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무한한 신뢰와 사랑 본문
1독서
“주님, 당신 백성에게 동정을 베풀어 주십시오.
당신의 소유를 우셋거리로, 민족들에게 이야깃거리로 넘기지 마십시오.
민족들이 서로 ‘저들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말해서야 어찌 되겠습니까?”
… 주님께서는 당신 땅에 열정을 품으시고 당신 백성을 불쌍히 여기셨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복음말씀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단상
신학원이 좋은 이유 중 하나가 언제든 고요히 머물 수 있는 성당이 있다는 것이다.
주택가 한 복판이기에 낮에는 확성기 소리에 ‘영광 굴비’를 팔기도 하고,
‘고장난 컴퓨터 및 가전제품’ 산다는 차량도 있어서 난리도 아니지만
이 새벽녘과는 또다른 일상의 고요함이 있기에
잠깐 다른 길로 샛다가도 다시 돌아가는 부름쯤으로 여기면 된다.
어제 저녁 날짜로 수련원에서 갓 서원한 수사님들이 신학원으로 복귀(?)했다.
연피정 중이라 아랫집 수련원에서의 서원식에 참석을 못했다는 미안함을
축하와 함께 집에는 잘 다녀왔는지, 부모님들은 어떠신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서원식이 끝나고 며칠 동안 신학원에 머물렀다가
4박 5일 일정으로 2년만의 본가 방문을 끝내고 오는 길이라선지
다들 가벼운 홍조가 머물러 있다.
방문 일정이 충분했는지 물었더니 조금은 아쉬운 감은 있지만
그래도 좋았다며 짧은 해후에 본당 신부님이며 친척, 친구들에게 여기저기 인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자랑이다.
그러고 보니 해가 가면 갈수록 본가에 방문하게 될 때면 조금씩 어색감이 묻어나는 것이
점차 내 집이 아니라는 느낌이다.
부모님이 모두 하늘로 ‘이사’를 떠나시고
달랑 할머니만 새로 이사한 전주 집에 계신다.
바로 앞 동에 고모님이 살고 계시고 근처에 누님이 있지만
그 집에서는 한 끼 식사면 충분하다.
어딘지 내 집이 아니라는 느낌에 오래 머물기가 불편하다.
가족들은 성심껏 대하는 것으로 보아 그건 순전히 내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하룻밤도 머물지 않고 그냥 돌아오는 나를 보고
올해 연세가 95세가 되신 할머니도 손자 걱정에 고모들에게 다짐을 받아 둔다.
‘형욱이 잘 돌보라’며 당신께서 ‘이사’를 떠나시면 오갈 데가 없게 되니
그렇게라도 전주고모, 서울고모에게 거듭 손자를 부탁하신다.
두 분 고모와 고모부가 언제든 환영을 해 주시니 마음은 충분히 알아듣게 되면서도
이 내가 불편함을 느끼니 본가 방문을 할 때면 사흘이면 충분하다.
성격 까칠한 나만 그러나 싶어 동기 수사님들에게 물었더니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그렇단다.
부모님이 먼저 하늘나라로 ‘이사’ 가신 형제들이 더 그렇고,
집이 이사를 하면서 어렸을 때 부터의 ‘내 방’이 없어지면서 또 그렇단다.
이제는 죽으나 사나 수도원을 내 집 삼아 뼈를 묻어야 할 판이다.
사형대 위의 내 자식이 아무리 중한 죄를 지었어도
그게 다 나쁜 친구 혹은 잘못된 사회 구조 때문이라고 여기는 것이 부모 된 마음이다.
그런 온전한 신뢰를 받다가 이 세상에 날개 떨어진 신세가 되었으니
아무리 동기간이라지만 가족 부양으로 바쁜 동생과 사내 셋 양육으로 정신없는 누님에게
‘나 일본으로 떠나’ 해도 말 전하던 그때뿐,
‘잘 갔다 와’ 한 마디에 쿨한 건지 관심이 없는 건지....
아, 물론 서운하다는 말이 아니다.
피를 나눈 동기간이라 하더라도
부모님께 옴팡 신뢰를 받던 그것과는 아무래도 다르다는 것이겠고
이제는 그런 반응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누님과 동생도 제 자식들에게는 또 그런 온전한 사랑과 신뢰를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른 새벽 나 보다 먼저(?) 성당에 와 있는
이제 갓 서원한 거룩함 풀 풀 날리는 수사님 둘의 뒷모습을 보면서
축복을 빌어주고 고요하게 머물러 본다.
그러면서 그이들의 숨소리와 바스락 거리는 몸짓에
온열기 옆에서 어느덧 굽어 지던 허리도 곧추 세우고
또다시 그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침묵 중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
숨은 일도 보시는 주님,
저희에게 당신을 향해 부단히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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