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손발이 오그라드는 체험 본문
1독서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였다.
2독서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복음말씀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단상
수도회에서 수련을 받던 시절에 첫 실습지로 담양에 있는 양로원으로 파견 받았다.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 수녀원에서 무의탁 어르신들을 섬기고 있는 곳이다.
양로원 입소 연령이 70세 이상이니 그때 내가 만났던 어르신들은 모두
내게는 할아버지, 할머니뻘이었다.
어르신들은 이제 막 초짜 수사에게 당신들의 사랑을 퍼부어 주셨다.
수도회 입회 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수련원 밖 외출이라
또 외부인과 함께 하는 생활이라 나 역시도 온통 사랑에 정신이 없었다.
이 방 저 방 그분들이 잡아끄는 대로 열심히 찾아 다녔다.
그러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꼭 꼭 숨겨두신 간식
쥐포며 빨간 홍시감, 달달한 사탕에 초콜렛까지 염치없이 많이도 얻어먹었다.
마치 어르신들의 손주를 대하듯이
“애기수사님, 애기수사님”하며 얼마나 귀여워 해 주시던지...
그러고보니 그때 첫 실습을 함께 나갔던 동기 수사님도
지금 ‘이웃살이’에서 함께 사도직을 하고 있는 김민 수사님이다.
이 인연 길기도 하다.
아무튼 그런 사랑을 받았던 내가 유독 ‘손발이 오그라드는’ 때가 있었으니,
바로 그분들이 나를 마주할 때마다 허리를 접어 인사를 건네 오는 모습이다.
한참이나 나이 어린 수사에게 어르신들은 정말이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신다.
손을 가지런히 모아서 다가오실 뿐만 아니라
눈빛이며 어감에서까지 이 어르신들이 나를 대하는 모습은 ‘진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얼굴이 붉어져 손사래를 해대며 어른들을 만류한다.
그렇다고 또 그만두실 어르신들이 아니었기에
결국에는 나도 허리를 더 낮추어 인사로 해야만 했다.
어찌 이 ‘공손함’ 앞에서 허리 꼿꼿이 세우고 인사를 받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우쭐함’이 무엇인지 경험했다.
한동안 ‘내가 마치 뭐라도 되는 냥’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수도자인 ‘척’ 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면서
‘정말이지 한 순간이구나!’라는 위기감도 느꼈다.
내 안에 언제나 기회만 엿보고 있는 허영심이 그 숨은 주범이다.
그러면서도 다행스러운 것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정직한 내 반응 덕분에
화들짝 꿈에서 깨어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수도생활 할 수 있도록
그 지표를 확인하는 ‘알람’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경고음’들도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이,
날이 갈수록 그 성능이 떨어지는 게 조만간 어떤 특단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내 ‘허영심’을 더 잘 느낄 수 있는 체험이 필요한 듯싶다.
사순시기 첫 주일 복음말씀에서
사탄이 예수님에게 돌을 빵으로 만들어 보라는 ‘신통방통한 기적’,
천사가 받쳐 줄 거라는 ‘신적지위’ 부여,
세상의 나라를 다 주겠다는 ‘니 본성이 요구하는 대로 살라’는 요구는
이제 막 요르단 강가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이’라며
하느님의 은총을 입은 예수님에게서 슬며시 올라올 수 있는 ‘허영심’,
그것을 사탄이 기가 막히게 이용하는 모습을 엿보게 된다.
만약 예수님의 시선이 하느님께 닿아 있지 않았다면
그 유혹 털어 내는데 쉽지 않았으리라.
수도자라는 ‘옷’ 때문에 본의 아니게 받아 누리는 게 많다.
그것은 예수님과 그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선배 수도자
그리고 2000년을 한결같이 신앙을 지켜온 이름 모를 그리스도인들의
‘본’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하기에 단지 수도자라는 이유만으로도
존경을 담아 인사를 건네주시는 분들 앞에게 내 마음과 몸이 계속해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수도자이기를 하느님께 청해 본다.
'매일의 양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씨앗' 없는 열매 (0) | 2011.03.15 |
---|---|
가장 작은 이 (0) | 2011.03.14 |
"행복하니?" (0) | 2011.03.12 |
내가 선택한 죽음과 생명 (0) | 2011.03.02 |
버리지 말아야 할 것 (0) | 2011.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