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다면... 본문
1독서
여푼네의 아들 칼렙: "어서 올라가 그 땅을 차지합시다.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우리는 그 백성에게로 쳐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합니다." 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자기들이 정찰한 땅에 대하여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복음말씀
가나안여인: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예수: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가나안여인: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예수: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가나안여인: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예수: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단상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봐라'
책상 벽면에 붙여둔 포스트 잇에 적혀진 글이다.
어디에서 옮겨진 글귀인지 알 수가 없지만 멍하니 쉬게 될 때면
자연스럽게 눈에 닿는 글귀다.
그 외에도 덕지덕지 붙여진 글귀들이 여럿 있지만
그것들 역시 틈이 날 때면 입 속으로 되뇌이며 마음에 새기는 글들이다.
오랜 습관처럼 자꾸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세상사에 쉽게 휩쓸려 감에 당연한 처사다.
수도회 입회 전 NGO재단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그곳에서 환경운동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 '환경대통령'이라 일컬어지는 최열씨와 함께했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환경과 생명 운동을 시작하신 분으로 1979년 '공해추방위원회'를 결성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누구보다도 먼저 미래 생태 문제를 언급하셨다.
지금에야 '환경대통령'이라며 평생을 환경과 생명을 위한 그분의 노력과 헌신을 인정하지만
'잘먹고 잘살기' 경제발전 만능 시대였던 그 어려운 시절에는 꽤 생소한 시민운동이었으리라.
최열씨가 이제 막 환경운동에 뛰어든 후배들에게 강조한 것이 두 가지가 있으니
1. '현장에 있어라' 매스미디어에서 전해지는 것들에 현혹되지 말고, 사람들의 이런저런 이야기에
혹하지 말고, 손과 발로 그리고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가슴으로 현장을 느껴보도록 할 것.
2. '10년 후, 20년 후 미래를 준비할 것', 세상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당장의 눈앞의 현실에 급급하지 말고 미래의 시선을 두고 더 큰 미래를 준비할 것.
몸은 현실에 있되, 꿈은 미래에 두고 있으라는 당부의 말이겠다.
그분과 함께 일하면서 덕분에 이곳저곳 현장을 많이도 다녔다.
또 이런저런 좋은 분들을 소개 받아 가르침도 많이 받았다.
작가의 책 10여 권을 읽는 것보다 그 작가와 1시간 이야기 하는 게 더 큰 배움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최열씨를 비롯해서 타인에게 존경을 받는 이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무엇인가 남다른 것들이 있다.
바로 현실을 긍정하고 미래에 희망을 두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매일을 기쁨과 즐거움의 에너지로 살고 그 에너지들을 다른 이들과 나누며
함께 하는 이들에게 내일에 대한 꿈을 꾸게 한다.
그 꿈은 희망으로 가득하다.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의 지시로 가나안 땅 정찰을 떠났던 열 두 부족의 사람들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다. 오직 칼렙과 여호수아만이 하느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그 안에서 좋은 것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그이들의 주장처럼 야훼가 함께하면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라는 강한 확신이 깃들어 있다.
복음말씀 역시 같은 관점으로 보게 된다. 가나안여인에게 아픈 딸에 대한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소망은 자신의 처지가 '강아지'라도 괜찮아 보인다.
딸을 낳게 할 수 있다면.....
그러나 또 그것보다도 더 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서 보게 된
'믿음'에 대한 기분 좋은 발견이다.
비록 당신이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좋은 것들을 선포하고 나누고 있지만
자신의 입에서 나왔던 것들이 타인의 입에서 '믿음'으로 고백되어지는 것을 보는 체험은
그것이 헛되지 않았음을, 잘하고(?) 있음을, 당신 자신에게도 확신을 주는 기쁨이리라.
그리고 앞으로의 여정을 향한 굳은 확신이 되리라.
희망이 없어 보이는 세상에서 희망찾기,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기쁨과 감사와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눈'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하리라.
그리고 그 '좋은 눈'은 사람과 세상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때' 가능하다.
