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본문
1독서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은 민족이다.
그들의 입술에서 진실이 사라지고 끊겼다.’
복음말씀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단상
예수회 새얼공동체에 초대를 받았다.
최근 공동체 이동이 있게 되면서 다른 공동체로 떠나간 이와
또 새로운 이들을 환영 축하하는 자리다.
나야 요즘은 이곳저곳 인사를 다니러 다니던 차에 ‘잘 되었다’ 싶어
공동체 원장신부님께 청했더니 흔쾌히 초대 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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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환송 축하에 앞서 공동체 경당에서 한데 모여 작은 미사를 드렸다.
여덟이 둘러앉은 꽉 찬 공간에서 공교롭게도 공동체를 떠나 갈 이들이
독서도 하고, 화답송도 선창하면서 각자가 하나씩 역할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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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얼공동체 미사는 여러 형제들이 함께 둘러앉아 미사를 드렸던 그 자체로 감사할 일이었고,
게다가 미사 주례자의 느닷없는 ‘울먹임’이 분위기를 숙연하게 하면서
또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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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해군기지반대’ 운동을 하면서
예수회 김정욱 신부님과 개신교 목사님이 한 분이 구속되면서
여태 그 현장에서 함께 했던 미사주례 신부님은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또 그렇게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온 몸으로 투신하는 수도 형제의 용기가 감사하기도 해서
그러면서 함께 그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는 게 못내 미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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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차에 피정집에서 영성사도직을 하고 있던 동료 신부님이
지금 삼성건설(해군기지 건설업체) 본사 앞에서 몇 몇 인터넷을 보고 온 신자들과 함께
꽃샘추위가 찾아든 이 밤에 경비 직원들과 신경전을 펼치다가
할 수 없이 대로에서 쫓겨나 차로 위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는 소식에 또 한 번 ‘울컥’,
한 참이나 미사 경문을 읽어 내려가지 못하고 형제들에게 연신 ‘미안합니다’ 한다.
곁에 있던 공동체 원장신부님은
‘어휴, 괜찮아유, 형제들 생각해서 그런건데 미안하다니유. 괜찮아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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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내에서도 아웃사이더(?)로 행동반경이 넓고,
사회 곳곳의 이슈들을 쫓아다니면서 웬만한 일쯤에는 감정의 움직임도 무뎌졌을 법도 한데,
정의롭지 못한 세상일이나 고통으로 눈물짓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여전히 눈물을 보이는 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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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세상을 향한 거친 표현들로
나 같은 새가슴들은 그 익숙치않은 표현들에 깜짝 깜짝 놀라다가도,
오늘같이 이분이 가진 순수함을 대할 때면
그 ‘깜짝 깜짝’ 놀랐던 감정 뒤에 올라왔던 부정적인 이미지들에
다시 한 번 미안함을 표하게 된다.
이분은 천상 아프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예수님의 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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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에 둘러앉은 자리에서
김정욱 신부님이 경찰 ‘유치소’에 있는지 아니면 교도소 ‘구치소’로 이송되었는지로
언제 눈물을 보였냐는 듯이 옥신각신 신경전을 치르다가,
그러다가 느닷없이 제주도에 가 계신 박도현 수사님께 전화를 걸더니,
아직 ‘유치소’에 있다는 신부님의 판정승으로 ‘유치소, 구치소’ 논쟁이 끝나고,
“그런데 왜 하필 ‘김정욱’이냐?”로 또 논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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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제주도 강정마을에는 여러 예수회원들이 머물러 있었고,
이전에 ‘김성환, 이영찬, 박도현’ 세 분 신부․수사님들은
수차례 철조망을 뚫고 구럼비 바위 공사장에 들어가서 시위도 하고, 미사도 하더니
급기야는 최근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고
앞으로 한 번만 더 법을 어기면(?) 이미 내려진 ‘징역 8개월’도 같이 살아야 할 팔자였다.
그래서 이 세 분이 잡혀가면 잡혀가야지
별 신경을 쓰고 있지 않던 김정욱 신부님이 대뜸 구속이 되어
제주교도소 ‘구치소’로 이송되었으니(14일 날짜로)
‘왜 김정욱 신부냐?’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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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공동체 음식을 준비하시던 부엌떼기 신부님이 명쾌한 판결을 내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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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김정욱 신부는 우리가 알다시피 절대 앞에 나서서 일을 하는 친구가 아니잖아.
그러니 뒤에서 평화운동가들을 지원하는 일을 했을 거야.
그 친구는 괴산에서도 혼자 농사를 지으며 있는 듯, 없는 듯 농촌사도직을 했었고,
또 서울에 불려 와서는 서강대학교 “사회봉사센터” 소장은 싫다고 해서
“부소장”이라는 이름도 안 나는 자리에서 또 그렇게 젊은 학생들의 활동들을 도왔지,
게다가 제주도에 내려가 있는 다른 예수회원들과는 달리
늘 조용조용한 성격에 한 번은 활동가들이 이 친구가 사제인 것을 모르고 있다가
“경찰 프락치”로 오해를 받아서 강정마을에서 멱살도 잡힌 적도 있었거든.
이번에도 분명 그랬을 거야,
활동가들이 구럼비 바위로 들어가는 펜스를 뻰치나 연장으로 열심히 뜯다가
영 그 하는 일이 마땅치 않아 보이자,
농사일로 공구 다루는 일이 밥 먹기보다 쉬웠을 김정욱 신부가
보란듯이 펜스를 절단해 주었다가 괜히 이런 날벼락을 맞았을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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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의 이런 엉뚱한 해석에 둘러앉은 형제들이 낄 낄 대며 웃는다.
아까는 언제 울먹였냐는 듯이 우리의 식탁에는 또 이렇게 유쾌함이 가득하다.
그러면서 울먹였던 신부님이 고생하고 있는 형제들과 또 우리를 위해
나지막히 구호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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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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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러면서 ‘김정욱 신부는 부모님 다 돌아가셨지?
다행이다. 부모님 맘 아프게 할 일은 없을테니,
나는 어머니 생존해 계시니 좀 힘들겠고, 다음은 원장신부님이 하셔야겠네.
이런 식으로 한 명씩 부모님 돌아가신 회원들부터 운동하고 또 잡혀가고,
그러다가 다음은 편부모 계신 회원들이 또 받아서 끝까지 하면 되겠네’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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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하고 진지할 이 사태 앞에서 어느 정도 장난스러워 보이는 이 말들에는
제주도 ‘해군기지반대’ 생명평화운동을 하는 젊은(?) 예수회원들의 마음 자세를 느낄 수 있다.
운동을 하되 화를 품지 않고, 그 분노에 잠식됨 없이,
비록 잡혀가더라도 유쾌하고 기쁘게, 또 그것을 이어 받아서 끝까지,
각자의 양심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세상의 누가 뭐라 해도,
그 끝이 감옥살이라 할지라도,
예수님 당신이 십자가의 길을 “온유”하게 걸어 가셨듯이....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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