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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시험날 본문

매일의 양식

시험날

해피제제 2013. 5. 27. 21:10

 

아침 기도 시간, 누군가 '딱' 하고 미등 스위치를 켠다.
평소 보다 유난히 큰 소리라 퍼뜩 기도에서 깨어난다.
'誰?'

아마 이 시간 쯤이면 '그'임에 틀림없다.
이른 시간 '그' 아니면 '내'가 이 자리에 머물곤 하니 말이다.
...
한 번 몸에 맞추고 나면 죽었다 깨어나도 쭈~욱 그대로다.
이렇게 저렇게 몸에 맞추고 몸에 익어버린 시간인지라 쉽게 변할리 없다.
이런 류의 사람이 나뿐일까
그러고보니 이 아침 '딱' 하고 스위치를 밝힌 '그'도 나랑 동류임에 분명해 보인다.
항상 같은 시간, 같은 자리, 같은 호흡으로 머물다 간다.

아니다.
오늘 아침은 조금은 가파른 호흡이다.
평소와 다른 큰 미등 스위치 켜는 소리가 그렇고,
더 짧게 머물다 간 시간이 그러하며,
마지막 떠나면서 웬지 거슬리는 또 한 번의 '딱' 하는 소리가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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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れ何だろう'

난데없이 내팽겨쳐진 '나'는 이른 아침 성당이라는 것도 잊은 채
무례하게 떠나버린 '그'에게 온 신경이 매어 버린다.

'그'를 다시 만난 건 대학원 면접장에서다.
매일 얼굴을 맞대며 '마루마루 さん'으로 부르며 형제애로 대하던 그를,
처음으로 다른 장소에서,
그것도 '그'는 학생을 면접하는 '교수'로,
'나'는 시험을 치르는 '학생'으로 마주 앉은 채다.

모두와 안면이 있는 중에서 또 '그'가 첫 질문을 해온다.
"김 さん

은 어제 치른 영어와 전공시험 점수가 몇 점 정도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런 것인가!
이 말이 하고 싶어서, 오늘 아침 성당의 애꿎은 스위치에 그 마음을 쏟아낸 것인가?

당연히 할 말이 없다.
... 어제 나는 분명히 영어와 전공 시험을 치렀고,
그것을 일본어로 쓰면서(쓰려고 했지만 어떻게 써야하는지 漢字를 전혀 알 수 없었기에)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비슷한 뜻의 한자를 선택해가며 답을 써내려갔다.
물론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쓴 한자 역시도 후에 확인하고서는 '차라리 쓰지 말 것을' 이라며
땅을 치지 않았던가....

여하튼,
사정이 그러했기에 무식하고 용감했던 나는 그래도 꿋꿋히 답안을 채워(?)나갔다.
'차라리 쓰지 말 것을......차라리 공란인 채로 내버려 둘 것을....
그걸 답이라고 써 냈으니.....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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ずかしい、恥ずかしい...'
창피한 마음에 형제들이 어땠냐고 물어도 농담 반, 진담 반
'まだ生きています。

'
'아직 살아 있습니다,' 한다.
그리고 내가 제일 잘 하는 '웃으면서 곧 잊어 버린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결과는 내 손을 벗어나 있는 것이라며....

물론 내가 생각했던 '최선'에 약간은 오해가 있어 보인다.
...
처음 나는, 분명히 시험 준비라는 것을 했다.
책들을 보겠다며 형제들에게 뺏다시피 이런저런 관련 서적들을 빌려냈고,
대학본부에 가서 최근 몇년도 시험지를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에도 불구하고 몽땅 복사해 왔다.
'합격이라는 것을 해 보려니 돕던지 어찌 하던지' 라며
한 해 먼저 시험 치른 일본인 수사님을 귀찮게 하기도 했다.

여튼 그렇게 시작한 시험 준비이건만 단 며칠 만에 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했다.
아직 한자며, 문법이며, 일본어 자체가 빈티나는 판에
전공서적을 본다는 것, 또 그것을 일본말로 풀어 낸다는 것!
절대 무리다.
이런 상태에서 대학원 입학 시험을 치른 다는 것 자체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바로 그 뜻이다.

해서 처음 몇 장도 아니고, 겨우 몇 줄 읽다가, '이러다가는 죽도 밥도 안되겠다' 싶어
쌓아둔 서적들을 발 빠르게 포기하고,
이제까지 공부해 왔던 대로 일본어 학원을 다니며 한자며 문법 그리고 회화에 충실했다.
역시나 한 번 몸에 맞는 것으로 정하면 쭈~욱 해 나가는 성격답게
시험 보는 전날까지 학원 숙제로 바쁜 척을 해댔다.
물론 얼굴도 두껍게 공동체의 지향 기도란 기도는 매일 단골로 받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곧바로 입학 시험 성적으로 나타났다.
전공 서적 한 장 본 적도 없으니 성경의 기초적인 지식도 아리까리 난리도 아니었다.
'공관복음서에 대해 설명하시오'라는 물음에
'헉!' 하고 '공관복음서'에 '요한복음서'가 포함되는가도 헷갈려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논술하시오'라는 질문에도
한 줄 혹은 단 몇 줄의 '단답형'으로 얼굴 두껍게 제출해 버렸다.

그런 주제에 어제, 오늘 공동체에서건 면접장에서건
역시나 예의 그 방긋방긋 웃음이니 '선생'의 입장에서는 열불이 날만도 하다.
'이건 뭐, 이 화상을 어찌해야 하나' 선생은 안절부절 심각하게 고민중인데
시험을 치르고, 입학을 하겠다는 학생은 '올 해 아니면 내년도 있고...' 하고 있다.
그러니 괜히 혼자서 애만 태우고 있던 선생은 이런 학생이 못내 못마땅해 보인다.
그리고 아침부터 애먼 스위치에 그런 기분을 표현하고
면접자리 첫 질문부터 일본인답지 않게 '돌직구'를 날린다.
'이걸 점수라고 맞고서 그렇게 헤헤 거리며 다니고 있냐'는 투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있다.
그이의 생각처럼 입학시험을 개발인지 새발인지 모르게 치른 '나'는,
지금 이렇게 평소처럼 웃을 수 있게 되기까지
복잡해지려는 마음에 평소보다 두 배는 더 걸었어야 했음을,
선생들이 가득한 사제관에서 점심을 들러 가면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음을,
그이들이 '시험 잘 치렀냐'고 말을 걸어오면 '아직 살아 있습니다'라고 말 해야 했던 심정을,
평소보다 더 간절히 성체 앞에 머물러 있어야 했음을,
괜히 선생 보기가 미안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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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はようございます’ 더 밝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는 것을,
그리고 이 아침 '딱'하고 스위치를 켜던 '그'이의 속 마음에
제일 크게 '미안함과 부끄러움으로' 반응하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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