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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개 노릇, 고양이 노릇 본문

매일의 양식

개 노릇, 고양이 노릇

해피제제 2011. 9. 15. 07:30
1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복음말씀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단상

이웃살이에서 키우고 있는 개 코세와 고양이 야옹이에게 밥을 주기 위해 다녀왔다.
삼일간의 연휴라서 하루 건너씩 동기수사님과 교대로 밥과 물을 줘야 한다.
다른 때와 달리 쉼터에 이주노동자들이 들지 않아 따로 시간을 내야 했다.
그래도 하루는 건너 뛰어야 했기에 두 녀석에게는 미안할 따름이다.
신부님 말씀처럼 이웃살이에서 '개 노릇', '고양이 노릇' 하기 힘들다.  

개 코세는 역시나 받아둔 물을 엎지르고 개줄은 칭 칭 울타리에 감겨 오도가도 못한다.
어찌나 짖어댔는지 멍 멍 대는 목소리가 쉰 소리가 날 정도다.
물을 떠다 주니 고개를 아예 들지도 않고 물 먹는데 정신이 없다.
준비해 간 뼛조각을 수북히 안겨주니 역시나 쳐다도 안 보고 먹기에 바쁘다.

코세와 달리 야옹이는 사무실 안에서 키우고 있다.
새끼 고양이를 밖에서 키우면 곧 죽는다는 동기 수사님의 엄살에 사무실에서 키우고 있다.
문을 열기 위해 인기척을 내니 벌써부터 문 앞에서 난리도 아니다.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들이치는 야릇한 냄새에 얼굴이 잔뜩 찡그려진다.
온 사무실 안이 숫제 고양이 배변 냄새 투성이다.

들어서자마자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공기 정화기를 틀어 댄다.
코세처럼 배 고프다고 앵앵대는 녀석은 눈에 차지도 않는다.
우선 급한 게 내 코의 고달픔이니 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녀석이고 뭐고 안중에도 없다.

온 창문을 열고나니 한결 냄새가 가신다.
그제서야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는 녀석에게 시선을 주고 박하게 물을 떠준다.
이리저리 고양이 사료를 한참이나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다. 아마도 다 떨어진 듯싶다.
또 애꿎은 고양이 아빠, 동기수사님을 타박해 본다. 
그리고 코세 사료를 한 움큼 떠서 역시 박하게 던져준다.
가르릉 대며 허겁지겁 먹는 폼이 배가 고프긴 고팠나싶다.
 
한참이나 우쭐하며 먹는 폼을 보고 있다가 이상함이 올라왔다.
야옹이 변기에 배변이 없는 것이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배변을 보지 않았을리가 없는데...
순간 내 비상한 코는 여전히 자욱히 남아 있는 녀석의 뒷간 흔적을 찾는다.
신부님 방과 강의실은 문이 닫혀 있다.
녀석이 살고 있는 자료실과 유일하게 문이 열린 화장실 그리고 사무실이 유일하다.
그렇담 이 지독한 냄새는 이 세 곳에서 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사무실 바닦을 훓어 보고 비스듬이 열려있는 화장실을 열어 보았다.
그리고 냄새의 진원지를 확인하고 문을 잠고 나갈 때까지 다시는 화장실 문을 열지 않았다.
잠을 자도 될 만큼 깨끗한 이웃살이 화장실에 아주 난리굿판을 해놨다.
여기저기 세 곳씩에다가 실례를 해 두고 그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도저히 사람이라면 이러지 못한다.

맞다! 동기수사님은 저 녀석을 사람처럼 대한다.
시도때도 없이 말도 걸고, 품에 안기도 하고, 목에 목도리처럼 걸쳐 두기도 한다.
매일 뽀뽀를 해대는 폼에 사무실 스텝들은 '아, 제발~~'하며 비명을 질러댄다.      
그렇게 '사람'인 줄 알았더니 오늘 사람이 아님을 확인하면서 나역시 비명을 지른다. 

야옹이의 똥을 매일같이 치워주고 안아주고 뽀뽀를 할만큼 나는 그녀석을 사랑하지 않는다.
가끔씩 한 두번, 하는 짓이 귀여워 놀아주기는 한다.(동기수사님 표현은 '그만 괴롭혀' 지만...)
딱 그만큼이다. 나도 사무실의 신부님도 다른 스텝들도....

야옹이가 사무실을 어지럽히고 사랑하는 화초잎을 다 뜯어 먹을 때마다 내게 한 소리를 듣는다.
뭐 야옹이에게 투덜대는 거지만 그 아빠인 동기수사님이 항상 움찔움찔댄다.
야옹이가 큰 눈을 깜빡이며 귀여운 몸짓으로 다가올 때와는 달리
불쾌함을 불러일으키는 행동마저도 귀여움으로 여겨지기에는 내게는 요원한 일이다.

딱 내가 좋아할 만큼만 그이를 좋아해 주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녀석을 키우자고 동의했을 때에는 이런 불쾌한 상황까지도 감수해야 함을 
녀석의 귀여운 몸짓에, 커다란 눈망울에, 가릉가릉 소리에 잊고 말았다.   
그리고 녀석이 커 갈수록 늘어나는 말썽에 냄새에 어지러움에 고양이 아빠를 제외한
전 스텝들이 온통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공동체에 돌아와서 이런 녀석의 행패를,
또 나의 무책임함과 여유없는 미안함을 동기수사님과 나눈다. 

동시에 내 상황과 다른 스텝들의 상황이 다르지 않음을
그래서 모두가 그것을 감수할 만큼 사랑하고 있지 않음에
다른 방법을 물색해 봐야 할 것임을 권한다.


동물을 키운다는 것, 한 사람을 대해야 하는 것처럼 많은 책임과 인내가 필요하다.
녀석들의 입장에서는 '개 노릇, 고양이 노릇' 쉽지 않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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