어째 또 쳇바퀴 돈 느낌이다. ㅋㅋㅋ
여푼네의 아들 칼렙: "어서 올라가 그 땅을 차지합시다.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우리는 그 백성에게로 쳐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합니다." 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자기들이 정찰한 땅에 대하여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복음말씀
가나안여인: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예수: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가나안여인: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예수: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가나안여인: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예수: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단상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봐라'
책상 벽면에 붙여둔 포스트 잇에 적혀진 글이다.
어디에서 옮겨진 글귀인지 알 수가 없지만 멍하니 쉬게 될 때면
자연스럽게 눈에 닿는 글귀다.
그 외에도 덕지덕지 붙여진 글귀들이 여럿 있지만
그것들 역시 틈이 날 때면 입 속으로 되뇌이며 마음에 새기는 글들이다.
오랜 습관처럼 자꾸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세상사에 쉽게 휩쓸려 감에 당연한 처사다.
수도회 입회 전 NGO재단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그곳에서 환경운동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 '환경대통령'이라 일컬어지는 최열씨와 함께했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환경과 생명 운동을 시작하신 분으로 1979년 '공해추방위원회'를 결성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누구보다도 먼저 미래 생태 문제를 언급하셨다.
지금에야 '환경대통령'이라며 평생을 환경과 생명을 위한 그분의 노력과 헌신을 인정하지만
'잘먹고 잘살기' 경제발전 만능 시대였던 그 어려운 시절에는 꽤 생소한 시민운동이었으리라.
최열씨가 이제 막 환경운동에 뛰어든 후배들에게 강조한 것이 두 가지가 있으니
1. '현장에 있어라' 매스미디어에서 전해지는 것들에 현혹되지 말고, 사람들의 이런저런 이야기에
혹하지 말고, 손과 발로 그리고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가슴으로 현장을 느껴보도록 할 것.
2. '10년 후, 20년 후 미래를 준비할 것', 세상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당장의 눈앞의 현실에 급급하지 말고 미래의 시선을 두고 더 큰 미래를 준비할 것.
몸은 현실에 있되, 꿈은 미래에 두고 있으라는 당부의 말이겠다.
그분과 함께 일하면서 덕분에 이곳저곳 현장을 많이도 다녔다.
또 이런저런 좋은 분들을 소개 받아 가르침도 많이 받았다.
작가의 책 10여 권을 읽는 것보다 그 작가와 1시간 이야기 하는 게 더 큰 배움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최열씨를 비롯해서 타인에게 존경을 받는 이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무엇인가 남다른 것들이 있다.
바로 현실을 긍정하고 미래에 희망을 두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매일을 기쁨과 즐거움의 에너지로 살고 그 에너지들을 다른 이들과 나누며
함께 하는 이들에게 내일에 대한 꿈을 꾸게 한다.
그 꿈은 희망으로 가득하다.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의 지시로 가나안 땅 정찰을 떠났던 열 두 부족의 사람들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다. 오직 칼렙과 여호수아만이 하느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그 안에서 좋은 것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그이들의 주장처럼 야훼가 함께하면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라는 강한 확신이 깃들어 있다.
복음말씀 역시 같은 관점으로 보게 된다. 가나안여인에게 아픈 딸에 대한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소망은 자신의 처지가 '강아지'라도 괜찮아 보인다.
딸을 낳게 할 수 있다면.....
그러나 또 그것보다도 더 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서 보게 된
'믿음'에 대한 기분 좋은 발견이다.
비록 당신이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좋은 것들을 선포하고 나누고 있지만
자신의 입에서 나왔던 것들이 타인의 입에서 '믿음'으로 고백되어지는 것을 보는 체험은
그것이 헛되지 않았음을, 잘하고(?) 있음을, 당신 자신에게도 확신을 주는 기쁨이리라.
그리고 앞으로의 여정을 향한 굳은 확신이 되리라.
희망이 없어 보이는 세상에서 희망찾기,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기쁨과 감사와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눈'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하리라.
그리고 그 '좋은 눈'은 사람과 세상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때' 가능하다.
어째 또 쳇바퀴 돈 느낌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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