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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가족 본문

마음에게 말걸기

가족

해피제제 2010. 12. 5. 22:38


많은 군중이 다리 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 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광야에서 이렇게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무지 속상하다.’

이웃살이(천주교예수회 이주노동자지원센터 김포이웃살이)를 찾는 사람들은
‘다리 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 못하는 이들’ 이다.
그이들은 ‘생존의 문제’를 안고 이웃살이를 찾는다.

당장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갈 돈이 없어서,
공장에서 폭행과 인간 이하의 쌍욕을 듣게 되면서
하루 12시간씩 쉴 틈 없이 일하니 몸 성할 곳이 없어서,
가족을 두고 홀로 외따로이 지독한 외로움과 우울증 때문에,
열심히 일했는데 월급을 안 주니 당장 먹고 살 수가 없어서....

오늘 출근길에 병원엘 들러야 한다.
필리핀 이주노동자 한 분이 아이를 낳았는데 퇴원을 도와주기로 했다.
정작 이웃살이에 도움을 청해 온 것은 경제적인 도움인데
내가 흔쾌히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차량 운전 도움이 전부다.

병원비가 만만찮게 나왔다.

센터 소장님이 병원측엘 찾아가서 통 사정을 하고나서 10%를 할인 받았다.
병원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미등록 외국인(일명 ‘불법노동자’) 부부가 부담할 병원비를 생각하면 터무니없다.

사정인즉슨,
미등록 외국인은 한국 땅에서 다쳐도 의료보험을 적용받지 못한다.
다행히 입원 전에라도 도움을 청했더라면
이곳저곳 무료 병원들을 찾아보았을 텐데
황급한 상황에서 이미 벌어진 일이라 꼬박 그 많은 병원비를 치러야 한다.

도움이 될 만한 곳으로 이곳저곳 연락을 해두었다.

몇 번이나 도움을 받았던 서울노동상담소에
또다시 사정을 전하고 얼굴 두껍게 손을 내밀어 보았다.
그쪽에 책정되어 있는 ‘응급기금’을 요청하지만 그것도 마뜩치 않다.
교구 내 이주민센터마다 고만고만한 살림이라 한 사례당 30만원,
그것 역시도 받아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몇 가지 서류요건이 충족되어야 가능하단다.
당장 오늘이 퇴원일인데.....

며칠 동안 소장님과 내가

이리저리 애걸복걸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동기 수사님이
한 마디 건네 온다.
“우리가 반액만 지원해 주면 안 됩니까?”

이제 막 이주민사도직에 합류한 수사님은

병원비의 반액을 이웃살이에서 지원해 주자고 한다.
예수님처럼 사정이 딱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가엾은 마음’이 먼저 일어나는 수사님이라
‘반액 정도면 이웃살이에서 충분히 지원할 수 있지 않냐’
뭘 그렇게 야단스럽게 행동하냐는 물음이다.

하지만 수사님은 알까?

이웃살이의 올해치 ‘응급지원기금’은 이미 진즉에 동이 난 상태라는 것을,
그래서 이웃살이의 살림을 맡고 있는 나는
예수님의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연민’의 마음 보다는
‘이 광야에서,
이렇게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할까?’
걱정이 더 앞선다는 사실을...

그래서 동기 수사님의 철(?)없는 말에 더욱 속이 상하고,

나는 그이처럼 ‘가엾은 마음’이 먼저 일어나지 않는 데에 괜시리 울적함이 더한다.

그래서 속이 왕창 상한 터에
그렇게 이런저런 사정도 모르고 ‘가엾은 마음’ 만 외쳐대는 동기 수사님께
“우리가 땅 파서 장사합니까?” 라며 마음에도 없는 뾰족한 말을 내뱉고
또 그것이 속상해 하루 종일 울고 싶은 마음이다.


한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나는 그 축복의 시간에 그 기쁨도 잠시,

아이를 품에 안고서도 한껏 웃을 수 없는 아기 아빠를 지켜보면서,
그 이유가 엄혹한 현실의 병원비 때문임을 너무도 잘 알기에
이러한 부조리한 풍경은 또 무어란 말인가 하며 올라오는 무기력감 등 등
한없이 무너지는 마음은 온 종일 심란함의 정체다.

자녀계획 없이 ‘둘째’를 가진 부부에게 은근히 부아가 치솟아

맥없는 동기 수사님께 그 분풀이를 해대고
그것도 모자라 온 종일 신경을 곤두서게 까칠하게 구니
‘너 오늘 그날이지?’라며 그럼에도 오히려 농을 걸어주니
내가 단단히도 동기 수사님의 덕을 입고 사는가 싶다.

차를 몰아 네 식구를 한 칸 보금자리에 데려다주면서

그래도 ‘가족’이 한 데 모여 있으니
그이들의 얼굴에 이렇게나마 웃음꽃이 필 수 있구나 싶다.

월세 20만원, 아이들 분유값, 난방비, 각종 공과금 납부를 위해
당장 내일부터 일자리를 찾아 다녀야 하는 아기 아빠도
(잦은 가불 요청과 부인 병원 동행으로 아기 아빠는 해고된 상태다)

1살 된 딸과 이제 막 태어난 아기를 돌보아야 하는 엄마도
그 아기들을 품에 안고 있을 때만은 어쩔 수 없는 엄마·아빠다.

그이들을 지켜보는 나는 계속해서 안쓰러움만 밀려오건만,
그이들의 그 믿도 끝도 없어 보이는 회복력(?)은
바로 ‘한 가족’의 ‘가족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 부부가 아기를 내 품에 넘겨주었을 때,
방금까지도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나를
단박에 ‘가족’으로 이끌었던 짠한 순간을 맞이하게 되면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품에 안은 아이와 눈을 맞추면서 어느 사이 현실의 문제는 저만치 사라지고
온전히 아기의 눈빛과 반짝이는 웃음과 품 안의 따뜻함과
그리고 그 싱그러운 살내음만이 나를 사로잡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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