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입으로 하는 강론’, 보편적 상식과 절박한 현실 본문

매일의 양식

‘입으로 하는 강론’, 보편적 상식과 절박한 현실

해피제제 2022. 4. 15. 16:26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고 스마트폰 화면을 꺼두었다. 당선자가 국정 운영을 잘 해 주기를 기도하고 응원을 보내기는 하지만 그이의 얼굴을 마주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듯싶다. 분명한 것은 0.7%로의 차이기는 하지만 국민들은 내가 지지하지 않았던 이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이다. 선거 토론 방송을 시청하면서 분명히 비록 후보자에게서 흠결이 보이고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가운데에서도 확연히 대비되는 두 후보자들의 비전과 철학에 우리 국민들의 ‘상식’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에게 이번 선거 결과는 충격이었고 급기야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귀를 닫게 만들었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군부독재정권으로부터 피를 흘리며 쟁취한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꿈을 믿었고, 문민정부가 들어 섰음에도 민주화 진영의 분열로 인해 다시 군부 출신의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실기(失期)를 했음에도 다음 번에는 참여정부가 이어질 수 있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사는’ 문제로 선택한 보수정권이 또 얼마나 이 땅과 국민을 개·돼지 취급했었는지, 그래서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시민들의 촛불에 의해 대통령이 탄핵 당하는 모습을 광장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이런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서 국민들은 보편적 상식이 통하는 사회, 즉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사회를 계속해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앞으로 대한민국에서는 이와 같은 일반적인 가치들이 당연히 위협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의 결과를 보고서 0.7%의 차이를 만들어낸 국민들은 ‘평등, 공정, 정의’의 가치들이 현 정권에서 뭉게졌다고 생각했던지, 아니면 더 절박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던지 예상 밖의 인물을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특히나 ‘이대남’이라고 불리는 세대별·성별 계층은 유일하게 20-50대 다른 젊은 세대별·성별 계층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앞에서 진단 했듯이 우리의 보편적인 상식이라고 생각하던 ‘평등, 공정, 정의’의 가치들을 촛불 혁명으로 지지를 받았던 정권이 무시했거나 역행했다는 데에 대한 실망이 이번 선거의 결과일 수 있겠다. 아니면 이러한 보편적인 가치들이 ‘이대남’들이 처한 ‘절박한 현실’과 비교해 보자면 ‘지금 당장 먹고 죽을 빵도 없는데 꿈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다며 ‘상식’같은 이야기도 하루하루가 엄혹한 젊은이들의 현실 앞에서는 옳은 선택지가 아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일까? 당연히 ‘상식’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는, 문득 ‘내가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론대 위에서 그분의 ‘기쁨, 희망, 사랑, 위로, 용서, 평화’ 등의 보편적 가치들을 늘 입에 올리면서도, 정작 현장에서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젊은이들의 외침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라는 반성이 찾아 든 것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속에서, 그래도 하루하루 꾸역구역 살아내고 있는 청년들에게 “힘내! 희망을 가져! 모든 것이 잘 될 거야!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그이들의 절박함을 모르는 세대들의 ‘상식’은 우선순위가 아닐 것이고, 그저 꿈 같은 이야기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싶다.

 

  ‘올바르고, 정당하고, 선한 가치’들이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가 꿈꾸어야 할 미래이다. 더불어 이러한 보편적 상식들이 각자의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눈 앞의 현실과 타협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대남’들의 예처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누구보다 간절히 원하는, 그래서 ‘평등, 공정, 정의’의 가치들이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를 꿈꾸는 젊은이들을 ‘너희는 꿈도 꾸지 말라’ 며 팍팍한 현실로 등 떠밀며 소외시켜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그이들도 자신들이 지켜야 할 ‘가치’와 ‘상식’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다. 오히려 그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간절히 꿈꾸고 있어서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내는데에 그이들의 표심을 드러낸 것이리라. 그렇다. 이번 선거로 심란한 당신은 더 공부를 하고, 더 지혜를 모으고, 더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입으로만’ 강론을 했던 나 자신부터 반성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