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재수없는 저라서 감사... 본문
1독서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단식이냐?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 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 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 하고 말씀해 주시리라.
복음말씀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단상
지난 번 동기들끼리의 여행에서 얻어 들은 ‘기도’에 대한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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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우선 1) ‘믿음’이 전제 되어야 한다.
하느님의 힘을 믿지 않는다면 말짱 헛것이 되고 만다.
믿음에 대한 깊은 체험 없이 입술로만 되뇌이는 기도는 하느님도 어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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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을 우선으로 하는 현대 사회에서
‘믿음’의 체험이 가능한지는 나에게도 의문이었다.
내가 경험한 바가 있어야
내가 믿고 있는 하느님과 내 신앙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기에 그렇다.
내가 믿지 못하면서(말로 믿는 것 말고)
어떻게 깊은 울림으로 하느님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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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팔이 무던히도 아팠던 적이 있다.
며칠 째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장난이 아니다.
욱신욱신 쑤셔 오는 것이 팔을 들어 올리면 잠시 동안 통증을 잊을 수 있지만
밤새도록 만세를 부르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문득 성모님께 그리고 내가 믿고 있는 하느님께 청해 보기로 했다.
왜 한 번도 그분들에게 청원할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그것도 의문이다.
여하튼 ‘주님 제가 팔이 많이 아픕니다. 성모님 제가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주님, 제가 팔이 많이 아픕니다. 성모님, 제가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이렇게 얼마나 되풀이하여 청원기도를 드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어느새 잠이 들었고 통증이 없는 아침을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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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내 기억에 성모님과 하느님을 믿고 기도 드렸던,
그리고 내 자신을 위해 진심으로 청원을 드리고 효과(?)를 보았던 첫 체험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후에도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이 밀려 올 때면
이와 같이 청원기도를 드리면서 어느새 깊은 잠에 빠지고 만다.
때론 어찌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도 그렇다.
천진한 어린아이처럼
‘성모님, 저 아픕니다. 하느님 저 많이 힘드네요.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한다.
그러면 그분께서는 그 ‘믿음’의 기도를 당연하게 들어 주신다.
내가 늘 청원기도를 입에 달고 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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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도를 할 때는 엄살을 떨어야․피워야․부려야 한다.
연피정을 마치면서 영적 동반 신부님께서 어느 수녀님께 들려 주셨던 조언이다.
‘나를 가장 재수 없는 수녀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란다.
이 말인 즉슨, 하느님께서는 가난하고, 아프고, 불구에, 죄인과 창녀들과
고개만 숙이고 다녀야 하는 세리와 같은 ‘가장 재수 없는 이들’에게 나타나시고
그들의 청원을 들어 주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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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고 부자요, 똑똑한 이에, 가진 것 많고,
자신만을 믿고 사는 이들은 하느님이 필요치 않다.
엄마가 항상 비교하던 잘난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는 그냥 제 능력 믿고 살면 된다.
실패해 본 경험이 없는 ‘엄친아’들이기에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재수 없는 나’처럼 찌질하지도 않다.
그런 이들에게는 하느님이 들어설 수 있는 자리가 없다.
지독한 실패를 해 봐야 그때서야 주위에 찌질한 인생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내 자신이 그렇게 훌륭하거나 잘난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비로소 하느님께 자리를 내어 드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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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나를 가장 재수 없는 놈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런 찌질이들에게 하느님은 다가오신다.
마치 성경의 예수님이 세리와 창녀와 죄인들
그리고 가진 것 없고 몸 아픈 이들에게 나타나셨듯이 말이다.
그러니 자주 재수 없음을 고백하고, 아프다고 엄살을 피우고, 죽겠다고 난리를 쳐야 한다.
이렇게 자꾸 귀찮게 울먹이면 다른 사람들 눈이 무서워서라도
(도대체 기도 안 들어주시는 하느님이시라면 당신 능력이 의심 받게 되고
결국에는 신자들 다 떨어져 나갈 것 아닌가!)
언능 들어주시지 않을까.
꼭 그래주실 것이다.
그러니 엄살을 피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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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기우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 보았을 것이다.
가뭄이 들어 온 땅에 먼지만 풀 풀 날리고 있을 때
왕이 비를 내리게 하는 데 용한 재주가 있다는 사제를 찾아 갔다.
그리고 많은 희생 제물을 제공하면서 비가 내릴 수 있기를 청했다.
그런데 역시나 용하게도 사제가 몇날 며칠을 기도를 했더니 과연 비가 내렸다.
그래서 왕은 하도 신기해서 사제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비를 불러 올 수 있는 것이오?’
그러자 사제의 말이 가관이다.
‘임금님, 저의 기도는 비가 내릴 때까지 끊임없이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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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실없는 대답 같기도 하다.
그러나 또 어찌 보면 현묘하기도 하다.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가지고 진지하게 몰입하여 끊임없이 기도하게 되면
그 문제가 ‘문제가 아닌’ 것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어느덧 그 문제를 마주하고 있는 내 자신이 변화되어 있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그 변화된 마음으로 문제를 대하게 되니 해결의 실마리들을 찾게 된다.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숨이 턱 턱 막히는 삶에도
간절한 기도를 통하면 하느님께서 들려주시는 것이 있다.
그것이 마지막 기도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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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4) 귀를 기울여라.
하느님께서 들려주시는 것에 신뢰를 두고 머물게 되면
그분께서는 반드시 내가 가진 문제들의 해결책을 들려주신다(혹은 보여 주신다).
내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라.
믿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울며불며 청원 드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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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아, 이런 기도의 방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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