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희망 안에서 외치는 강정의 평화 본문
희망 안에서 외치는 강정의 평화 | ||||||
[예수회 생명평화미사 강론 -이종진 신부] | ||||||
| ||||||
복음을 이해하고 주석하는 일은 늘 ‘삶의 맥락’ 안에서.. ‘위로부터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님의 부연설명에 따르면, 이는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말씀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바로 ‘낡은 인간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인간으로 변형된다는 것’일 텐데,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묵은 감수성과 사고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감수성과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전환한다는 것’, 곧 ‘회심’을 의미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형은 구체적인 ‘삶의 맥락’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곧 회심이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삶의 현실 내지는 현장’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라야 한다.
회심의 시작은 우리의 잘못된 현실을 냉철히 바라보는 데서 시작되어야 이제 우리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감수성과 새로운 사고방식은 무엇이겠는가? 먼저, 제주도민의 아픈 역사에 대한 이해와 그들의 감수성에 대한 공감은 우리 안에 아직도 충분히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 ‘4∙3 사태’에 대한 정부차원의 공식적인 사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민의 원한은 아직도 해소되지 못하고, 또 충분히 보상받고 있지도 못하다. 지역주민의 감정을 무시하고 ‘국책사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권력을 동원해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태도는 얼마나 비민주적인 행태인가? 과연 안보논리는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인가? 평화를 추구하는 노력이야말로 나라를 안전하게 하는 가장 올바르고 이성적인 방식이 아닌가? 그것은 곧 복음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아울러, 환경의 보전은 단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인가? 군함뿐만 아니라, 초호화여객선의 운행을 위해서도 그런 기지가 필요하다는 변명은 자연의 파괴라는 중대한 죄질을 정당화시키는 ‘꼼수’일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환경의 강조는 자연을 신성화하려는 이데올로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자연의 파괴가 하나의 죄질로 인식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로 인해서 주님의 영광이 반사되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가 소멸되기 때문이다. 아파트와 고층빌딩 등 콘크리트 건물로 꽉 채워져 있는 도시에서 하느님 체험이 점점 어렵게 되어 가고 있음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강정에 평화가 깃들일 때까지 계속 연대를.. 회심, 곧 새로운 감수성과 사고방식의 일보는 이런 현실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봉헌하는 시국미사의 취지는 우리의 이러한 회심을 사회 전반으로까지 확대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종진 신부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원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세상에게 말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벌써 한 달이 훌쩍.... (5) | 2012.04.30 |
---|---|
요놈의 입이 방정... (4) | 2012.04.25 |
강우일 주교 “예수는 제관 아닌 예언자.. (0) | 2012.04.15 |
예수님은 알고보니 예수회원이었다! (0) | 2012.04.15 |
새 친구가 생겼습니다 (11) | 2012.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