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그리움'도 일고... 본문
죠치대학교에서 공부 중인 다양한 국적의 수도성직자들
무사히 두 번째 세미나 발표가 끝나고 동시에 터지는 안도의 한숨에 이어
오늘은 좀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맑았던 하늘이더니 새카맣게 구름에, 어느사이 비가 주룩주룩,
어쩔까 망설이다가 그냥 도서관으로 왔습니다.
오늘은 책 읽는 것은 그만하고(쑤~운 교과서만 붙잡고 씨름하고 있답니다)
마음을 돌아 보는 작업을 좀 해야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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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좌충우돌 글쓰기도 공부에 쫓겨 그만 두었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게 몇년간을 매일같이, 별 내용도 없는 제 마음대로 잡글이지만
그래도 그 여백 위에 마음을 수놓고, 하느님의 뜻을 찾아 바지런을 떨었는데
지 살겠다고 내일도, 오늘도, 어제도 한 손엔 교과서, 한 손엔 사전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취월장 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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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주어,동사, 과거와 현재를 바꿔가며 앞 뒤 구분 없는 대화는
비싼 돈 들여서 애꿎게 공부했건만 도로 그대로,
억장이란거, 그거 여러번 무너졌습니다.
분명히 제대로 다 배웠던 발표 문장도
원고를 든 손이 바들대면 그때부터 하얗게 도로아마타불,
겨우 읽어 내려가는 수준이면서도 마지막에는 얼굴도 두껍게
'질문이 있으신 분은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며 또 생긋거립니다.
지 버릇 남 못 준다고 딴 나라에서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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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나라 말로, 그것도 1년 남짓 배워서 대학원 수업을 듣는 다는 것,
솔직히 반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한국에서 4년간 신학 공부한 것의 연장선상에 있기에
지금 뭔 소리여? 정도는 파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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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그게 답니다.
물론 나머지는 눈치코치, '이해했습니까?' 물으면 '그냥 배시시 웃지요.'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전 이 속담이 너무 좋습니다.
여기 일본에서도 너무 너무 잘 통하는 만국공통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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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가 있기 전부터 며칠간을 준비해서 발표문을 작성하면,
옆 방의 츠노다상(저와 수도회 입회년도가 같은 친구랍니다)에게 서둘러 수정을 부탁합니다.
컴퓨터와 사전 자판이 닳도록 일주일을 꼭 꼭 눌러제낀 발표문입니다.
눈밑에 다크써클이 생기고 얼굴은 하얀 붓기에 푸석푸석한 몰골의 산고(?)입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이는 다음날 바로 수정해서 되돌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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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살짝 약도 올랐습니다.
하지만 몇번 그런 과정을 거치니 감지덕지할 뿐입니다.
어쩝니까? 그이는 태어나면서 일본사람, 저는 초등학교 3-4학년 수준이라는데...
발표 20분을 위해, 얄밉게 웃고 있는 차례차례 발표문에 매일 이렇게 고군분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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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페북에서 저보다 앞서 여러나라에서 고군분투 중인 선배 예수회원들의 '아우성'을 듣습니다.
아침에도 로마에서 공부 중인 신부님의 하소연이 올라왔더랬습니다.
'겨우 논문 제출했다', 나머지는 '나도 모르겠다. 배째라' 라고.....
피식, 담겨진 그 마음에 미소가 지어지면서 그 고단함을 이제 겨우 알아듣기에
'심님 추카추카, 전 이제부터 시작인디...^^' 라며 댓글을 달아두고
마시마로를 닮은(마시마로가 심님을 닮았는지도...) 심님을 위해 화살기도를 올려둡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또 그렇게 고군분투 힘내 봅시다요. 라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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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올라와 았는 고국의 이곳저곳 소식들을 듣게 되면,
'저곳에서 창밖 햇빛 한가득 받으며 커피 한 잔 하고 싶다' 던가
'눈 길 닿는대로 발 길 향하는대로 지긋이 걸어 보고 싶다' 든가
'비가 와도 좋다. 바람이 불면 어때. 그냥 저곳이면 돼' 라고 꿈인양 꾸어 봅니다.
예전에 다녔던 이곳저곳이 터무니없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1년하고도 두 달째를 살고 있는 지금에사, 너무 이른 그리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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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사람이 그리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려 먹는 처지가 아니니 음식은 더더욱 축에도 못끼고,
말이 모자란다 하여 한국말이 고픈 것도 아닌데
그냥 '한번 걸어보고 싶다. 저곳이면 좋겠다'로 잔잔히 올라오는 것은 웬 까닭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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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래서 '그리움'이라 이름이 붙여졌나 봅니다.
예전에 일상이었던 것들에 이렇듯 마음이 온통 가 닿는 것을 보니 더욱 그래보입니다.
매일 얼굴 마주하던 친구들, 매일 걷던 거리들, 매일 올려다 보던 하늘, 그 안에서 맞던 비까지도....
요즘은 살랑 눈에 닿는 모든 것이 '그리움'일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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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이 잊지 않고 소식을 전해 오는 벗들이 있지만
그마저도 제 게으름으로 짧은 답장도 못하고 있습니다.
온통 세미나에, 발표문에 눈 침침해 가며 매달려 있는 터에
어느새 마음의 여유마저 잃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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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히 성당에 나 앉아 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내용이 온통 일본어로 뒤죽박죽일 때가 많습니다.
거기서도 혼자 웅얼중얼 일본어로 세미나 발표를 하고 있으니 말 다했지요.
그게 아니면 반 수면 상태이던지 말입니다.
이렇다보니 기도가 점 점 메말러갑니다.
급기야는 이스라엘의 사막의 이미지가 기도에 따라 들어옵니다.
아, 이 건조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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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그 물기없는 푸석푸석함에서 제 영혼의 상태를 진단해 봅니다.
이제 서서히 '푸른 물가'로 발길을 돌려 보아야 할까 봅니다.
너무 오래 '광야'에 퍼질러 있으면 그것 마저도 즐거움으로 삼을 모양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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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몇년간 계속될테고, 세미나는 첩첩이 쌓여져 있고, 딴나라 말은 쉬 늘 기세가 없으니
아무래도 이런 마음까지도 내려 놓아야 할까 봅니다.
올라 올 때마다 몇번이고 내려 놓기를 반복했건만 도로 제자리니 속상키도 하지만
어쩝니까. 내일도 모레도 또 똑같이 올려 두고 다독여 볼일입니다.
'그리움'도 불러 내고, '조급함'도 달래가면서
요즘음 삐죽대며 올라오는 것들에 마음을 쏟아 보자고 괜히 그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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