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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본문

매일의 양식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해피제제 2022. 4. 15. 15:28

 

 

찬미 예수님! 일본 나가사키에서 사도직을 하고 있는 예수회 김형욱 도미니코 사비오 신부입니다. 서두에 일본에서 사도직을 하고 있는이라고 제 자신을 소개 드렸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이곳 나가사키로 파견 받고 1년 반이 지났건만 관광객과 순례객들의 발 길이 끊겨 제가 사도직을 하고 있는 ‘26성인 순교자 기념박물관은 말 그대로 개점 휴업 상태입니다. 뭐 그 덕분에 일본 천주교 교회사를 차분히 공부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가끔은 단 한 명도찾지 않는 날에는 너무 놀고 먹는 것은 아닌가 싶어 조금은 미안하기도 합니다.

 

다행히 이런 놀고 먹는와중에 예수회 후원회 담당 신부님의 요청으로 6월 주일 강론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스케쥴을 따라가다보니 이번 주 수요일에 요셉 부제님의 서품식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수품자가 단 한 명이라는 것에 살짝 놀라기는 했지만, 곧 그 한 명의 수품자도 하느님께서 저희 수도회에 허락해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싶어, ‘놀란마음을 얼른 감사의 기도로 되돌려 보았습니다.

 

게다가 이번 서품식 주례를 맡아 주신 분이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님이시라는 것을 알고서는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유 티모테오 주교님은 2015년 저와 제 동기 신부님들에게도 서품을 주셨습니다. 당시 주교님께서는 주교직으로 불림을 받으신 이후, 당신의 첫 서품식 주례라시며, 그것도 무려 열 명의 새사제 숫자에 무척 기뻐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6년 후 같은 수도회에서 단 한 명의 새사제라니, 저 만큼이나 주교님께서도 2015년의 서품식을 떠올리신다면 여러가지 생각이 많아지실 듯 싶습니다.

 

그날의 서품식을 떠올리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받을 은총을 그날 하루에 모두 받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그날 수품자로서 정신이 없던 와중에도, 아직도 선명히 기억에 남는 사건과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명동성당에서2시간이 훌쩍 넘는 긴 서품식을 마치고 우리 열 명의 새사제들은 구역을 나누어 그동안 기도와 사랑으로 응원해 주신 가족과 신자분들에게 새사제 안수기도를 해드렸습니다. 선채로, 오랜 시간 기도를 올리며 자신의 차례를 조용히 기다리시는 신자분들이, 차례로 새사제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안수를 받는 모습에서는, 역시나 새사제 답게엄청 떨리고 쑥쓰러웠습니다. 그런 중에 제 눈에 확 들어오는 한 장면이 있었는데, 아픈 아이를 휠체어 침대에 눕혀 온, 그래서 아이에게 축복 기도를 부탁하시는 한 어머니의 간절한 모습이 그것입니다. 마치 주님, 제 어린 아이가 죽게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라고 외치는 회당장 야이로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저 처럼 충격이 컸었는지 곁에서 그 광경을 지켜 본 어느 신자분이 급히 사진을 찍어 제게 보내주셨습니다. 지금도 그날의 사진을 볼 때면 아픈 아이와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또 서품식 다음날 예수회센터에서의 후원회 첫미사 때의 안수기도에서는, 어떤 자매님께서는, 당신이 안수기도를 받을 차례가 되시자, 조심스럽게 제 앞으로 다가오시더니, 두 손을 살며시 내밀어 제 하얀 영대를 붙잡으십니다. ‘그 동안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었는데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라며 그 동안 수차례 글로만 알고 있던 성경 속 하혈병 여인을 바로 눈 앞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군중들이 그분을 따라 다니며 어찌되었든 단 한 번이라도 그분의 옷에 손을 대려고 밀쳐 대던 장면이 정말로 제 눈 앞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느님 당신의 거룩한 성사는, 약하고 부족한 사제라는 도구를 통해 당신께서 직접 일하신다는 것을 알게하는 뜻밖의 선물이었습니다.  

 

열두 해 동안이나 전국의 의사를 찾아다니며 별 수를 다 써보았지만 불치병처럼 느껴졌던 하혈병 여인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라고 위로를 건네시는 주님, 사랑하는 자식을 살리려고 예수님 앞에 철퍼덕 무릎을 꿇었던 회당장 야이로에게,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라는 말로, 아이 아빠의 간절함에 기쁘게 응답해 주시는 주님, 저희가 매일 만나는 성경 속 예수님 행적들이 오늘 우리 일상의 자리에서 생생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하소서. 회당장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하셨던 그 말씀처럼, 매일의 일상 안에서 우리가 그 믿음을 겸손히 살아가게 하소서. 그럴 수 있기를, 오는 한 주도 나의 주, 나의 하느님께간절히 청해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