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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몸과 마음에 새겨진 이 본문

매일의 양식

몸과 마음에 새겨진 이

해피제제 2011. 4. 23. 11:18
1독서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2독서

그가(아브라함) "예, 여기있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4독서

"너 가련한 여인아, 광풍에 시달려도 위로받지 못한 여인아,
보라, 내가 석류석을 너의 주춧돌로 놓고, 청옥으로 너의 기초를 세우리라.
너의 성가퀴들을 홍옥으로, 너의 대문들을 수정으로, 너의 성벽을 모두 보석으로 만들리라.
너의 아들들은 모두 주님의 제자가 되리라. 또 네 아들들의 평화가 넘치리라."


5독서

너희는 어찌하여 양식도 못 되는 것에 돈을 쓰고,
배불리지도 못하는 것에 수고를 들이느냐?
들어라, 내 말을 들어라.
너희가 좋은 것을 먹고, 기름진 음식을 즐기리라.


서간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복음말씀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단상

새벽녘 거리를 메우는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있습니다.
숨 가쁘게 달리는 베드로와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의 거친 숨소리만 가득 합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어디를 그리 바삐 가는지 시끄러운 발자국 소리만 이 아침을 깨웁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간 밤 예수님을 모셔둔 돌무덤입니다.
예루살렘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어깨가 으쓱했던 것이 엊그제인데,
이곳에 예수님의 시체를 모실 때는
그분을 따르던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마저도 보이지 않는 이가 많습니다.
참으로 초라해 보이는 죽음입니다.

숨이 턱에까지 차서 무덤을 찾은 세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께서 ‘너는 나의 반석’ 이라고 이름 붙여준 ‘베드로’와
예수님 ‘품 안에 기대어 있던’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
그리고 그분의 입술에 올려졌던 한 명의 여인 ‘마리아’,
간밤을 온통 새하얗게 지새웠는지 이들의 복잡한 마음이 전해집니다.
두렵고, 떨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그것입니다.

무덤가 돌 위에 망연자실 앉아 있는 베드로는 온통 땀투성이입니다.
평생의 삶이었던 ‘그물’을 던져 버리고 자신에게 ‘꿈’을 보여준 예수님을 따랐지만,
그 꿈이 속절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더 비참한 것은 당신의 ‘교회의 반석’이라는 자신이,
가장 먼저 그 꿈을 부정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살면서 ‘예수님을 떠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장담했던 나입니다.
빈 공터에 땀범벅으로 앉아 있는 모습과
그 땀을 훔쳐내지만 언뜻언뜻 눈가로 향하는 손에 자연스레 시선이 가닿습니다.

반면 한 켠에서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의 모습이 보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의 마지막을 지켰던 어린 제자입니다.
당신도 이 땅에서는 철저히 인간이셨는지라
돌아가시면서도 이승에서의 한 자락 인연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인지 당신의 마지막 유언은 “이 분이 네 어머니이시다”라며
어머니 마리아를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십니다.
한결같이 성실했던 당신의 사랑하시는 제자라면
다른 누구보다도 어머니를 믿고 맡겨둘 수 있겠습니다.
길 떠나는 이에게서 그이의 어머니를 ‘믿고 맡길’ 사랑과 신뢰와 인정이라면
충분히 ‘잘 살았다’ 싶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일편단심 한 곳만 바라보고 삽니다.
예수님을 알기 이전에는 어찌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리아에게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별 상관없어 보입니다.
그저 상태를 변화시킨 예수님이지만
혹시나 ‘누가 주님을 꺼내 갔는지’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그것만이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마리아에게는 예수님과 함께했던 그 시간만으로 족해 보입니다.
죽음 이후의 떠남도 문제될 일이 아닙니다.
온 몸으로 체험한 예수님을 비록 상태가 변했다 해서 그것을 몰라볼 그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에 새겨진 마리아의 예수님, 그이가 바로 예수님의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마리아야"라는 예수님의 이 부름은
공생활 내내 예수님이 마리아를 향해 한결같이 불러주셨던 특별한 부름입니다.
마리아는 단박에 마음에 새겨진 예수님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라뿌니”, 이 얼마나 큰 기쁨과 놀람이 배어있는 감탄인지...

서로에게 비할바 없이 소중한 두 인연을 ‘一期一會’라 합니다.
‘생애 단 한 번의 시간, 생애 단 한 번의 인연’,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그러한 시간이며
예수님에게 마리아가 그러한 인연입니다.

이렇게 이 셋에게 체험된 예수님의 모습은 좀처럼 겹쳐지는 것이 없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마리아는 각기 고유한 예수님과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추억은 예수님과 개인적이고 친밀한 공생활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수난과 죽음, 부활의 체험 속에서
또 각자에게 체험되는바 그대로 다른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이란 이렇듯 기도하는 이와 하느님 사이에 고유하게 맺어지는 인연입니다.


이 글은 예수회 영성연구소 간행물 '영신수련(4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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