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할머니와 손자 본문

매일의 양식

할머니와 손자

해피제제 2011. 7. 31. 08:09
1독서

너희는 어찌하여 양식도 못 되는 것에 돈을 쓰고,
배불리지도 못하는 것에 수고를 들이느냐?
들어라, 내 말을 들어라.
너희가 좋은 것을 먹고 기름진 음식을 즐기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오너라.
들어라. 너희가 살리라.


2독서

형제 여러분,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낮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복음말씀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단상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2주 전에 이사를 했다.
평생 삶의 터전을 옮기신 터라 문밖 출입도 못한다며
'감옥소'가 따로 없다며 투정이시다.

이사한 곳이 최신식 아파트라 현관 출입부터 쉽지가 않다.
호수를 누르고 다음에 비밀번호를 눌러야 출입이 가능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6층, 또 비밀번호를 눌러야 한다.
가만히 지켜보니 노인네들이 이용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우스개 소리로 요즘의 아파트가 이렇게 출입하기 어렵게 만드는 이유가
시골 부모님들이 찾아 오지 말라는 무언의 거절이라나 어쩐다나...
여하튼 90이 넘으신 노인에게는 무엇하나 쉽지 않은 아파트 생활이다.

전에는 아버지가 곁에 계셔서 이것저것 할머니가 아쉬움이 없었는데
전주로 이사를 하면서 큰 딸(고모)에게 여간 미안해 하시지 않는다.
노인네가 혼자 살기가 그러해서 고모님 댁 옆 동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아침, 저녁으로 찾아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어지간한 성격들이라 모녀간에 신경전이 대단하다.

고집이 이만저만한 분들이 아닌지라 할머니 댁에 들어서자마자
할머니는 나를 붙잡고 자정이 넘도록 아파트 생활의 힘겨움을 토로한다.
다음날 아침은 고모님이 또 그렇게 나를 붙잡고 놓아 주시지 않는다.
우리 집안에서는 나와 할머니가 판박이라고 그러는데
큰 고모님도 한 성격 하시는 것을 보면 그 어머니에 그 딸이다.

오전에 할머니랑 안과엘 다녀왔다.
30년을 '이리 역전 김 안과'에 다니시다가 전주로 이사를 가게 됐다며
전주 '모래네 시장' 근처의 모모 안과를 소개 받았다.
그래서 하늘이 두쪽나도 꼭 그곳으로 가야한단다.

실갱이 끝에 아파트 앞 '눈이 편안한 안과'를 찾아갔다.
기다리시는 내내 투덜댄다.
이유는 노인네라고 무시한다며 '모래네'로 원장님이 소개해 준 곳으로 가야 한단다.
어르고 달래서 겨우 진찰을 받게 하고 딱히 병이 있는 게 아니라
눈약 두개와 눈 주위에 바르는 연고 하나 그리고 눈 영양제를 받고 들고 나서야
이 병원이 '모래네' 안과만큼 유명한 곳으로 할머니에게 인식 되었다.
그 이유라는 게, 이리 역전 김 안과에서 받아 든 약과 꼭 같다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말이다.
나도 음식이나 의복에 있어서 맨날 다니던 곳으로만 다니는 한 보수적이기도 하지만
할머니 역시 그렇다. 누가 그 할머니에 그 손자 아니랄까봐....

새 집이라 이런저런 곳을 손을 보고, 같이 산책도 하고, 티격태격 한 바탕 말싸움도 하면서
간만에 손주 노릇 하고 왔다. 세월이 흐를수록 어린아이가 되어 가는 할머니를 보면서
안쓰럽기도 하고, 또 그렇게 정정하신 모습에 다행이기도 하다.

친구도 새로 사귀어야 하고, 성당가는 길도 새로 익혀야 하고
아파트 입출입도 새로 배워야 한다.
평생을 살아온 곳을 떠나 모든 것을 새로 익혀야 하는 거라
여간 고생이 아닐텐데 내 할머니답게 또 그렇게 씩씩하게 살아 내시는 모습이
마음이 짠하다.
모든 것이 새로운 날들 하느님의 자비를 청해 본다.






'매일의 양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  (1) 2011.08.02
"좋네요!!"  (1) 2011.08.01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3) 2011.07.29
옛것과 새것  (0) 2011.07.28
늙어가는 예수회원의 기도  (0) 2011.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