리 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 깊다. 한국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아이들이 도시락을 먹고 이웃들이 단체로 해 온 음식을 나누는 이런 여유를 일상에서 가지려면 우리는 좀 더 시간이 걸릴 듯 싶다. 주일 오후가 또 이렇게 청량하다.
봄꽃축제가 한창인 공동체 근처의 절
공동체에 돌아오는 길에 근처 절에 들렀다. ‘하나마츠리(봄꽃행사)’가 경내에서 한창이다. 신도들이 음식을 나누고 아이들은 장기자랑이 한창이다. 아직 추운 날씨에 꽃봉오리가 그대로 맺혀 있기도 하지만 어느 것들은 이미 만개해 있다. 핑크빛 향기들이 사람들의 웃음과 발걸음에 가득하다. 푸른 하늘과 만개한 꽃 그리고 조용한 경내 곳곳을 사진기에 담아 두고 따사로운 햇살로 배웅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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