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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존경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본문

매일의 양식

존경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해피제제 2011. 9. 17. 08:00
1독서

사랑하는 그대여....


복음말씀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 비유의 뜻을 묻자,
예수님게서 이르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유로만 말하였으니,
'저들이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 비유의 뜻은 이러하다. 씨는...."


단상

예수회원이 동료 예수회원에게 존경 받기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많은 회원들이 자기 영역에서 한 가락 하는 폼새라 그럴만도 하다.
대중 강연으로 인기가 있는 모 신부님도 공동체에서는 한 사람의 구성원일 뿐이다.
그분의 기도가 딱히 다른 분들의 기도하는 모습과 다를 것도 없고
그분의 공동체 생활이 서로 각자의 영역에서 해야하는 책임과 배려에 다름이 없다.
그렇다 보니 영적인 투쟁에서나 살아가는 모습에서나 서로를 격려해야 할 형제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맹목적인 존경 받기는 하늘의 별따기임에 틀림 없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형제와 함께 살며 그이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되면서
그이의 인간적인 모습들에 '아, 이이도 나랑 별반 다르지 않은 인간이구나' 하게 된다.

그렇지만 대중에게서 무한한 존경을 받는 선배 회원들도 있고,
그저 인간적인 향내로 바라만 보아도 흐믓한 분들도 계시다.
제 잘난 맛에 수도 생활하고 있는 아직 덜 여믄 수사님들도 
각자의 달란트는 또 선배들과 다르게 한창 담금질에 바쁘다. 
주위에 수행이 깊은 선배님들이나 수행의 삶이 얕지만 또 그렇게 떡잎부터 남다른
이러한 뜻과 또다른 '인간적으로' 존경할 만한 이들이 많다는 것은 내 복의 다름 아니다.


신학을 나서기 위한 동기 수사님에 대한 '내신서'를 작성하면서 가슴을 친 일이 있다.
A4 4장 분량의 수사님에 대한 평가서에는 살 떨리는 날카로움으로 가득하다.
진즉에 타인에 대한 '감정은 감정이고, 사실은 사실이다'라는 기준이 몸에 배인 터에
사람에 대한 좋은 감정과 그 사람을 대하는 객관적인 사실들에는 늘 단호한 모습이다.
그런데 동기 수사님에 대한 신학을 나서기 위한 내신서에는 참으로 냉정한 평가들에
읽어 내려가는 내내 내가 이렇게 쌀쌀맞은 사람이었나 못내 속이 상했다.
이럴 때 나를 보면 신학원 시절의 별명 '철인 28호'라는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러내릴 것 같지 않은 그 표현이 무색할 지경이다. 


예수회에서는 다음 단계를 위한 내신서를 꼭 바로 옆에서 지켜 본 형제들이 작성케 한다.
그리고 그것을 한 사람의 평가에 의지하지 않는다. 최소 4명이상 그이에 대해 쓰게 한다.
내 공동체 원장, 같이 사는 형제, 아마도 후배 중 한 명, 선배 중 또 한명 그리고 영적지도 신부 등..

이렇게 복수로 평가를 하게 하면 공동체 생활 면에서나 영적인 흐름 그리고 그이의 미래 사도직 등
평가 받는 이에 대한 공통적인 장,단점들이 한데로 모아진다.
때로는 주관적인 평가들도 포함되지만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발견되는 공통적인 것들이 모아지는 거라

그런 것은 진짜다. 그 모습은 내가 아니라고 해도, 부정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내 모습인 거다.

또 한 가지 재미난 것은,
평가를 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심성이 그 안에 들어 간다는 것이다.
이 평가하는 사람이 어떤 시선으로 그 평가 받는 이를 바라보고 있고,
또 어떤 기준을 적용하는지 명백하게 드러난다. 

내가 심난했던 이유는 내신서를 읽어 내려가면서 그 안에 들어 있던 내 냉정한 시선 때문이다.
'장점은 이러저러하고 다른 이들도 썼을 테고 그래서 더 잘 알고 계실테니
저는 좀더 냉정한 이 사람에 대한 약한 점, 단점,
개선할 점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라는 투다.

결국 연 이어 살벌한 평가는 내가 썼지만 저절로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든다.
그리고 또 그게 미안해서 좀 덜 냉정하게 완곡어법으로 고쳐 넣기도 하지만
또 그게 나답지 않아 보여서 이것마저도 우울한 날이다. 


얼만 전 수사님들의 모임에서 다른 수사님의 나눔이 인상 깊었다.
기숙사에서 실습을 하고 있는 동기 수사님인데
처음에는 350명이나 되는 기숙사 학생들이 그저 내가 관리해야 하는 '사생'들로만 보였단다.
그런데 이이들과 관계를 맺고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속 정을 가득 나누게 되면서
한 사람 두 사람 가슴에 들어와 박히더니
어느 사이 자신이 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 듯'한 기분이란다.
그래서 그 아이들을 바라보던 시선이 연민에, 사랑에, 안쓰러움에, 또 기쁨과 즐거움에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날들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단다.
(이 말을 할 때 수사님의 얼굴에서는 빛이 나더이다) 

수도자의 삶을 선택하면서 평생 부모된 마음을 알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기숙사 사감이라는 실습 덕분에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는 감명 깊은 나눔에
어느 사이 동기 수사님이 무척 자란(?) 느낌이다.
'저 수사님은 또 저렇게 성장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에 내가 다 대견할 정도였다.

이래저래 며칠 동안 내 날카로운 시선들에 머물게 되고,
부쩍부쩍 성장해 가는 동기 수사님들도 보게 되고,
이 아침 그런 것들이 올라오는 마음에 이렇게 두서없이 끄적끄적 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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