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나를 필요로 하는 이 본문
1독서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복음말씀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단상
요즘 계속해서 떠나가신 아버지를 향해 생각이 가 닿는다.
가족들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에서 한결같은 것이 있으니
바로 아버지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던 분이시라는 것이다.
할머니에게는 여섯 자녀들이 있었는데
고모와 삼촌들은 정말이지 번듯한 아들, 딸들이었다.
그 옛날 기준으로 모두가 착해서 부모님을 속 썩이는 일 없이
스스로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했을 뿐만아니라
대학 동안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집 안에 손 벌리는 일이 없었다.
가난한 시골에서 자랐지만 저마다 자기 짝을 만나 지금껏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다.
반면에,
아버지께서는 늘 집안의 '애물단지'였다.
시골 말로 온갖 말짓은 아버지께서 다 저질러 놓았으며
모든 가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랐다.
또 그 옛날 시골분처럼 아들만 좋아하시는 할머니는
당신의 업인양 그 모든 뒷처리를 깔끔히 처리하곤 하셨다.
고모들과 친척들의 뒷 이야기는 이런 할머니의 과보호가
아버지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내시기도 하였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서도 할머니는 하나 남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정말이지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셨다.
내가 보기에도 병석에 계신 아버지가 싸운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할머니께서 당신 아들을 위해 고군분투하시는 모습이란...
전부터 느끼고 있던 것이지만
할머니에게는 아버지가 삶의 목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입버릇처럼 "네 아빠 죽으면 나도 따라 죽는다"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동안의 당신 삶을 바라보건데 정말이지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싶다.
다른 가족들에게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할머니의 '집념'이지만
그분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족해 보이는 아들이
바로 '삶의 목적'이자 당신의 도움을 온전히 필요로하는 이다.
다른 다섯 자녀들은 할머니의 손길이 필요치 않는 훌륭한 아들, 딸일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첫째 아들만은 당신의 손과 땀을 필요로 하는
당신 삶의 존재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의미의 '훌륭한' 아들이다.
1독서의 그 말씀처럼
다들 제 잘났다고(?) 살아가는 이 땅의 삶에서
하느님 당신 손길이 필요한 가난한 이, 아픈 이, 감옥에 갇힌 이, 고통 받는 이들은
모두가 그분의 도움을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이들이다.
언젠가 내가 진심으로 나의 약함을 고백하게 될 때
그리하여 그분의 손길에 나를 온전히 내 맡기게 될 때
그때서야 비로소 하느님의 돌보심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언제나 망망한 이 세상에서
할머니의 돌보심을 알고 있었던 아버지께서는
살아 계시던 동안 할머니만은 또 그렇게 지극히 섬기시지 않았는가!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복음말씀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단상
요즘 계속해서 떠나가신 아버지를 향해 생각이 가 닿는다.
가족들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에서 한결같은 것이 있으니
바로 아버지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던 분이시라는 것이다.
할머니에게는 여섯 자녀들이 있었는데
고모와 삼촌들은 정말이지 번듯한 아들, 딸들이었다.
그 옛날 기준으로 모두가 착해서 부모님을 속 썩이는 일 없이
스스로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했을 뿐만아니라
대학 동안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집 안에 손 벌리는 일이 없었다.
가난한 시골에서 자랐지만 저마다 자기 짝을 만나 지금껏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다.
반면에,
아버지께서는 늘 집안의 '애물단지'였다.
시골 말로 온갖 말짓은 아버지께서 다 저질러 놓았으며
모든 가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랐다.
또 그 옛날 시골분처럼 아들만 좋아하시는 할머니는
당신의 업인양 그 모든 뒷처리를 깔끔히 처리하곤 하셨다.
고모들과 친척들의 뒷 이야기는 이런 할머니의 과보호가
아버지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내시기도 하였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서도 할머니는 하나 남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정말이지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셨다.
내가 보기에도 병석에 계신 아버지가 싸운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할머니께서 당신 아들을 위해 고군분투하시는 모습이란...
전부터 느끼고 있던 것이지만
할머니에게는 아버지가 삶의 목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입버릇처럼 "네 아빠 죽으면 나도 따라 죽는다"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동안의 당신 삶을 바라보건데 정말이지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싶다.
다른 가족들에게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할머니의 '집념'이지만
그분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족해 보이는 아들이
바로 '삶의 목적'이자 당신의 도움을 온전히 필요로하는 이다.
다른 다섯 자녀들은 할머니의 손길이 필요치 않는 훌륭한 아들, 딸일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첫째 아들만은 당신의 손과 땀을 필요로 하는
당신 삶의 존재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의미의 '훌륭한' 아들이다.
1독서의 그 말씀처럼
다들 제 잘났다고(?) 살아가는 이 땅의 삶에서
하느님 당신 손길이 필요한 가난한 이, 아픈 이, 감옥에 갇힌 이, 고통 받는 이들은
모두가 그분의 도움을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이들이다.
언젠가 내가 진심으로 나의 약함을 고백하게 될 때
그리하여 그분의 손길에 나를 온전히 내 맡기게 될 때
그때서야 비로소 하느님의 돌보심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언제나 망망한 이 세상에서
할머니의 돌보심을 알고 있었던 아버지께서는
살아 계시던 동안 할머니만은 또 그렇게 지극히 섬기시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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