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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희망 안에서 외치는 강정의 평화 본문

세상에게 말걸기

희망 안에서 외치는 강정의 평화

해피제제 2012. 4. 18. 21:39

 

희망 안에서 외치는 강정의 평화
[예수회 생명평화미사 강론 -이종진 신부]
2012년 04월 17일 (화) 15:49:17 이종진 .

복음을 이해하고 주석하는 일은 늘 ‘삶의 맥락’ 안에서..

‘위로부터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님의 부연설명에 따르면, 이는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말씀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바로 ‘낡은 인간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인간으로 변형된다는 것’일 텐데,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묵은 감수성과 사고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감수성과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전환한다는 것’, 곧 ‘회심’을 의미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형은 구체적인 ‘삶의 맥락’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곧 회심이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삶의 현실 내지는 현장’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라야 한다. 

   
▲ 이종진 신부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바로 우리를 이곳에 함께 모이게 한 현실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곧 ‘평화가 위협받고 있고, 환경이 파괴되고 있는 강정의 현실’이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것, 이것은 분명한 모순이다. 한 마디로, 말로는 평화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군사적인 긴장을 부추기는 것이야말로 말과 행동이 서로 이반되는 ‘수행적인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모순적인 현실 안에 처해 있다. 복음이 요구하는 거듭 태어나는 것, 곧 회심은 바로 이런 삶의 현실을 직시하고, 반성하면서 발생해야 한다. 

회심의 시작은 우리의 잘못된 현실을 냉철히 바라보는 데서 시작되어야

이제 우리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감수성과 새로운 사고방식은 무엇이겠는가? 먼저, 제주도민의 아픈 역사에 대한 이해와 그들의 감수성에 대한 공감은 우리 안에 아직도 충분히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 ‘4∙3 사태’에 대한 정부차원의 공식적인 사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민의 원한은 아직도 해소되지 못하고, 또 충분히 보상받고 있지도 못하다. 지역주민의 감정을 무시하고 ‘국책사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권력을 동원해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태도는 얼마나 비민주적인 행태인가? 과연 안보논리는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인가? 평화를 추구하는 노력이야말로 나라를 안전하게 하는 가장 올바르고 이성적인 방식이 아닌가? 그것은 곧 복음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아울러, 환경의 보전은 단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인가? 군함뿐만 아니라, 초호화여객선의 운행을 위해서도 그런 기지가 필요하다는 변명은 자연의 파괴라는 중대한 죄질을 정당화시키는 ‘꼼수’일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환경의 강조는 자연을 신성화하려는 이데올로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자연의 파괴가 하나의 죄질로 인식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로 인해서 주님의 영광이 반사되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가 소멸되기 때문이다. 아파트와 고층빌딩 등 콘크리트 건물로 꽉 채워져 있는 도시에서 하느님 체험이 점점 어렵게 되어 가고 있음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강정에 평화가 깃들일 때까지 계속 연대를..

회심, 곧 새로운 감수성과 사고방식의 일보는 이런 현실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봉헌하는 시국미사의 취지는 우리의 이러한 회심을 사회 전반으로까지 확대시키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실천적인 노력은 철저히 복음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곧 우리의 행위가 사회 변화를 위한 작은 표징이 되도록 하는 일이다. 시국미사는 성사적인 표징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의 의미는 이렇다. 우리는 끊임 없이 표징의 씨를 뿌릴 뿐이며, 거기서 열매를 거두는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 뿐이라는 것이다.
가령, 지난 2월 말 한일 예수회 신학자들의 모임이 열렸을 때, 본인은 여러 동료들과 함께 강정마을을 방문하고 이어서 강우일 주교님을 만나 뵈었다. 그때 그분의 진솔한 체험담은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주교님은 정부의 일방적인 묵살과 여론의 외면에 부딪히면서 여러 차례 평화운동을 포기하려고 마음먹었었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그러나 뜻있는 활동가들이 강정에 모여들고 이 운동에 동참하면서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씀도 하셨다. 지금까지 평화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히 하느님의 섭리였다는 주교님의 신앙증언은 우리에게 희망을 선사하기에 충분한 말씀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선거결과에서 드러났듯이 우리의 여건이 더욱 불리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평화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계속 해나갈 수 있다. 올바른 회심의 한 중요한 항목은 ‘희망’이다. 그것은 낙담이나 체념에 이르게 하지 않는다. 강정의 평화, 한반도의 평화,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의 작은 노력이나 외침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서로 지지하고 격려해가면서 이 노력이 결코 중단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회심은 계속되어야만 하는 어떤 것이다. 거듭 태어나는 것은 하나의 ‘과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늘 서로에게 일깨워주어야 할 것이다. 평화를 위한 투쟁은 반드시 희생을 필요로 한다. 비록 우리가 마지막으로는 하느님의 힘에 철저히 의존하면서도,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과 책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강정에 평화가 깃들일 때까지 연대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종진 신부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원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