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사랑하면 울게 된다 본문
캄보디아로 파견 된 동기 수사님의 생일이다.
다른 동기 수사님들은 모두 한국에서 실습을 하는데
혼자서만 다른 나라로 파견되었다.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실습기 수사들의 모임에
한국에서 사도직 실습을 하고 있는 동기들은 한 데 모이는데
캄보디아로 파견된 수사님만 그 자리에 없다.
동기 중 가장 큰 형님에다가
'옥동자'로 유명한 코미디언 정종철과 형제라도 할 만큼 닮은 꼴에 그 유머스러움까지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우리 동기들 사이에서는 늘 중심 역할을 해왔는데
그래서인지 형님의 빈 자리가 유독 눈에 띈다.
미역국은 먹었는지, 밥은 잘 챙겨 먹고 사는지, 건강은 어떤지,
하고 있는 실습은 힘들지는 않는지, 다른 마음 고생은 없는지 등 등
이것저것 묻다가
"형님! 많이 보고싶네~" 하고 말하다가
와락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많이도 정이 들었다 싶다.
올 초 공항에서 헤어질 때는 전날부터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가선지
방긋방긋 '형님 나 보고 싶다고 울지마' 하며 농을 걸기도 했는데
수화기에서 시간차를 두고 넘어오는 목소리에 그리움이 더해진다.
한 참을 아무 말도 못하고 듣고만 있다가
추스려지는 마음을 보고
"형님 또 언제 보나..." 했다가 다시금 울먹이고 말았다.
한 번 헤어지면 어쩌면 몇 년씩 떨어져 있는 게 예수회 삶인지라
엇갈리기 시작하면 5-6년 후에야 얼굴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2010년 올 초 실습기 부터 헤어졌으니
만약 2011년 말에 내가 다른 나라로 신학 공부 하기 위해 떠나게 되고,
형님 수사님이 2012년 1월에 실습을 종료하고 잠깐 귀국해서
나와 다른 나라로 신학을 떠나게 되면 최소 6년간 만나지 못한다.
4년간 신학 공부를 해야 하니 그 사이 얼굴 볼 일이 없다.
게다가 이미 신학대학원에서 철학, 신학 과정을 모두 마친 나이기에
(교회법에 의하면 사제서품을 받기 위해서 철학 2년, 신학 4년을 마쳐야 한다)
중간에 서품이 1-2년 빨라지게 되면 또 한번 엇갈리게 된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일본 미션,
즉 일본 예수회 관구로 파견을 받게 되면
그 후로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는 하느님만이 아실 일이다.
예수회의 초기 동료였던 이냐시오 성인과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그랬던 것처럼
한 명은 로마 바티칸에서 다른 한 명은 동양의 마카오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도 서로가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다.
아마도 천국에서나 반갑게 얼싸안고 그 기쁨을 나누었으리라.
공동체에 함께 살고 있는 다른 동기 수사님께 전화기를 넘겨 주고
한 참을 그렇게 앉아 있으니 전화를 끝마친 수사님이 '형님 수사님이 그랬단다'
"쟤 왜 저러냐? 다음 부터 전화 할 때 수건 한 장 들려 줘라"
난리다!!
그런데 나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내가 울먹일 때 형님 수사님 역시 목이 메여 한 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음을...
나만 손수건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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